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 부산=양정웅 기자]
"한동안 우리나라가 중국에 쉽게 졌다. 팬들에게 이제는 '안된다'는 인식이 많았는데, 그걸 깬 것 같아 좋았다." (장우진)
'탁구 강국' 중국을 한때 벼랑 끝까지 몰아넣었다. 남자 탁구 국가대표팀이 그야말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보여주며 다가올 올림픽에 대한 희망을 보여줬다.
장우진(29), 임종훈(27·한국거래소), 이상수(34·삼성생명), 박규현(19·미래에셋증권), 안재현(25·한국거래소)으로 구성된 세계랭킹 3위 남자 탁구대표팀은 24일 오후 1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본선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중국을 상대로 매치 스코어 2-3(3-1 0-3 3-2 0-3 0-3)으로 패배했다.
한국은 첫 매치에서 에이스 장우진이 중국의 왕추친을 세트 스코어 3-1로 완파하며 예상 외의 산뜻한 출발을 보였다. 비록 임종훈이 세계 1위 판젠둥에게 0-3으로 완패하며 흔들렸지만, 이상수가 3단식에서 풀 세트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며 희망을 보여줬다. 하지만 4세트에서 장우진이 판젠둥에게 패하면서 승부는 원점이 됐고, 마지막 기대를 모았던 임종훈마저 힘을 쓰지 못하며 결국 아쉽게 역전패를 당했다.
탁구 최강국 중국은 남자 개인 세계랭킹 1위에서 5위까지를 모두 보유한 국가다. 이번 대회에서도 1위 판젠둥과 2위 왕추친, 3위 마룽이 주로 나와 다른 국가들을 압살했다. 이번 대회 조별예선 4경기에서 당연히 4전 전승을 거뒀고, 매치는커녕 세트를 내준 것도 단 2번에 그쳤다. 루마니아와 16강전도 퍼펙트 완승을 거둔 중국은 까다로운 상대인 일본과 8강전마저 3경기 모두 3-1로 승리하며 매치 스코어 3-0 완승을 챙겼다.
그런데 이런 중국을 상대로 장우진이 첫 매치를 따내면서 처음으로 중국에 패배를 안긴 곳은 한국이 됐다. 이어 이상수까지 3매치를 따내면서 심지어 이길 뻔한 상황까지 갔다. 비록 막판 중국이 다시 제 궤도에 오르며 4, 5단식을 모두 내줬지만, 누구도 뭐라할 수 없는 승부였다.
경기를 지켜본 '탁구 레전드'들도 감탄했다. 유승민(42) 대한탁구협회장 겸 대회 공동조직위원장은 "2001년 오사카 대회(김택수, 오상은, 유승민) 생각이 났다. 김택수 현 사무총장이 (결승에서 듀스 접전으로) 중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었다. (오늘 경기는) 이후 20년 넘게 중국이 전 세계 어느 팀을 상대로도 처음 나오는 경기였다. 소름 끼쳤다"고 말했고, 현정화(55) 대회 공동집행위원장도 "중국과의 경기에서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선수와의 경기에서 이런 경기를 10여 년 전을 다 떠올려 봐도 이런 팽팽한 경기를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주세혁(44) 감독과 선수들도 아쉬움 속에 희망을 봤다. 경기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주 감독은 "우리 선수들의 의지력이 강해서 개인적으로 많은 기대를 했지만 이렇게까지 좋은 경기를 해줄 줄은 몰랐다"며 "기술이나 경기력을 떠나 하나의 팀으로서 강력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똘똘 뭉쳐서 좋은 경기를 했다"고 분석했다.
첫 매치를 따냈던 장우진은 "최근에 중국에 져서 어떤 한 같은 게 있었는데, 우선은 그것을 푼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한동안 우리가 중국한테 너무 쉽게 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래서 많은 팬들이나 국민들이 '이제는 안 된다' 하는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은데 그런 부정적 인식을 깨뜨린 것도 좋았다"고 밝혔다. 아쉬운 듯 기자회견장에서도 고개를 푹 숙였던 임종훈은 "형들이 너무 잘해주고, 응원도 많이 해주셔서 힘이 났다. 아쉽기보다는 아깝다. 다음에는 좀 더 잘해서 오늘 같이 아깝지 않고 후련하게 마치도록 준비 잘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선수들은 입을 모아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동안 세계적인 탁구 경기에는 항상 중국 팬들이 많이 찾았는데, 이날 역시 경기가 열린 벡스코 초피홀에 오성홍기와 중국어 문구가 새겨진 응원피켓이 많이 보였고, "피셩(必勝, 필승)"이나 "짜이요(加油, 기름을 붓듯이 힘내라는 응원)" 같은 응원구호도 울려퍼졌다. 하지만 한국 팬들 역시 이에 못지 않게 경기장을 찾아 "대~한민국" 구호를 외쳤고,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할 때마다 이름을 연호했다.
베테랑 이상수는 "정말 응원도 많이 해주시고, 팬들 응원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경기였다"며 "앞으로 이렇게 계속 하다보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 감독은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이나 1988 서울 올림픽,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등 홈 경기에 강하다"며 "관심도 주시고 기도 살려주시고 응원해주셨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제 대회가 종료되면 이번 단체전 대표팀은 해산할 예정이다. 이후 7월 말부터 열리는 2024 파리 올림픽을 위한 움직임에 들어간다. 이번 대회 8강 안에 들며 출전권을 얻은 대표팀은 오는 6월 18일 이후 출전 선수를 결정할 예정이다. 올림픽 단체전에서는 복식이 있어 이 조합 또한 신경써야 한다.
주 감독은 "(선수 선발) 그 전까지 후보선수 전체를 성장시키고, 누가 3명 안에 들어갈지 몰라 복식 조합 고민하며 훈련 잘 시켜야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 "올림픽 탁구 2회 연속 메달을 못 땄기 때문에 꼭 메달 획득하는 게 마지막 임무다"고 말했다.
이상수 역시 "올림픽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게 없다. 서로 전부 좋은 동료지만 경쟁자라고 생각한다. 큰 대회에서 계속 붙는다면 선의의 경쟁으로 실력을 높여 누가 나가더라도 메달 딸 수 있을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건 수확이다. 주 감독은 "2022년 부임했을 때 우리나라 선수들이 2020 도쿄 올림픽이 끝나고 자신감 떨어진 게 느껴졌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 집중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베테랑 선수들의 합류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누구라도 꺾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된 것이다.
유 회장은 "우리 선수들이 이렇게 잘하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중국을 보며 소름 끼쳤다. 그럼에도 분명 빈틈은 있다. 이 빈틈을 찾아내고 우리가 더 발전하는 것이 숙제다. 코칭스태프들과 어떻게 이 빈틈을 파고 들어야 할지 깊이 논의를 해보겠다"고 향후 과제를 언급했다.
부산=양정웅 기자 orionbear@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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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탁구대표팀 장우진이 24일 오후 1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본선 토너먼트 중국과 준결승에서 포효하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
남자 탁구대표팀 임종훈, 이상수, 장우진(왼쪽부터)이 24일 오후 1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본선 토너먼트 중국과 준결승 종료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
'탁구 강국' 중국을 한때 벼랑 끝까지 몰아넣었다. 남자 탁구 국가대표팀이 그야말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보여주며 다가올 올림픽에 대한 희망을 보여줬다.
장우진(29), 임종훈(27·한국거래소), 이상수(34·삼성생명), 박규현(19·미래에셋증권), 안재현(25·한국거래소)으로 구성된 세계랭킹 3위 남자 탁구대표팀은 24일 오후 1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본선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중국을 상대로 매치 스코어 2-3(3-1 0-3 3-2 0-3 0-3)으로 패배했다.
한국은 첫 매치에서 에이스 장우진이 중국의 왕추친을 세트 스코어 3-1로 완파하며 예상 외의 산뜻한 출발을 보였다. 비록 임종훈이 세계 1위 판젠둥에게 0-3으로 완패하며 흔들렸지만, 이상수가 3단식에서 풀 세트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며 희망을 보여줬다. 하지만 4세트에서 장우진이 판젠둥에게 패하면서 승부는 원점이 됐고, 마지막 기대를 모았던 임종훈마저 힘을 쓰지 못하며 결국 아쉽게 역전패를 당했다.
중국 남자 탁구대표팀.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
그런데 이런 중국을 상대로 장우진이 첫 매치를 따내면서 처음으로 중국에 패배를 안긴 곳은 한국이 됐다. 이어 이상수까지 3매치를 따내면서 심지어 이길 뻔한 상황까지 갔다. 비록 막판 중국이 다시 제 궤도에 오르며 4, 5단식을 모두 내줬지만, 누구도 뭐라할 수 없는 승부였다.
경기를 지켜본 '탁구 레전드'들도 감탄했다. 유승민(42) 대한탁구협회장 겸 대회 공동조직위원장은 "2001년 오사카 대회(김택수, 오상은, 유승민) 생각이 났다. 김택수 현 사무총장이 (결승에서 듀스 접전으로) 중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었다. (오늘 경기는) 이후 20년 넘게 중국이 전 세계 어느 팀을 상대로도 처음 나오는 경기였다. 소름 끼쳤다"고 말했고, 현정화(55) 대회 공동집행위원장도 "중국과의 경기에서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선수와의 경기에서 이런 경기를 10여 년 전을 다 떠올려 봐도 이런 팽팽한 경기를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 겸 대회 공동위원장이 24일 오후 1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본선 토너먼트 중국과 준결승 경기를 보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
첫 매치를 따냈던 장우진은 "최근에 중국에 져서 어떤 한 같은 게 있었는데, 우선은 그것을 푼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한동안 우리가 중국한테 너무 쉽게 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래서 많은 팬들이나 국민들이 '이제는 안 된다' 하는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은데 그런 부정적 인식을 깨뜨린 것도 좋았다"고 밝혔다. 아쉬운 듯 기자회견장에서도 고개를 푹 숙였던 임종훈은 "형들이 너무 잘해주고, 응원도 많이 해주셔서 힘이 났다. 아쉽기보다는 아깝다. 다음에는 좀 더 잘해서 오늘 같이 아깝지 않고 후련하게 마치도록 준비 잘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선수들은 입을 모아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동안 세계적인 탁구 경기에는 항상 중국 팬들이 많이 찾았는데, 이날 역시 경기가 열린 벡스코 초피홀에 오성홍기와 중국어 문구가 새겨진 응원피켓이 많이 보였고, "피셩(必勝, 필승)"이나 "짜이요(加油, 기름을 붓듯이 힘내라는 응원)" 같은 응원구호도 울려퍼졌다. 하지만 한국 팬들 역시 이에 못지 않게 경기장을 찾아 "대~한민국" 구호를 외쳤고,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할 때마다 이름을 연호했다.
베테랑 이상수는 "정말 응원도 많이 해주시고, 팬들 응원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경기였다"며 "앞으로 이렇게 계속 하다보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 감독은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이나 1988 서울 올림픽,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등 홈 경기에 강하다"며 "관심도 주시고 기도 살려주시고 응원해주셨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남자 탁구대표팀 장우진, 임종훈, 안재현, 박규현, 이상수, 주세혁 감독(왼쪽부터)이 24일 오후 1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본선 토너먼트 중국과 준결승 종료 후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
주 감독은 "(선수 선발) 그 전까지 후보선수 전체를 성장시키고, 누가 3명 안에 들어갈지 몰라 복식 조합 고민하며 훈련 잘 시켜야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 "올림픽 탁구 2회 연속 메달을 못 땄기 때문에 꼭 메달 획득하는 게 마지막 임무다"고 말했다.
이상수 역시 "올림픽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게 없다. 서로 전부 좋은 동료지만 경쟁자라고 생각한다. 큰 대회에서 계속 붙는다면 선의의 경쟁으로 실력을 높여 누가 나가더라도 메달 딸 수 있을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건 수확이다. 주 감독은 "2022년 부임했을 때 우리나라 선수들이 2020 도쿄 올림픽이 끝나고 자신감 떨어진 게 느껴졌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 집중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베테랑 선수들의 합류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누구라도 꺾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된 것이다.
유 회장은 "우리 선수들이 이렇게 잘하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중국을 보며 소름 끼쳤다. 그럼에도 분명 빈틈은 있다. 이 빈틈을 찾아내고 우리가 더 발전하는 것이 숙제다. 코칭스태프들과 어떻게 이 빈틈을 파고 들어야 할지 깊이 논의를 해보겠다"고 향후 과제를 언급했다.
남자 탁구대표팀 장우진, 임종훈, 안재현, 박규현, 이상수, 주세혁 감독(왼쪽부터)이 24일 오후 1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본선 토너먼트 중국과 준결승 종료 후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
부산=양정웅 기자 orionbear@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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