‘수사반장 1958’ 집행형 빌런 등장..이제훈 ‘매운 맛 시대’ 열려 [김재동의 나무와 숲]
입력 : 2024.05.0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OSEN=김재동 객원기자] “살아 온 날들이 살아 갈 날들을 결정한다.” 대부분의 인생에서 명제처럼 작용하는 말이다. 개인적으론 비단 개인의 인생뿐 아니라 민족과 나라의 운명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이다.

4일 방송된 MBC 금토드라마 ‘수사반장 1958’에서 종남경찰서 수사 1반 반장인 유대천(최덕문 분)이 칼을 맞았다. 이유는 경찰내 친일 세력의 청산을 기치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극중 유태문은 특경대 출신으로 묘사된다. 유태문이 몸담았던 특경대란 1948년 10월 결성돼 1949년 10월 해산된 반민특위(반민족행위처벌특별위원회)의 산하조직이다. 제헌국회는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 청산을 위해 반민특위를 설치했지만 출범초부터 이승만 정권의 집요한 견제로 무력화된 채 활동을 중단했어야 했다. 당시 특별경찰대에는 반민 피의자의 체포와 특위 요원 경호를 위해 총경부터 경사에 이르기까지 47명의 경찰관이 몸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 특경대가 1949년 6월 6일 경찰에 의한 반민특위 습격사건의 단초가 된다. 당시 윤기병 중부경찰서장이 인솔한 무장 경찰병력 50명은 반민특위 청사를 습격, 특위 조사관들을 폭행하고 친일파 관련 조사서류와 집기들을 강탈했다.

당시 이승만은 “반민특위의 특경대(특별경찰대) 해산은 내가 명령한 것”이라고 인정했으며 장경근 내무장관은 국회 보고에서 “반민특위 특경대 20명을 무장해제시켰다... 특경대는 내무부에서 정식 발령한 경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특위에서는 경위니 경감이니 하는 명칭을 붙여 경찰관의 행동을 해왔다... 그들은 정부만이 갖고 있는 경찰권을 불법행사해 왔으므로 강제 해산시킨 것이다.”고 말했다.(서울경제 ‘반민특위 습격 사건’ 2017.06.06)

유태문은 이 특경대 시절 종남경찰서장 최달식(오용 분)의 친일 행적에 관한 증거를 획득했다. 그리고 최달식의 비호를 받던 이정재(김영성 분)의 동대문파 척결에 외압을 막는 방패로도 요긴하게 써먹었다. 하지만 최달식의 치안부국장 승진까지가 거론되자 경찰 내 친일파 조직 신광회의 전횡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마침 5.16 정변으로 군사정권이 들어서 ‘새 시대’를 외치자 기회라고 착각,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연일 투서를 보내며 신광회의 척결을 호소했다. 하지만 의장 박정희를 비롯한 군사정권 역시 친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집단. 신광회 멤버들은 최고회의에 끌려가 갖은 질책을 당하게 되고, 승진 건이 위태롭게 된 최달식은 백도석(김민재 분)에게 차기 종남 서장을 댓가로 유태문 테러를 지시하게 된다.

유태문을 테러한 백도석은 예정대로 종남서장으로 취임하는데, 이 백도석은 박영한(이제훈 분)에게도 10년에 걸친 악몽을 선사한 악연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한 박영한에게 양민학살을 강요했던,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박영한을 대신해 만삭의 임산부 머리에 권총을 발사한 백도석 대위, 바로 그 장본인이었다. 백도석은 군납비리에 얽혀 군에서 쫓겨났고 최달식의 비호 아래 경찰 밥을 먹게 된 인물이었다.

“시대는 쉽게 변해도 사람은 쉽게 안 변합니다.” 박영한을 알아본 백도석과의 만남에서 박영한이 한 말이다. 시쳇말로 “사람 고쳐 못쓴다”는 박영한의 통찰력은 이미 백도석이 증명했다. 죄의식 없이 임산부를 사살했듯 법을 수호해야 될 경찰 신분임에도 감투 하나 쓰자고 손쉽게도 유태문을 난자했다.

종전의 최달식이 ‘사주형 빌런’이라면 새로 등장한 백도식은 ‘집행형 빌런’이다. 드라마는 바야흐로 순한 맛에서 매운 맛으로 분위기를 갈아끼웠다.

드라마야 어쨌건 드라마가 전하는 시대 배경은 고구마처럼 답답하다. 역사가 교훈을 남기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때 잘 먹고 잘 살던 이들이 이승만 정권서 승승장구하고 박정희 정권에서도 잘 먹고 잘 산다. 눈치 빠르고 처세에 능하면 장땡이다. 모든 가치에 앞서 ‘능굴능신(能屈能伸)’이 최고의 가치 자리를 차지한 세태라는 것은 몹시도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zaitung@osen.co.kr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