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X구교환 '탈주', 탈북은 거들뿐 [Oh!쎈 리뷰]
입력 : 2024.06.2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OSEN=김나연 기자] (※이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도망 아닙니다. 내 갈 길 가는 것이지.”

휴전선 인근 최전선 군부대에서 복무중인 규남(이제훈 분)은 10년 만기 제대를 앞두고 탈북을 꿈꾼다. 가족도, 가진 것도 없는 규남이 제대 후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이에 그는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해 볼 수 있는 남한으로 탈주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휴전선 너머로 향하는 지도를 만든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아챈 하급병사 동혁(홍사빈 분)은 지도를 훔쳐 먼저 탈북을 시도하고, 규남은 그를 말리려 뒤쫓아갔다가 나란히 탈주병으로 체포된다. 꼼짝없이 처벌만을 앞두고 있는 규남의 앞에 나타난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 분)은 졸지에 규남을 탈주병을 체포한 영웅으로 둔갑시킨다.

규남의 탈주 시도를 알고있던 현상을 이를 눈감아줌과 더불어 사단장 직속 보좌 자리까지 마련하며 그를 ‘현재’에 묶어두려 한다. 그럼에도 규남은 망설임 없이 현상의 호의를 뿌리치고 계획했던 탈주를 급히 실행에 옮긴다. 그 과정에는 많은 장애물이 따랐지만, 규남에게는 ‘직진’뿐이었다. 현상은 그런 규남을 끝까지 쫓으며 그를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놓고자 한다.

내달 3일 개봉을 앞둔 ‘탈주’(감독 이종필)은 내일을 위한 탈주를 시작한 북한병사 규남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의 목숨 건 추격전을 그린 영화다.

‘탈주’는 북한군의 탈북기가 작품 전체를 아우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북한이라는 배경은 그저 하나의 장치로 작용할 뿐이다. 숨 막히는 추격과 회유 속에서도 휴전선을 넘기 위해 나아가는 규남의 처절한 사투는 마치 억압된 현실을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현대인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이는 ‘추격자’ 위치에 있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규남의 탈주를 저지하는 듯 보이지만, 현상 역시 자유로웠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자신의 내면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이는 규남을 붙잡음으로써 꿈보다 현실을 택한 현재의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긴박감 넘치는 연출 속에서 홀로 내달리는 규남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의 ‘탈주’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커녕 “실패하러 가는 것”이라고 의지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규남의 대사는 출발선 앞에서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한 발 내디딜 수 있는 용기로 작용할 것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두 배우의 열연도 돋보였다. 뛰고 구르고 늪에 빠지는 등 이제훈의 몸을 내던진 희생은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산다”는 규남의 결연한 의지와 집념을 관객들이 보다 생생하게 느끼고 몰입하게 만든다. 구교환 역시 개성 넘치는 매력으로 현상 캐릭터를 녹여냈다. 심각한 상황에서 태연히 립밤을 바르며 ‘실소’를 터트리게 만드는 현상의 등장신은 구교환이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긴박감과 속도감을 우선시 한 탓에 디테일 면에서는 아쉬움이 따랐다. 규남과 현상이 과거 형, 동생 하던 사이라는 것은 간접적으로 등장하지만, 이들에게 어떤 전사가 있었으며 현상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규남에게 집요하게 집착하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별출연한 송강, 이솜 캐릭터도 마찬가지. 이솜은 규남이 동혁과 함께 탈주하던 중 마주하는 유랑민들의 리더로, 송강은 현상의 과거와 맞닿아있는 인물인 선우민 역으로 깜짝 출연한다. 하지만 유랑민들은 마치 게임 NPC처럼 반짝 등장했다 규남에게 도움을 주고 사라지고, 선우민은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의미심장한 대사만 몇 번 던지다 빠지니 오히려 몰입에 방해 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선우민은 현상의 피아니스트 시절 깊은 관계였음을 암시하며 현상이 혼란을 느끼도록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하지만, 불친절한 전개 탓에 작품에서 홀로 붕 떠있는 듯한 이질감을 준다.

이밖에도 규남이 비무장지대를 전력 질주하는 상황에서 단 번도 터지지 않는 지뢰나, 조준경 없는 소총으로 멀리 동떨어진 서치라이트를 깨부수는 초인적인 실력,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에서 총을 들고 육탄전을 벌이는데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국군의 모습 등 후반부의 비현실적인 전개는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픽션인 만큼 극적인 요소를 위한 연출이라고 하지만 일부 관객들의 몰입감을 떨어트릴 수 있는 것은 사실. 이와 관련해 구교환은 시사회 당시 “인간이 간절히 원하면 초능력이 나타난다. 둘 다 간절히 원하는 게 있어서 능력 이상의 것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탈주’의 전개는 현실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꿈에서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던 이종필 감독의 의도를 생각한다면 납득의 여지는 있다. ‘탈주’는 여타 탈북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과는 달리 북한의 이념이나 사상은 철저히 배제돼있다. 오로지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각자 다른 선택을 하는 두 사람만 존재할 뿐이다. 이 같은 메시지가 관객들의 마음에 와닿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delight_me@osen.co.kr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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