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성적 – 정규시즌 8위 (64승 75패 5무 승률 0.460) PS 진출 실패
[스포탈코리아]
프롤로그 – 왕조는 이제 옛말. 황금의 5년, 잃어버린 5년
삼성은 지난 몇 년과 마찬가지로 시즌이 종료되자마자 빠른 행보를 보였다. 3년 동안 실망스러운 성적(6위-8위-8위)을 거둔 김한수 감독을 대체하여 전력분석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허삼영 전력분석팀장을 15대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새로운 한 해를 준비했다.
전력분석팀장으로 근무했던 경력을 앞세워 ‘데이터 야구’를 표방한 허삼영호는 시즌 초중반 한때 4위까지 내달렸지만,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뒷심부족으로 올해도 결국 8위에 그쳤다. 올 시즌 KT 위즈가 창단 첫 가을야구에 진출하면서 현재 KBO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팀이라는 불명예까지 떠안게 됐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타선이었다. 특히 공인구 교체 속에서도 지난 시즌 리그 2위(122개)를 기록한 팀 홈런이 올해 크게 감소(리그 7위, 129개)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팀 홈런(413개)의 약 20%(86개)를 책임진 러프의 공백이 느껴지는 변화였다.
뷰캐넌과 최채흥을 필두로 한 선발진은 선전했지만, 기복이 너무 심했다(QS+ / 퀵후크 전부 1위). 시즌 중반 오승환이 복귀했음에도 불펜은 완전히 붕괴(WAR 9위 – 5.21 ERA 9위 – 5.47)한 수준이었다. 안 좋은 지난 몇 시즌 동안에도 잠깐씩 번뜩였던 팀의 잠재력이 전부 증발한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암울한 시즌이었지만 희소식이 있다면, 총액 92억 원을 지불해 영입한 두 FA 선수(이원석 27억, 우규민 65억)의 계약이 올 시즌으로 종료된다. 금액 대비 이원석의 활약은 준수(17~20 WAR 8.07 팀 내 4위)했지만 그에 비해 2배 이상의 금액을 지불한 우규민은 실망스러웠다(17~20 WAR 3.56 팀 내 7위).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당시의 투자가 정말 필요했는지 판단하는 건 무의미하다. 전반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삼성의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자원들이 FA 시장에 나온 상황에서 두 선수와의 계약 종료로 인해 페이롤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은 호재다.
최고의 선수 – 뷰캐넌 & 김동엽
암흑기가 진행되는 동안 삼성은 외국인 투수와 유독 인연이 없었다. 2016년부터 작년까지 9명의 선수가 팀을 거쳐 갔지만, 누적 WAR(4.54)은 압도적 리그 최하위였다. 이 선수들은 단 35승, 874이닝을 합작하는 데 그쳤다.
고생 끝에 얻은 값진 보상이었을까. 올 시즌 드디어 데이비드 뷰캐넌이라는 잭팟이 터졌다. 15승(공동 3위) 7패 174.2이닝(5위) ERA 3.45(7위) WAR 4.73(6위)을 기록하며 확실한 에이스의 역할을 해주며 전임자들의 누적 WAR을 한 시즌 만에 넘어섰고, 삼성 외인 투수 한 시즌 최다승(98 베이커 14승)도 갱신했다.
전반기에는 다소 기복(ERA 4.15, 피OPS 0.722)이 있었지만, 후반기엔 리그 적응을 끝마친 모습(ERA 2.61, 피OPS 0.643)이었다. 땅볼을 많이 유도하는 투구 스타일(땅볼/뜬공 비율 1.38 리그 전체 5위)과 홈구장의 궁합도 좋다. 선수 본인의 의사만 있다면 재계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뷰캐넌이 선발진을 이끌었다면 후반기 삼성 타선은 김동엽의 원맨쇼라고 해도 무방했다. 2018년 삼성-SK-키움(당시 넥센)의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유니폼을 갈아입은 직후의 2년은 참으로 가혹했다. 본인의 장점과 맞는 타자 친화적 구장에 왔음에도 장타는 잘 터지지 않았고 약점으로 지적받는 부분에 대한 비판만이 늘어갔다.
본인도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가지를 시도했다. 타격 시 배트의 위치도 바꿔 보고 여러 차례 2군에서 재조정을 했지만,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올 시즌 오픈 스탠스*의 타격자세를 확립하며 후반기에 팀이 그에게 기대했던 퍼포먼스(후반기 리그 전체 타율 3위, 장타율 7위, OPS 5위)를 보여줬다.
*오픈스탠스: 앞발이 뒷발보다 뒤에 위치하는 타격 자세
김동엽의 최대 약점은 볼넷이 적고 삼진이 많다는 것이었다. 올해는 이 부분에 있어 지난해보다 다소 개선된 모습(BB/K 0.26 -> 0.37)을 보였다. 또한, 타석에서 조금 더 침착하게 접근하면서 헛스윙으로 인한 스트라이크 비율(24.6% -> 18.2%)은 줄었고, 컨택(컨택률 70% -> 76.4%)은 늘어나는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올 시즌 삼성 타선의 최대 과제는 장타자의 부재였다. 김동엽은 후반기 이 과제의 답을 어느 정도 제시해줬다. 김동엽은 내년 이 과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줄 수 있을까
발전한 선수 – 최채흥 & 김상수
세상살이는 참 알 수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고교 시절 지명받지 못하고 대학진학을 선택한 뒤, 대학 무대 최고의 좌완이 된 최채흥은 올해 데뷔 3년 만에 10승을 달성했다. 팀 내 실질적인 2선발 역할을 수행하면서 국내 선수들 가운데 가장 좋은 평균자책점(3.58, 전체 8위)을 기록했다.
팀과 함께 8월에 부진(ERA 7.63, 피OPS 0.906)한 점은 아쉽지만, 나머지 기간은 꾸준했다. 월별 평균자책점을 3점대로 유지하면서 시즌 내내 계산이 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 단계 성장하며 올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가운데, 내년에 있을 도쿄올림픽은 또 한 번의 충분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데뷔 12년 차를 맞는 베테랑 선수한테 발전이라는 표현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분명 올해의 김상수는 타석에서 한층 노련해진 모습을 보였다. 주로 리드오프로 출전하며 투구를 더 많이 지켜보려는 노력(통산 BB % 8.2%, 20시즌 11.7%)이 데뷔 첫 3할 타율(0.304)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줄어든 도루 개수(21개 -> 10개)와 시즌 중반의 부상으로 인한 결장이 아쉬웠지만 올 시즌의 타격성적을 유지한다면 향후 2~3년간 리드오프는 김상수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31세 시즌을 맞는 김상수지만 두 번째 FA라는 목표가 있기에 2루, 그리고 리드오프 자리에 대한 걱정은 당분간 미룰 수 있을 것이다.
기대되는 미래 – 김지찬
사실 올 시즌 김지찬의 성적은 전혀 돋보이지 않는다(21도루, OPS 0.573). 드래프트 당시부터 조금 다른 의미로 돋보이는 피지컬에 의해 주목을 받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즌이 점차 진행될수록 2루수와 유격수를 전부 소화할 수 있는 안정된 수비, 타석에서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며 실력으로 본인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올 시즌 김지찬은 20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들 중 컨택률 24위(86.4%), 헛스윙률 26위(9.6%)를 기록했는데, 신인급 선수들 중 꽤나 좋은 컨택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김지찬의 준수한 컨택을 고려해보면 어린 선수들이 데뷔 후 컨택이 무너지며 겪는 문제점들은 겪지 않을 확률이 높다
물론 풀 시즌을 치르면 하락할 수 있는 지표지만, 이제 겨우 1년 차고 무엇보다 전직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가 본인의 후계자로 직접 뽑은 선수다. 성공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KIA의 김선빈처럼 또 한 번 언더사이즈들의 선전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쉬운 선수 – 장필준 & 우규민
오승환이 떠나고 임창용이 급한 불을 꺼준 뒤, 심창민까지 군입대를 해버린 삼성은 마무리 투수를 맡아줄 선수가 필요했다. 그 공백을 메꿔준 선수는 장필준이었다. 150km/h를 넘나드는 직구를 꽂아 넣는 모습은 분명 코치진과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장필준은 본격적으로 불펜의 주축이 된 2017시즌부터 매 시즌 두 자릿수 세이브 혹은 홀드를 올리면서 자기 몫은 해줬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믿고 맡길만한 투수라는 인상은 심어주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올 시즌에는 직구 구속의 하락으로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시즌 말미에 선발투수로 보직을 전환하며 시즌 최고 구속(151km/h)을 기록했지만, 냉정하게 올 시즌의 장필준은 분명 실망스러웠다. 추후 어떤 보직으로 기용될지 확실치 않지만 어린 투수들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올 시즌 우규민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6월까지 2승 7세이브 2홀드를 기록하며 뒷문을 든든히 지켜줬다. 오승환과 보직을 교체한 7월에도 1패 4홀드를 기록하며 셋업맨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7월 25일 KIA전에서 아웃 카운트를 한 개도 잡지 못하며 4실점 한 뒤 반등하지 못하고 8월과 9월을 완전히 망쳤다.
물론 긴 시즌을 치르면서 슬럼프 기간이 올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규민의 부진한 두 달(8월 9경기 ERA 6.48, 9월 6경기 ERA 23.14)은 너무 치명적이었다
우규민은 지난 3시즌 동안 팀 내 투수 중 최다등판 2위(154경기)를 기록하는 등 주축 불펜으로 활약해줬다. 하지만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올해를 포함해 지난 4년 동안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활약을 펼친 것도 사실이다. 또한 내년 36세 시즌을 맞는 나이까지 고려하면 결별이 합리적 결정이라고 보인다.
결론 및 앞으로의 KEY POINT
1) 부상 관리
서두에 언급했듯이 시즌 초, 중반까지 삼성의 기세는 놀라웠다. 그런데도 ‘여름성’의 명성을 이어가지 못하고 부진한 8월을 보낸 가장 큰 이유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 여파였다. 시즌 내내 박해민, 김상수, 구자욱 등 주축 타자들은 돌아가며 부상에 신음했고,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던 외국인 타자 살라디노와도 결국 건강 문제(허리)로 결별했다.
부상자가 많은 팀은 탄력을 받고 치고 나가야 할 때 플랜A를 가동하기 어렵다. 탄탄한 뎁스를 바탕으로 승부를 보거나, 부상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삼성은 뎁스로 승부를 보기는 다소 어려운 상황. 물론 시즌 내내 모든 부상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높은 곳을 노리기 위해서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관리부터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2) 이제는 옥석을 가려야 할 때
최근 몇 년간 하위권을 기록한 삼성은 기대가 되는 유망주들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키워볼 만한 자원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건 고무적이지만 이제는 이들 중에서 1군 무대에 통할 만한 선수를 골라내야 할 시점이 왔다. 다행히 올 시즌 저조한 팀 성적과는 달리 투/타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대거 등장했다.
투수진에는 이승민, 허윤동, 황동재 등이 올 시즌 1군 무대에 데뷔했고 부상에서 복귀하는 양창섭도 내년 시즌부터 풀타임 소화가 가능하다. 2군에서 마무리 수업을 받던 장지훈이 혹독한 시즌을 보냈다는 것과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던 최충연이 수술 후 내후년 시즌에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야수진에는 김호재, 박승규, 이성곤, 이성규 등이 데뷔 후 처음으로 1군에서 100타석 이상 들어섰다. 각자 보완해야 할 명확한 단점들도 보였지만, 이성규의 두 자릿수 홈런, 이성곤의 준수한 장타율(0.439)처럼 확실한 성과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삼성은 코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의 나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형성되어 있기에 세대교체가 그렇게 급하지는 않다. 다만 매년 새로운 선수들을 데뷔’만’ 시키는 것을 넘어 이제는 옥석을 가려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야수 쪽에서도 경쟁을 통해 진짜로 통할 수 있는 자원을 골라내야 한다.
3) 전력보강과 라이블리의 재계약
시즌 말미에 삼성과 SK의 중계방송에서 양준혁 해설위원은 이런 말을 했다. “많은 타자들(김동엽, 김상수)이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는데 삼성의 순위는 8위, 이건 타선에 전력보강이 필요한 거다.” 삼성의 현주소를 정확히 짚으면서 오프시즌 최우선 과제인 타선 보강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잘 보여주는 촌철살인의 멘트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은 올 시즌 세 포지션에서 팀별 포지션 합산 wRC+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그 포지션들은 1루수(10위, 65.2), 유격수(8위, 58.2), 우익수(9위, 68.6)다. 이 중에서 가장 아쉬운 건 지명타자를 제외한 야수들 중 가장 높은 타격 생산력(리그 1루수 평균 wRC+ 113.2)을 기록한 1루에서 가장 좋지 않은 타격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 FA 영입 등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중요한 점은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타선의 중심을 잡아줄 거포의 영입은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구장을 타자 친화적으로 만들었으면 그 이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20시즌 삼성 팀 홈런 129개 / 팀 피홈런 151개).
뷰캐넌은 성공적이었지만, 그의 파트너 라이블리는 다소 애매한 시즌을 보냈다. 시즌 초반 두 번의 부상으로 두 달 가까이 결장했고, 돌아온 이후에도 사실 썩 인상적이진 못했다.
이미 가을야구가 멀어진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9경기에 선발로 나가 4승과 3.1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반등하는 듯했지만, 마지막 두 경기에서 크게 부진하며(12이닝 9자책 6.75) 재계약이 불투명했다. 하지만 삼성은 라이블리와 총액 90만 달러 계약을 맺으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마치며
삼성 왕조라 불리던 황금의 5년 동안 5번의 리그 우승과 4번의 통합 우승을 일궈냈다. 그 후 5년은 잃어버린 5년(리그 순위 9-9-6-8-8)이었다. 황금의 5년을 이끌었던 주역들도 한 명, 두 명씩 씁쓸하게 퇴장하고 있다.
이제 황금의 5년보다 잃어버린 5년을 기억하는 팬이 더 많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성적과는 별개로 소중한 추억으로 본인들을 간직하던 많은 팬을 위해서라도 명예로운 퇴장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할 때이지 않을까?
야구공작소
송동욱 칼럼니스트 / 에디터=이상평
[스포탈코리아]
프롤로그 – 왕조는 이제 옛말. 황금의 5년, 잃어버린 5년
삼성은 지난 몇 년과 마찬가지로 시즌이 종료되자마자 빠른 행보를 보였다. 3년 동안 실망스러운 성적(6위-8위-8위)을 거둔 김한수 감독을 대체하여 전력분석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허삼영 전력분석팀장을 15대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새로운 한 해를 준비했다.
전력분석팀장으로 근무했던 경력을 앞세워 ‘데이터 야구’를 표방한 허삼영호는 시즌 초중반 한때 4위까지 내달렸지만,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뒷심부족으로 올해도 결국 8위에 그쳤다. 올 시즌 KT 위즈가 창단 첫 가을야구에 진출하면서 현재 KBO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팀이라는 불명예까지 떠안게 됐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타선이었다. 특히 공인구 교체 속에서도 지난 시즌 리그 2위(122개)를 기록한 팀 홈런이 올해 크게 감소(리그 7위, 129개)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팀 홈런(413개)의 약 20%(86개)를 책임진 러프의 공백이 느껴지는 변화였다.
뷰캐넌과 최채흥을 필두로 한 선발진은 선전했지만, 기복이 너무 심했다(QS+ / 퀵후크 전부 1위). 시즌 중반 오승환이 복귀했음에도 불펜은 완전히 붕괴(WAR 9위 – 5.21 ERA 9위 – 5.47)한 수준이었다. 안 좋은 지난 몇 시즌 동안에도 잠깐씩 번뜩였던 팀의 잠재력이 전부 증발한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암울한 시즌이었지만 희소식이 있다면, 총액 92억 원을 지불해 영입한 두 FA 선수(이원석 27억, 우규민 65억)의 계약이 올 시즌으로 종료된다. 금액 대비 이원석의 활약은 준수(17~20 WAR 8.07 팀 내 4위)했지만 그에 비해 2배 이상의 금액을 지불한 우규민은 실망스러웠다(17~20 WAR 3.56 팀 내 7위).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당시의 투자가 정말 필요했는지 판단하는 건 무의미하다. 전반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삼성의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자원들이 FA 시장에 나온 상황에서 두 선수와의 계약 종료로 인해 페이롤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은 호재다.
최고의 선수 – 뷰캐넌 & 김동엽
암흑기가 진행되는 동안 삼성은 외국인 투수와 유독 인연이 없었다. 2016년부터 작년까지 9명의 선수가 팀을 거쳐 갔지만, 누적 WAR(4.54)은 압도적 리그 최하위였다. 이 선수들은 단 35승, 874이닝을 합작하는 데 그쳤다.
고생 끝에 얻은 값진 보상이었을까. 올 시즌 드디어 데이비드 뷰캐넌이라는 잭팟이 터졌다. 15승(공동 3위) 7패 174.2이닝(5위) ERA 3.45(7위) WAR 4.73(6위)을 기록하며 확실한 에이스의 역할을 해주며 전임자들의 누적 WAR을 한 시즌 만에 넘어섰고, 삼성 외인 투수 한 시즌 최다승(98 베이커 14승)도 갱신했다.
전반기에는 다소 기복(ERA 4.15, 피OPS 0.722)이 있었지만, 후반기엔 리그 적응을 끝마친 모습(ERA 2.61, 피OPS 0.643)이었다. 땅볼을 많이 유도하는 투구 스타일(땅볼/뜬공 비율 1.38 리그 전체 5위)과 홈구장의 궁합도 좋다. 선수 본인의 의사만 있다면 재계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뷰캐넌이 선발진을 이끌었다면 후반기 삼성 타선은 김동엽의 원맨쇼라고 해도 무방했다. 2018년 삼성-SK-키움(당시 넥센)의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유니폼을 갈아입은 직후의 2년은 참으로 가혹했다. 본인의 장점과 맞는 타자 친화적 구장에 왔음에도 장타는 잘 터지지 않았고 약점으로 지적받는 부분에 대한 비판만이 늘어갔다.
본인도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가지를 시도했다. 타격 시 배트의 위치도 바꿔 보고 여러 차례 2군에서 재조정을 했지만,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올 시즌 오픈 스탠스*의 타격자세를 확립하며 후반기에 팀이 그에게 기대했던 퍼포먼스(후반기 리그 전체 타율 3위, 장타율 7위, OPS 5위)를 보여줬다.
*오픈스탠스: 앞발이 뒷발보다 뒤에 위치하는 타격 자세
김동엽의 최대 약점은 볼넷이 적고 삼진이 많다는 것이었다. 올해는 이 부분에 있어 지난해보다 다소 개선된 모습(BB/K 0.26 -> 0.37)을 보였다. 또한, 타석에서 조금 더 침착하게 접근하면서 헛스윙으로 인한 스트라이크 비율(24.6% -> 18.2%)은 줄었고, 컨택(컨택률 70% -> 76.4%)은 늘어나는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올 시즌 삼성 타선의 최대 과제는 장타자의 부재였다. 김동엽은 후반기 이 과제의 답을 어느 정도 제시해줬다. 김동엽은 내년 이 과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줄 수 있을까
발전한 선수 – 최채흥 & 김상수
세상살이는 참 알 수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고교 시절 지명받지 못하고 대학진학을 선택한 뒤, 대학 무대 최고의 좌완이 된 최채흥은 올해 데뷔 3년 만에 10승을 달성했다. 팀 내 실질적인 2선발 역할을 수행하면서 국내 선수들 가운데 가장 좋은 평균자책점(3.58, 전체 8위)을 기록했다.
팀과 함께 8월에 부진(ERA 7.63, 피OPS 0.906)한 점은 아쉽지만, 나머지 기간은 꾸준했다. 월별 평균자책점을 3점대로 유지하면서 시즌 내내 계산이 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 단계 성장하며 올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가운데, 내년에 있을 도쿄올림픽은 또 한 번의 충분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데뷔 12년 차를 맞는 베테랑 선수한테 발전이라는 표현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분명 올해의 김상수는 타석에서 한층 노련해진 모습을 보였다. 주로 리드오프로 출전하며 투구를 더 많이 지켜보려는 노력(통산 BB % 8.2%, 20시즌 11.7%)이 데뷔 첫 3할 타율(0.304)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줄어든 도루 개수(21개 -> 10개)와 시즌 중반의 부상으로 인한 결장이 아쉬웠지만 올 시즌의 타격성적을 유지한다면 향후 2~3년간 리드오프는 김상수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31세 시즌을 맞는 김상수지만 두 번째 FA라는 목표가 있기에 2루, 그리고 리드오프 자리에 대한 걱정은 당분간 미룰 수 있을 것이다.
기대되는 미래 – 김지찬
사실 올 시즌 김지찬의 성적은 전혀 돋보이지 않는다(21도루, OPS 0.573). 드래프트 당시부터 조금 다른 의미로 돋보이는 피지컬에 의해 주목을 받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즌이 점차 진행될수록 2루수와 유격수를 전부 소화할 수 있는 안정된 수비, 타석에서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며 실력으로 본인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올 시즌 김지찬은 20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들 중 컨택률 24위(86.4%), 헛스윙률 26위(9.6%)를 기록했는데, 신인급 선수들 중 꽤나 좋은 컨택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김지찬의 준수한 컨택을 고려해보면 어린 선수들이 데뷔 후 컨택이 무너지며 겪는 문제점들은 겪지 않을 확률이 높다
물론 풀 시즌을 치르면 하락할 수 있는 지표지만, 이제 겨우 1년 차고 무엇보다 전직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가 본인의 후계자로 직접 뽑은 선수다. 성공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KIA의 김선빈처럼 또 한 번 언더사이즈들의 선전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쉬운 선수 – 장필준 & 우규민
오승환이 떠나고 임창용이 급한 불을 꺼준 뒤, 심창민까지 군입대를 해버린 삼성은 마무리 투수를 맡아줄 선수가 필요했다. 그 공백을 메꿔준 선수는 장필준이었다. 150km/h를 넘나드는 직구를 꽂아 넣는 모습은 분명 코치진과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장필준은 본격적으로 불펜의 주축이 된 2017시즌부터 매 시즌 두 자릿수 세이브 혹은 홀드를 올리면서 자기 몫은 해줬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믿고 맡길만한 투수라는 인상은 심어주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올 시즌에는 직구 구속의 하락으로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시즌 말미에 선발투수로 보직을 전환하며 시즌 최고 구속(151km/h)을 기록했지만, 냉정하게 올 시즌의 장필준은 분명 실망스러웠다. 추후 어떤 보직으로 기용될지 확실치 않지만 어린 투수들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올 시즌 우규민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6월까지 2승 7세이브 2홀드를 기록하며 뒷문을 든든히 지켜줬다. 오승환과 보직을 교체한 7월에도 1패 4홀드를 기록하며 셋업맨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7월 25일 KIA전에서 아웃 카운트를 한 개도 잡지 못하며 4실점 한 뒤 반등하지 못하고 8월과 9월을 완전히 망쳤다.
물론 긴 시즌을 치르면서 슬럼프 기간이 올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규민의 부진한 두 달(8월 9경기 ERA 6.48, 9월 6경기 ERA 23.14)은 너무 치명적이었다
우규민은 지난 3시즌 동안 팀 내 투수 중 최다등판 2위(154경기)를 기록하는 등 주축 불펜으로 활약해줬다. 하지만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올해를 포함해 지난 4년 동안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활약을 펼친 것도 사실이다. 또한 내년 36세 시즌을 맞는 나이까지 고려하면 결별이 합리적 결정이라고 보인다.
결론 및 앞으로의 KEY POINT
1) 부상 관리
서두에 언급했듯이 시즌 초, 중반까지 삼성의 기세는 놀라웠다. 그런데도 ‘여름성’의 명성을 이어가지 못하고 부진한 8월을 보낸 가장 큰 이유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 여파였다. 시즌 내내 박해민, 김상수, 구자욱 등 주축 타자들은 돌아가며 부상에 신음했고,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던 외국인 타자 살라디노와도 결국 건강 문제(허리)로 결별했다.
부상자가 많은 팀은 탄력을 받고 치고 나가야 할 때 플랜A를 가동하기 어렵다. 탄탄한 뎁스를 바탕으로 승부를 보거나, 부상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삼성은 뎁스로 승부를 보기는 다소 어려운 상황. 물론 시즌 내내 모든 부상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높은 곳을 노리기 위해서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관리부터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2) 이제는 옥석을 가려야 할 때
최근 몇 년간 하위권을 기록한 삼성은 기대가 되는 유망주들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키워볼 만한 자원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건 고무적이지만 이제는 이들 중에서 1군 무대에 통할 만한 선수를 골라내야 할 시점이 왔다. 다행히 올 시즌 저조한 팀 성적과는 달리 투/타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대거 등장했다.
투수진에는 이승민, 허윤동, 황동재 등이 올 시즌 1군 무대에 데뷔했고 부상에서 복귀하는 양창섭도 내년 시즌부터 풀타임 소화가 가능하다. 2군에서 마무리 수업을 받던 장지훈이 혹독한 시즌을 보냈다는 것과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던 최충연이 수술 후 내후년 시즌에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야수진에는 김호재, 박승규, 이성곤, 이성규 등이 데뷔 후 처음으로 1군에서 100타석 이상 들어섰다. 각자 보완해야 할 명확한 단점들도 보였지만, 이성규의 두 자릿수 홈런, 이성곤의 준수한 장타율(0.439)처럼 확실한 성과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삼성은 코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의 나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형성되어 있기에 세대교체가 그렇게 급하지는 않다. 다만 매년 새로운 선수들을 데뷔’만’ 시키는 것을 넘어 이제는 옥석을 가려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야수 쪽에서도 경쟁을 통해 진짜로 통할 수 있는 자원을 골라내야 한다.
3) 전력보강과 라이블리의 재계약
시즌 말미에 삼성과 SK의 중계방송에서 양준혁 해설위원은 이런 말을 했다. “많은 타자들(김동엽, 김상수)이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는데 삼성의 순위는 8위, 이건 타선에 전력보강이 필요한 거다.” 삼성의 현주소를 정확히 짚으면서 오프시즌 최우선 과제인 타선 보강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잘 보여주는 촌철살인의 멘트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은 올 시즌 세 포지션에서 팀별 포지션 합산 wRC+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그 포지션들은 1루수(10위, 65.2), 유격수(8위, 58.2), 우익수(9위, 68.6)다. 이 중에서 가장 아쉬운 건 지명타자를 제외한 야수들 중 가장 높은 타격 생산력(리그 1루수 평균 wRC+ 113.2)을 기록한 1루에서 가장 좋지 않은 타격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 FA 영입 등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중요한 점은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타선의 중심을 잡아줄 거포의 영입은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구장을 타자 친화적으로 만들었으면 그 이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20시즌 삼성 팀 홈런 129개 / 팀 피홈런 151개).
뷰캐넌은 성공적이었지만, 그의 파트너 라이블리는 다소 애매한 시즌을 보냈다. 시즌 초반 두 번의 부상으로 두 달 가까이 결장했고, 돌아온 이후에도 사실 썩 인상적이진 못했다.
이미 가을야구가 멀어진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9경기에 선발로 나가 4승과 3.1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반등하는 듯했지만, 마지막 두 경기에서 크게 부진하며(12이닝 9자책 6.75) 재계약이 불투명했다. 하지만 삼성은 라이블리와 총액 90만 달러 계약을 맺으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마치며
삼성 왕조라 불리던 황금의 5년 동안 5번의 리그 우승과 4번의 통합 우승을 일궈냈다. 그 후 5년은 잃어버린 5년(리그 순위 9-9-6-8-8)이었다. 황금의 5년을 이끌었던 주역들도 한 명, 두 명씩 씁쓸하게 퇴장하고 있다.
이제 황금의 5년보다 잃어버린 5년을 기억하는 팬이 더 많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성적과는 별개로 소중한 추억으로 본인들을 간직하던 많은 팬을 위해서라도 명예로운 퇴장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할 때이지 않을까?
야구공작소
송동욱 칼럼니스트 / 에디터=이상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