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시즌 성적 – 정규시즌 6위 (73승 71패 0무 승률 0.507)
[스포탈코리아]
리빌딩과 포스트시즌의 기로에서
2019시즌 KIA는 분명 ‘실패한 팀’은 아니었다. 리그 도중에 김기태 전 감독이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뒤를 이어받은 박흥식 감독대행은 부임 이후 5할에 단 -1이라는 성적을 남기며 내년을 기대하게 했다(5월 16일까지 12승 29패, 이후 50승 51패). 박준표 – 전상현 – 문경찬이라는 리그에서 가장 젊고 유망한 불펜진을 구축했으며, 군 문제를 현역으로 해결한 박찬호가 내야진에 등장하면서 리빌딩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시즌 도중 우승의 주역 이명기를 외야 유망주 이우성과 바꿔오면서, KIA는 리빌딩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박흥식 감독대행 하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 것을 본 조계현 단장은, 방향을 바꿔 포스트시즌을 향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우선 박흥식 감독대행을 감독으로 선임하는 대신, 메이저리그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맷 윌리엄스 감독을 3년 계약으로 데려왔다. 수석코치에는 윌리엄스 감독과 수비 포지셔닝 코치로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마크 위드마이어를 선임했다. 윌리엄스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인사였다. 더불어 코치진 또한 최희섭/송지만 타격코치, 진갑용 배터리코치 등 선수 시절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코치들로 정비했다.
반면 선수 영입에서는 ‘합리적인 영입’ 기조를 유지했다. 2019년 장타력과 수비 능력에서 의문부호가 붙은 2루수 안치홍을 잡지 않았으며, 유격수 김선빈은 4년 40억의 계약을 체결하면서 잔류시켰다. 이는 작년 주전 유격수 김선빈을 2루수로, 주전 3루수 박찬호를 유격수로 기용하겠다는 의미였다. 박찬호가 떠난 3루수 자리는 박준태와 현금 2억을 대가로 키움 히어로즈로부터 장영석을 받아오면서 채웠다. 기대에 못 미친 외국인 투수 조 윌랜드(WAR 1.68)와 제이콥 터너(WAR -0.46)는 애런 브룩스(68만$), 드류 가뇽(85만$)으로 대체하고, 대체 외국인 타자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프레스턴 터커는 재계약(85만$)하면서 외국인 구성 또한 마쳤다.
투수왕국의 신기루, 2달 만에 흩어지다
KIA가 시즌에 들어가기 전 가장 우려됐던 요소는 확실한 하위 로테이션 선발의 부재였다. 1년차 김기훈(79.1이닝 ERA 5.56)은 제구에서 불안점을 노출했고, 차명진(33이닝 ERA 4.36)은 부상으로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빠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윌리엄스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이민우와 후반기 반등의 실마리(전반기 11.1이닝 ERA 10.32 → 후반기 37.1이닝 ERA 4.34)를 찾은 임기영을 각각 4선발과 5선발로 내정했다.
시즌 개막 후 이민우와 임기영은 기대치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을 설레게 했다. 이민우는 한 달 동안 경기당 6이닝을 넘게 소화하면서 30.2이닝 23삼진 ERA 3.23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거두었으며, 임기영은 5월 21.0이닝 ERA 3.86으로 이에 뒤지지 않는 활약을 했다. 6월에 이민우가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15.0이닝 ERA 9.00), 임기영이 이를 메꿔주면서(22.1이닝 ERA 2.01) 선발 고민은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두 외국인 투수 애런 브룩스, 드류 가뇽도 연일 상대를 압도하는 투구를 보여주고 있었고, 유일한 고민은 양현종스럽지 않은 성적을 받아들고 있었던 토종 에이스 양현종이었다.
작년의 가장 큰 성과였던 ‘박-전-문’ 트리오 또한 건재했다. 7회 박준표 – 8회 전상현 – 9회 문경찬으로 이어지는 불펜진은 상대의 역전 가능성을 차단했다. 박준표는 작년 좋았던 사사구 비율(BB/9 0.96)을 더 낮추면서 안정적인 투구를 이어갔고, 전상현은 6월 초까지 ‘미스터 제로’를 유지했다. 문경찬은 스타트는 늦었지만 6월 23일 롯데전까지 5개의 터프세이브를 포함한 10세이브 0블론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다.
6월 23일 사직, 최형우의 3타점으로 3-0으로 앞서 나가던 KIA는 전상현이 8회에 1실점하더니, 노블론 마무리였던 문경찬이 4안타를 얻어맞고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롯데에게 3-4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불펜 3대장’을 내세워 KBO의 ‘2014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꿈꾸던 KIA의 계획은 차차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박-전-문’은 이 경기 이후 문경찬이 이탈하면서 균열이 났고, 7월에 선발 3명 이민우, 임기영, 양현종이 모두 부진한 성적을 보여주면서 선발야구 또한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이들의 부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임기영은 2017년 이후 첫 풀타임을 소화하고 있었고, 이민우는 이번 시즌 전까지 64경기 중 10경기만을 선발로 출전하는 등 고정적인 선발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문경찬은 작년 시즌 GO/FO(땅볼/뜬공 비율)이 0.54로 리그에서 가장 플라이볼을 많이 생산해내는 투수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 (알 수 없는 이유로) 타자들의 플라이볼이 멀리 날아가기 시작하자, 피홈런이 급증하며 무너져 내렸다.
부상, 또 부상, 그리고 트레이드
KIA는 시즌 시작 전부터 선발 중견수 이창진과 유망주 투수 차명진이 부상으로 연습경기에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연습경기에서는 좌완 불펜 하준영이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으며, 이창진을 대체할 김호령 역시 허리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 때문에 시즌 초부터 중견수와 좌완 불펜에 고민을 안고 있었으며, 대체 자원인 최원준과 이준영, 김명찬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었다. 3루수 자리를 맡긴 장영석은 처참한 성적을 남긴 채(11G .129 .243 .129 0홈런)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SK와의 무상 트레이드로 얻은 나주환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자리를 채웠지만 뎁스는 점점 얇아져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조계현 단장은 투수 자원을 매물로 내야 자원을 보강할 구상을 세웠다. 이는 불펜 투수의 부진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두산 베어스에게 홍건희를 내주고 내야 유틸리티 류지혁을 받아오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내야의 핵심이었던 김선빈이 트레이드 직후 허벅지 부상으로 이탈했으며, 두산에서 받아온 류지혁은 단 5경기를 뛰고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다. 8월 말에는 3루수 공백을 채워주던 나주환도 허리 디스크로 시즌 아웃되면서 내야는 완전히 황폐화되었다. 이 때문에 주전 유격수 박찬호가 부진함에도 ‘선수가 없어서’ 대체 자원을 기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외야에서는 김호령이 6월 초에 복귀해 한 달 동안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이창진이 7월 초에 복귀하면서 완전한 전력이 되었으나 8월 7일 다시 이창진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말소되면서 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부활한 나지완과 장타력을 장착한 프레스턴 터커, 그리고 해결사 최형우가 구성하는 중심 타선으로 시즌 성적은 꾸준히 5할 위를 유지했으나,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뎁스 보강이 필수적이었다.
조계현 단장은 7월에 들어 균열이 생긴 선발진과 내야 뎁스를 보강할 생각으로 불펜 투수가 필요한 NC 다이노스에 접근했다. 트레이드 시점까지 41승 37패로, 불안한 5위를 달리고 있었던 KIA의 원동력은 불펜의 힘이었다. 당시 KIA의 불펜 ERA는 1위로, 박준표가 손가락 부상으로 잠시 이탈했지만 전상현을 중심으로 한 필승조가 건재했고 두산에서 온 홍상삼과 루키 정해영, 고영창이 그 아래를 받쳐주고 있었다. 이에 8월 12일, 6월 이후 완전히 폼을 잃어버린 문경찬과 유망주 박정수를 내주고 NC에게서 내야수 김태진과 투수 장현식을 받는 승부수를 던진다. 내야 자원과 선발 자원의 동시 보강을 노린 트레이드였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2020시즌 운명을 결정짓는 패착이 되어버린다.
불운과 미숙이 빚어낸 반쪽짜리 시즌
트레이드 이후, 시작은 좋았다. 양현종이 부진의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선발진에 숨통이 트였고, 주전 3루수로 자리를 잡은 김태진은 9월 .321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내야의 희망이 되었다. 하지만 홍건희, 문경찬, 박정수까지 세 명의 투수가 이탈한 투수진은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박준표에 이어 전상현까지 종아리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고졸 1년차 투수 정해영에게 너무 많은 역할이 부여되고 있었고, 그를 받쳐줘야 할 홍상삼(9월 8이닝 ERA 7.88)과 고영창(9월 6이닝 ERA 16.50)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에이스 브룩스가 WAR 7을 돌파하고, 가뇽과 양현종이 로테이션을 지켜주었지만 이민우와 임기영은 후반기 들어 극도로 부진하면서 투수진의 양극화 또한 심해졌다. 한 때 시즌 1위를 달리던 불펜 평균자책점은 트레이드 이후 9위까지 추락했다.
9월 22일, 브룩스가 가족의 교통사고로 인해 사실상 시즌 아웃되면서 KIA의 순위 경쟁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브룩스가 이탈하고도 9월 마지막 키움과의 시리즈를 스윕승하면서 선두에 5.5게임까지 다가갔으나, 이어진 5위 경쟁팀 두산과의 시리즈에서 스윕당하고, 하위권 한화-SK와의 6연전을 2승 4패로 마감하면서 사실상 순위 경쟁은 끝이 났다. 브룩스의 대체 선발이었던 장현식은 이 기간 동안 9.2이닝 13실점하면서 확실한 인상을 주지 못했으며, 뎁스의 부족만을 드러내고 말았다.
최하위권이라 평가받던 시즌 전의 전망에 비하면 선전했음에 틀림없는 시즌이었다. 37세의 최형우는 커리어하이에 근접한 시즌을 보냈으며 타이거즈 외국인 선수 최초 100타점 – 100득점을 만든 터커와 35세 시즌에 반등한 나지완의 활약 역시 대단했다. 특히 최형우는 리그 2위(7.20), 나지완은 리그 11위의 WPA(4.11)을 보여주면서 기록 이상의 무언가를 KIA 타선에 채워주었다. 하위 타선의 집단 부진, 줄부상에 신음하던 KIA를 시즌 막판까지 포스트시즌 경쟁으로 이끈 것은 오롯이 중심 타선의 중량감이었다. 박찬호, 이창진, 김호령 등 많은 후보들이 거쳐간 KIA의 1번 타자 자리는 8월 이후 최원준이 차지했는데, 주전 중견수로 기용된 이후부터 최원준은 완전히 다른 타자로 돌아왔다(8월까지 .268 / .320 / .325 → 9월 이후 .371 / .439 / .495). 여기에 복귀한 김선빈까지 가세하며 이들은 나름 경쟁력 있는 상위타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KIA의 야수진은 ‘명’보다는 ‘암’이 더 많이 보였다. KIA의 내야진은 WAR -0.19을 기록했는데, 이는 KBO 역사상 최악의 내야진으로 기록되었다. 그중 박찬호, 김태진, 김규성은 WAR -2.62를 합작하면서 처참한 기록을 남겼다. 박찬호는 시즌 내내 주전 유격수로 기용되었으며, 김태진은 트레이드 이후 꾸준히 주전 3루수를 맡았다. 그리고 김규성은 이들을 백업하는 내야 유틸 백업이었으니, 최소한 2020시즌 KIA의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는 ‘대체 선수가 없어서’ 의미가 없었다.
투수진에서도 문경찬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전상현과 박준표는 건재했으며, 임기영이 풀시즌 로테이션을 소화했다. 브룩스는 이탈 전까지 리그 최고의 외국인 투수 중 하나였으며, 가뇽은 윌랜드와 터너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후반기 좌완 원포인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이준영과 고등학교 졸업 1년 만에 1군 필승조까지 꿰찬 정해영의 활약도 눈부셨다. 문제는 이들을 포함한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대체 선수 수준조차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후반기에 무너졌다.
Goodbye Ace, 축제는 끝났다
2007년 입단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KIA와 함께하던 토종 에이스 양현종은 이번 오프시즌 해외진출을 노리고 있다. 양현종까지 이탈한다면, 2009년 우승과 2017년 우승을 함께했던 선수는 이제 나지완밖에 남지 않게 된다. 더불어 김주찬 또한 선수의 의사를 받아들여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되었다.
남아 있는 주역들 또한 이제 퇴장할 준비를 해야 한다. 3년 47억에 재계약한 최형우는 내년이 만 38세 시즌이며, 언제 기량이 하락해도 놀랍지 않은 나이이다. 올해 부활한 나지완 역시 내년이 36세 시즌이고, 김선빈 또한 30대 중반으로 접어든다. 하지만 이들을 대체할 선수들은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최원준이 올해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아직은 타석에서의 무게감이 다소 부족하며, 황대인, 박민, 홍종표 등 팀 내 주요 야수 유망주들의 성장은 더디다. 최형우를 잡는다 하더라도, 2021 시즌 타선에서 확실한 상수는 외국인 타자 터커 하나뿐이다.
희망적인 것은, 세대 교체의 필요성을 구단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계현 단장은 3년 동안 적극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이창진, 이우성, 류지혁, 김태진 등 20대 중반 야수들을 수집했으며, 현장에서도 지속적으로 김규성, 이진영, 오선우 등 20대 초중반의 야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마운드에서는 역시 전상현, 박준표, 그리고 올해 복귀하는 김유신 등 젊은 투수들의 군입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하준영, 김기훈, 정해영, 김현수 등 유망주들에게도 1군 마운드에서 기회를 주고 있다. 결과는 아직 좋지 못하더라도, 이러한 방향성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문제는 조급함이다. 올해 문경찬, 박정수 ↔ 장현식, 김태진 트레이드는 미래를 보기보다는, 부상으로 인해 구멍이 뚫린 내야 뎁스를 강화하고 선발진에 힘을 실어주려는 단기처방에 가까웠다. 내년 복귀 예정인 류지혁이 있는데도 내야 중복자원인 김태진을 96년생 투수 박정수를 주고 데려온 것은, KIA가 포스트시즌에 아직 미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였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투수진의 붕괴를 불러왔고, 결국에는 팬들의 원성만을 들은 채 포스트시즌 진출과 리빌딩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구단은 성과로 말하는 것이 맞지만, 단기간의 성과에 집중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구성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2017년의 우승으로 영원할 줄 알았던 타이거즈의 축제는 에이스의 퇴장과 함께 끝났다. 이제는 다음 축제를 준비할 시점이다. 내년에도 포스트시즌에서 KIA 타이거즈의 이름이 보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2008년, 2016년처럼 다음 축제를 이끌어 갈 주역을 발굴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시즌이 될 것이다.
야구공작소
조광은 칼럼니스트 / 에디터=나상인
기록 출처=스탯티즈
[스포탈코리아]
리빌딩과 포스트시즌의 기로에서
2019시즌 KIA는 분명 ‘실패한 팀’은 아니었다. 리그 도중에 김기태 전 감독이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뒤를 이어받은 박흥식 감독대행은 부임 이후 5할에 단 -1이라는 성적을 남기며 내년을 기대하게 했다(5월 16일까지 12승 29패, 이후 50승 51패). 박준표 – 전상현 – 문경찬이라는 리그에서 가장 젊고 유망한 불펜진을 구축했으며, 군 문제를 현역으로 해결한 박찬호가 내야진에 등장하면서 리빌딩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시즌 도중 우승의 주역 이명기를 외야 유망주 이우성과 바꿔오면서, KIA는 리빌딩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박흥식 감독대행 하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 것을 본 조계현 단장은, 방향을 바꿔 포스트시즌을 향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우선 박흥식 감독대행을 감독으로 선임하는 대신, 메이저리그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맷 윌리엄스 감독을 3년 계약으로 데려왔다. 수석코치에는 윌리엄스 감독과 수비 포지셔닝 코치로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마크 위드마이어를 선임했다. 윌리엄스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인사였다. 더불어 코치진 또한 최희섭/송지만 타격코치, 진갑용 배터리코치 등 선수 시절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코치들로 정비했다.
반면 선수 영입에서는 ‘합리적인 영입’ 기조를 유지했다. 2019년 장타력과 수비 능력에서 의문부호가 붙은 2루수 안치홍을 잡지 않았으며, 유격수 김선빈은 4년 40억의 계약을 체결하면서 잔류시켰다. 이는 작년 주전 유격수 김선빈을 2루수로, 주전 3루수 박찬호를 유격수로 기용하겠다는 의미였다. 박찬호가 떠난 3루수 자리는 박준태와 현금 2억을 대가로 키움 히어로즈로부터 장영석을 받아오면서 채웠다. 기대에 못 미친 외국인 투수 조 윌랜드(WAR 1.68)와 제이콥 터너(WAR -0.46)는 애런 브룩스(68만$), 드류 가뇽(85만$)으로 대체하고, 대체 외국인 타자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프레스턴 터커는 재계약(85만$)하면서 외국인 구성 또한 마쳤다.
투수왕국의 신기루, 2달 만에 흩어지다
KIA가 시즌에 들어가기 전 가장 우려됐던 요소는 확실한 하위 로테이션 선발의 부재였다. 1년차 김기훈(79.1이닝 ERA 5.56)은 제구에서 불안점을 노출했고, 차명진(33이닝 ERA 4.36)은 부상으로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빠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윌리엄스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이민우와 후반기 반등의 실마리(전반기 11.1이닝 ERA 10.32 → 후반기 37.1이닝 ERA 4.34)를 찾은 임기영을 각각 4선발과 5선발로 내정했다.
시즌 개막 후 이민우와 임기영은 기대치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을 설레게 했다. 이민우는 한 달 동안 경기당 6이닝을 넘게 소화하면서 30.2이닝 23삼진 ERA 3.23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거두었으며, 임기영은 5월 21.0이닝 ERA 3.86으로 이에 뒤지지 않는 활약을 했다. 6월에 이민우가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15.0이닝 ERA 9.00), 임기영이 이를 메꿔주면서(22.1이닝 ERA 2.01) 선발 고민은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두 외국인 투수 애런 브룩스, 드류 가뇽도 연일 상대를 압도하는 투구를 보여주고 있었고, 유일한 고민은 양현종스럽지 않은 성적을 받아들고 있었던 토종 에이스 양현종이었다.
작년의 가장 큰 성과였던 ‘박-전-문’ 트리오 또한 건재했다. 7회 박준표 – 8회 전상현 – 9회 문경찬으로 이어지는 불펜진은 상대의 역전 가능성을 차단했다. 박준표는 작년 좋았던 사사구 비율(BB/9 0.96)을 더 낮추면서 안정적인 투구를 이어갔고, 전상현은 6월 초까지 ‘미스터 제로’를 유지했다. 문경찬은 스타트는 늦었지만 6월 23일 롯데전까지 5개의 터프세이브를 포함한 10세이브 0블론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다.
6월 23일 사직, 최형우의 3타점으로 3-0으로 앞서 나가던 KIA는 전상현이 8회에 1실점하더니, 노블론 마무리였던 문경찬이 4안타를 얻어맞고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롯데에게 3-4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불펜 3대장’을 내세워 KBO의 ‘2014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꿈꾸던 KIA의 계획은 차차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박-전-문’은 이 경기 이후 문경찬이 이탈하면서 균열이 났고, 7월에 선발 3명 이민우, 임기영, 양현종이 모두 부진한 성적을 보여주면서 선발야구 또한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이들의 부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임기영은 2017년 이후 첫 풀타임을 소화하고 있었고, 이민우는 이번 시즌 전까지 64경기 중 10경기만을 선발로 출전하는 등 고정적인 선발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문경찬은 작년 시즌 GO/FO(땅볼/뜬공 비율)이 0.54로 리그에서 가장 플라이볼을 많이 생산해내는 투수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 (알 수 없는 이유로) 타자들의 플라이볼이 멀리 날아가기 시작하자, 피홈런이 급증하며 무너져 내렸다.
부상, 또 부상, 그리고 트레이드
KIA는 시즌 시작 전부터 선발 중견수 이창진과 유망주 투수 차명진이 부상으로 연습경기에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연습경기에서는 좌완 불펜 하준영이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으며, 이창진을 대체할 김호령 역시 허리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 때문에 시즌 초부터 중견수와 좌완 불펜에 고민을 안고 있었으며, 대체 자원인 최원준과 이준영, 김명찬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었다. 3루수 자리를 맡긴 장영석은 처참한 성적을 남긴 채(11G .129 .243 .129 0홈런)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SK와의 무상 트레이드로 얻은 나주환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자리를 채웠지만 뎁스는 점점 얇아져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조계현 단장은 투수 자원을 매물로 내야 자원을 보강할 구상을 세웠다. 이는 불펜 투수의 부진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두산 베어스에게 홍건희를 내주고 내야 유틸리티 류지혁을 받아오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내야의 핵심이었던 김선빈이 트레이드 직후 허벅지 부상으로 이탈했으며, 두산에서 받아온 류지혁은 단 5경기를 뛰고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다. 8월 말에는 3루수 공백을 채워주던 나주환도 허리 디스크로 시즌 아웃되면서 내야는 완전히 황폐화되었다. 이 때문에 주전 유격수 박찬호가 부진함에도 ‘선수가 없어서’ 대체 자원을 기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외야에서는 김호령이 6월 초에 복귀해 한 달 동안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이창진이 7월 초에 복귀하면서 완전한 전력이 되었으나 8월 7일 다시 이창진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말소되면서 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부활한 나지완과 장타력을 장착한 프레스턴 터커, 그리고 해결사 최형우가 구성하는 중심 타선으로 시즌 성적은 꾸준히 5할 위를 유지했으나,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뎁스 보강이 필수적이었다.
조계현 단장은 7월에 들어 균열이 생긴 선발진과 내야 뎁스를 보강할 생각으로 불펜 투수가 필요한 NC 다이노스에 접근했다. 트레이드 시점까지 41승 37패로, 불안한 5위를 달리고 있었던 KIA의 원동력은 불펜의 힘이었다. 당시 KIA의 불펜 ERA는 1위로, 박준표가 손가락 부상으로 잠시 이탈했지만 전상현을 중심으로 한 필승조가 건재했고 두산에서 온 홍상삼과 루키 정해영, 고영창이 그 아래를 받쳐주고 있었다. 이에 8월 12일, 6월 이후 완전히 폼을 잃어버린 문경찬과 유망주 박정수를 내주고 NC에게서 내야수 김태진과 투수 장현식을 받는 승부수를 던진다. 내야 자원과 선발 자원의 동시 보강을 노린 트레이드였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2020시즌 운명을 결정짓는 패착이 되어버린다.
불운과 미숙이 빚어낸 반쪽짜리 시즌
트레이드 이후, 시작은 좋았다. 양현종이 부진의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선발진에 숨통이 트였고, 주전 3루수로 자리를 잡은 김태진은 9월 .321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내야의 희망이 되었다. 하지만 홍건희, 문경찬, 박정수까지 세 명의 투수가 이탈한 투수진은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박준표에 이어 전상현까지 종아리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고졸 1년차 투수 정해영에게 너무 많은 역할이 부여되고 있었고, 그를 받쳐줘야 할 홍상삼(9월 8이닝 ERA 7.88)과 고영창(9월 6이닝 ERA 16.50)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에이스 브룩스가 WAR 7을 돌파하고, 가뇽과 양현종이 로테이션을 지켜주었지만 이민우와 임기영은 후반기 들어 극도로 부진하면서 투수진의 양극화 또한 심해졌다. 한 때 시즌 1위를 달리던 불펜 평균자책점은 트레이드 이후 9위까지 추락했다.
9월 22일, 브룩스가 가족의 교통사고로 인해 사실상 시즌 아웃되면서 KIA의 순위 경쟁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브룩스가 이탈하고도 9월 마지막 키움과의 시리즈를 스윕승하면서 선두에 5.5게임까지 다가갔으나, 이어진 5위 경쟁팀 두산과의 시리즈에서 스윕당하고, 하위권 한화-SK와의 6연전을 2승 4패로 마감하면서 사실상 순위 경쟁은 끝이 났다. 브룩스의 대체 선발이었던 장현식은 이 기간 동안 9.2이닝 13실점하면서 확실한 인상을 주지 못했으며, 뎁스의 부족만을 드러내고 말았다.
최하위권이라 평가받던 시즌 전의 전망에 비하면 선전했음에 틀림없는 시즌이었다. 37세의 최형우는 커리어하이에 근접한 시즌을 보냈으며 타이거즈 외국인 선수 최초 100타점 – 100득점을 만든 터커와 35세 시즌에 반등한 나지완의 활약 역시 대단했다. 특히 최형우는 리그 2위(7.20), 나지완은 리그 11위의 WPA(4.11)을 보여주면서 기록 이상의 무언가를 KIA 타선에 채워주었다. 하위 타선의 집단 부진, 줄부상에 신음하던 KIA를 시즌 막판까지 포스트시즌 경쟁으로 이끈 것은 오롯이 중심 타선의 중량감이었다. 박찬호, 이창진, 김호령 등 많은 후보들이 거쳐간 KIA의 1번 타자 자리는 8월 이후 최원준이 차지했는데, 주전 중견수로 기용된 이후부터 최원준은 완전히 다른 타자로 돌아왔다(8월까지 .268 / .320 / .325 → 9월 이후 .371 / .439 / .495). 여기에 복귀한 김선빈까지 가세하며 이들은 나름 경쟁력 있는 상위타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KIA의 야수진은 ‘명’보다는 ‘암’이 더 많이 보였다. KIA의 내야진은 WAR -0.19을 기록했는데, 이는 KBO 역사상 최악의 내야진으로 기록되었다. 그중 박찬호, 김태진, 김규성은 WAR -2.62를 합작하면서 처참한 기록을 남겼다. 박찬호는 시즌 내내 주전 유격수로 기용되었으며, 김태진은 트레이드 이후 꾸준히 주전 3루수를 맡았다. 그리고 김규성은 이들을 백업하는 내야 유틸 백업이었으니, 최소한 2020시즌 KIA의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는 ‘대체 선수가 없어서’ 의미가 없었다.
투수진에서도 문경찬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전상현과 박준표는 건재했으며, 임기영이 풀시즌 로테이션을 소화했다. 브룩스는 이탈 전까지 리그 최고의 외국인 투수 중 하나였으며, 가뇽은 윌랜드와 터너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후반기 좌완 원포인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이준영과 고등학교 졸업 1년 만에 1군 필승조까지 꿰찬 정해영의 활약도 눈부셨다. 문제는 이들을 포함한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대체 선수 수준조차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후반기에 무너졌다.
Goodbye Ace, 축제는 끝났다
2007년 입단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KIA와 함께하던 토종 에이스 양현종은 이번 오프시즌 해외진출을 노리고 있다. 양현종까지 이탈한다면, 2009년 우승과 2017년 우승을 함께했던 선수는 이제 나지완밖에 남지 않게 된다. 더불어 김주찬 또한 선수의 의사를 받아들여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되었다.
남아 있는 주역들 또한 이제 퇴장할 준비를 해야 한다. 3년 47억에 재계약한 최형우는 내년이 만 38세 시즌이며, 언제 기량이 하락해도 놀랍지 않은 나이이다. 올해 부활한 나지완 역시 내년이 36세 시즌이고, 김선빈 또한 30대 중반으로 접어든다. 하지만 이들을 대체할 선수들은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최원준이 올해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아직은 타석에서의 무게감이 다소 부족하며, 황대인, 박민, 홍종표 등 팀 내 주요 야수 유망주들의 성장은 더디다. 최형우를 잡는다 하더라도, 2021 시즌 타선에서 확실한 상수는 외국인 타자 터커 하나뿐이다.
희망적인 것은, 세대 교체의 필요성을 구단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계현 단장은 3년 동안 적극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이창진, 이우성, 류지혁, 김태진 등 20대 중반 야수들을 수집했으며, 현장에서도 지속적으로 김규성, 이진영, 오선우 등 20대 초중반의 야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마운드에서는 역시 전상현, 박준표, 그리고 올해 복귀하는 김유신 등 젊은 투수들의 군입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하준영, 김기훈, 정해영, 김현수 등 유망주들에게도 1군 마운드에서 기회를 주고 있다. 결과는 아직 좋지 못하더라도, 이러한 방향성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문제는 조급함이다. 올해 문경찬, 박정수 ↔ 장현식, 김태진 트레이드는 미래를 보기보다는, 부상으로 인해 구멍이 뚫린 내야 뎁스를 강화하고 선발진에 힘을 실어주려는 단기처방에 가까웠다. 내년 복귀 예정인 류지혁이 있는데도 내야 중복자원인 김태진을 96년생 투수 박정수를 주고 데려온 것은, KIA가 포스트시즌에 아직 미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였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투수진의 붕괴를 불러왔고, 결국에는 팬들의 원성만을 들은 채 포스트시즌 진출과 리빌딩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구단은 성과로 말하는 것이 맞지만, 단기간의 성과에 집중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구성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2017년의 우승으로 영원할 줄 알았던 타이거즈의 축제는 에이스의 퇴장과 함께 끝났다. 이제는 다음 축제를 준비할 시점이다. 내년에도 포스트시즌에서 KIA 타이거즈의 이름이 보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2008년, 2016년처럼 다음 축제를 이끌어 갈 주역을 발굴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시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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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은 칼럼니스트 / 에디터=나상인
기록 출처=스탯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