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정지훈 기자= 차범근 이후 한국 축구 최고의 아이콘이었던 박지성(33)이 결국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박지성은 14일 오전 11시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지성은 “오늘은 공식적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한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날이다. 이번 시즌 동안 은퇴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2월 부터 생각을 했고 무릎 상태가 선수로 계속 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은퇴한다는 것에 대해 특별히 후회는 없다"며 소감을 밝혔다.
독일 분데스리가를 평정했던 차범근 이후 박지성은 한국 축구 최고의 아이콘이었다. 특히 박지성은 200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맨유)로 이적해 세계 축구의 정상에 올라섰고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유럽에서 인정받은 또 한 명의 스타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00년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박지성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우뚝 서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환상적인 결승골을 터트리며 세계 축구팬들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은 박지성은 2002년 여름,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으로 이적했고 이후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에 큰 기여를 하며 유럽에서도 인정받았다.
PSV에서, 특히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활약을 눈여겨본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2005년 박지성의 영입을 제의했고 결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맨유의 유니폼을 입었다.
모두가 박지성을 맨유의 유니폼 판매원으로 평가했지만 박지성은 실력으로 모든 것을 잠재우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박지성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134경기에 출전해 19골을 터트렸고 리그(4회)와 챔피언스리그(1회) 등에서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월드컵에서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박지성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모두 참가했고 세 번의 월드컵에서 총 3골을 터트렸다. 특히 2010년에는 주장으로 참가해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끌었다.
이후 박지성은 2012년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해 1년간 활약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친정팀 PSV로 복귀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약 14년 동안 박지성은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었고 국민들의 희망이었다. 특히 박지성은 차범근 이후 유럽에서 인정받은 유일한 한국 선수였고 이후 후배들이 유럽 무대로 진출하는데 발판을 마련해줬다.
아직 현역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33세의 나이. 그러나 오랜 시간 발목을 잡았던 무릎 부상이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더 악화됐고 현역 생활 연장과 은퇴를 고민하다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박지성이 보여준 투혼과 영광의 순간들은 한국 축구팬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줬고 영원한 ‘캡틴’으로 자리 잡았다.
박지성은 14일 오전 11시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지성은 “오늘은 공식적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한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날이다. 이번 시즌 동안 은퇴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2월 부터 생각을 했고 무릎 상태가 선수로 계속 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은퇴한다는 것에 대해 특별히 후회는 없다"며 소감을 밝혔다.
독일 분데스리가를 평정했던 차범근 이후 박지성은 한국 축구 최고의 아이콘이었다. 특히 박지성은 200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맨유)로 이적해 세계 축구의 정상에 올라섰고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유럽에서 인정받은 또 한 명의 스타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00년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박지성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우뚝 서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환상적인 결승골을 터트리며 세계 축구팬들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은 박지성은 2002년 여름,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으로 이적했고 이후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에 큰 기여를 하며 유럽에서도 인정받았다.
PSV에서, 특히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활약을 눈여겨본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2005년 박지성의 영입을 제의했고 결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맨유의 유니폼을 입었다.
모두가 박지성을 맨유의 유니폼 판매원으로 평가했지만 박지성은 실력으로 모든 것을 잠재우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박지성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134경기에 출전해 19골을 터트렸고 리그(4회)와 챔피언스리그(1회) 등에서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월드컵에서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박지성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모두 참가했고 세 번의 월드컵에서 총 3골을 터트렸다. 특히 2010년에는 주장으로 참가해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끌었다.
이후 박지성은 2012년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해 1년간 활약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친정팀 PSV로 복귀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약 14년 동안 박지성은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었고 국민들의 희망이었다. 특히 박지성은 차범근 이후 유럽에서 인정받은 유일한 한국 선수였고 이후 후배들이 유럽 무대로 진출하는데 발판을 마련해줬다.
아직 현역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33세의 나이. 그러나 오랜 시간 발목을 잡았던 무릎 부상이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더 악화됐고 현역 생활 연장과 은퇴를 고민하다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박지성이 보여준 투혼과 영광의 순간들은 한국 축구팬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줬고 영원한 ‘캡틴’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