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오른팔’ 58년생이 뛴다, 후배 지도자 양성에 나선 정해성
입력 : 2022.05.1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양산] 이현민 기자= “저때는 쓸만했죠? 요즘에 곳곳에서 라떼, 라떼하는데 그래도 말씀드리는 이유는, ‘지도자와 선수들이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보여드리는 겁니다.”

정해성 주강사의 노트북 배경화면은 20년 전 당시 정해성 코치를 필두로 2002 전설들이 하늘을 바라보는 사진이다. 베트남 호치민 시티와 결별 후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그가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지난해부터 대한축구협회(KFA) 축구인재육성팀에서 후배 지도자 양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올해 3월 ‘2022 AFC/KFA 1차 C급 지도자 강습회’에 이어 두 달 만에 또 ‘2022 AFC/KFA 4차 C급 지도자 강습회’ 주강사로 강단에 섰다.

‘더운 날씨에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왜 안 힘들겠어, 그래도 후배 지도자가 많이 나오고 내 노하우를 전수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나온 거지. 우리 또래 친구들 만나봐야 소주 한 잔 마시면서 뭐 농담이나 하고 그럴 텐데(웃음)...”



1985년생부터 2001년생까지. 축구라는 카테고리 안에 ‘참된 지도자’라는 목표를 위해 24명의 선생님들이 모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호칭은 ‘선생님’이 원칙이다.

사실 이들 중 다수는 축구로 인해 기뻤던 순간보다 상처가 많았다. 프로에서 고액 연봉을 받았고, 한때 축구로 꽤 명성을 떨쳤던, 축구 하나만큼은 누구에게 꿀리지 않았던 이들이 현재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사연도 제각각이다. 부천FC에서 한 시즌에 20경기를 뛰었던 수비수 출신, 대전시티즌(현재 대전하나시티즌), 강원FC, 충주험멜에 몸담았던 골키퍼 출신 지도자도 있었다. 여성 지도자 한 명도 입과를 했다. 한 말년 병장은 쌓였던 휴가를 내고 온 경우도 있었다.

교육은 경남 양산에서 5월 2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됐다.

지도자 AFC(아시아축구연맹) C코스는 2주(10일) 교육으로 진행되며, 자격을 취득할 경우
‘초등학교 및 만12세 이하 유소년 클럽팀 감독’과 ‘중·고교 및 만 18세 이하 청소년 클럽팀 코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정해성 주강사를 필두로. 김태인(KFA 전임 강사), 백기태(포항스틸러스 디렉터) 보조강사가 이번 교육을 지도했다. 첫날 코스 안내와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오후에는 운동장에서 볼을 다루며 감을 익히는 시간이 마련됐다. 5개 조로 나눠 1차 실기 발표(드리블, 페인트 / 패스, 컨트롤 / 슈팅, 골 / 1대1 공격 / 1대1 수비) 준비, 4일째부터는 2차 발표(8대8 / 빌드업+압박 속 볼 지키기 / 기회 창출 및 마무리 / 그룹 수비 / 공수 전환) 준비에 들어갔다.



발표를 준비하는 조 외에 다른 조는 실제 훈련(오전, 오후)에 참가해 구슬땀을 흘린다. 이때 주강사와 보조강사들은 땡볕 아래에서 선생님들의 지도 방식을 평가하고, 조언도 건넸다.

실외 교육 사이사이 강의실에서는 유소년 성장 발육, 유소년 훈련, 유소년 지도자의 역할, GK 특강, 심리학 특강 등 유소년 지도자들이 갖춰야할 의미 있는 시간도 마련됐다.

강사들이 포인트 집어주며 피드백하는 시간도 있다. 축구 상식과 훈련 프로그램 등이 출제되는 이론 시험, 마지막에는 난이도가 가장 높은 데모코칭평가가 있다. 홀로 가이드1부터, 트랜스퍼2까지 6단계(가이드1, 가이드2, 트랜스퍼1, 어플라이1, 어플라이2, 트랜스퍼2)로 구성된 훈련 계획을 직접 짜고, 구현한다. 이때 뛰는 선수들이 잘한 점, 실수한 점 등을 적절히 코칭한다. 선수들이 훈련을 이해하고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들기 위한 목적이다. 이후 강사들 앞에서 곧바로 구두평가를 받는다.

오전, 오후에 걸쳐 강도 높은 훈련이 지속되다 보니 입에서 ‘단내가 진동’을 했다. 크고 작은 부상자도 생겼다. 한 선생님은 아킬레스건 파열로 교육 중 이탈했다. 서울로 상경해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끝까지 동행할 수 없었다. 무릎, 발목, 근육 부상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다소 분위기가 처질 수 있었던 상황에서 나머지 선생님들이 한데 뭉쳐 정해성 주강사가 강조한 원팀으로 ‘으쌰으쌰’하며 배우고 습득하고 익히고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정해성 주강사는 교육 내내 ‘소통’을 강조했다. “최근 베트남에 3년 동안 있었다. 통역이 있었지만,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왔다. 내 입장만 생각해선 안 된다. 상대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그런 부분을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축구에서 소통이 주는 의미를 언급했다.

아무래도 단체 생활이다 보니 숙소 내(양산 베니키아 호텔)에서도 어느 정도 규율이 적용됐다. 과거 몸에 익었던 습관이 있다 보니 강의 시간, 식사 시간, 복장 등은 알아서 척척했다.

‘기본’과 ‘배려’도 언급했다. 정해성 주강사는 “우리 강사진들은 선생님들보다 먼저 식사를 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배려하고 관찰도 해야 한다. 선두에 서서 이끌고 지휘하는 것 역시 기본”이라고 했다.

그라운드 밖 생활은 물론 그라운드 안에서 이루지는 훈련도 주입식이 아닌 자율에 무게를 뒀다. 김태인 보조강사는 “2018년 미하엘 뮐러 기술발전위원장이 오신 뒤 정형화된 훈련에서 자율적으로 변했다. 우리 강사진이 틀을 잡아주면 선생님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훈련 대상을 고려해 스스로 계획을 수립하고 최종 경기까지 진행할 수 있게 개선됐다”고 밝혔다.



대다수 선생님은 어린 학생들을 훈련시키고, 멘털을 잡아주고, 경기를 뛰게 하고 각 클럽 방식에 익숙해져있는 상황. 그러다 보니 전문 용어나 코칭법에 있어서는 전문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

오랜만에 팬들 잡고, 그림(포메이션, 위치 이동)도 그리고 글도 써보고. 프레젠테이션도 만들어 하나씩 익혀갔다. 젊은 선생님들은 최근 트렌드에 맞춰 나온 축구전술프로그램 일부를 패드에 척척 그리는 모습도 포착됐다. 조원들과 토의를 하고, 수정 보완하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그러다 보면 기본 새벽 1, 2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강사진들도 이런 열정에 감탄하며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넸다.

핵심은 지도자 C급 연령에 맞는 12세를 위한 8인제 경기였다. 2019년 도입돼 현재 각 권역 별 주말리그에 활용되고 있다. 볼터치, 1대1, 패스, 기회 창출, 슈팅에 이은 마무리가 포인트다. 결과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지도자들의 심금을 울리게 한 멘트도 있었다.

정해성 강사는 “최고의 기수가 되기 위해 말이 될 필요는 없다. 최고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최고의 선수가 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축구 실력, 경험이 있으면 지도하는데 도움은 되지만, 잘했던 선수가 반드시 훌륭한 지도자가 된다는 법은 없다. 지도자는 일방적인 티칭이 아닌 쌍방향 코칭이 더욱 중요하다.

백기택 보조강사는 “최근 지도자이자 교육자들의 권위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밀당(지도자↔선수)’의 심정을 잘 안다. 선생님들은 그걸 이겨내야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감정이 앞설 수 있다. 과거처럼 욕을 하고 기합을 주어선 안 된다. 그러면 지는 것”이라면서, “지도자는 명확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 실수를 하든, 시합에서 지든 누구 한 명을 짚어 얘기하지 말라. 각자 집안 환경이 다르듯 상황에 맞게 자신의 지도 철학을 갖고 각 팀의 방식대로 지도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선생님들 역시 많은 걸 깨달았다.

“창단한지 얼마 안 된 팀이고 매번 크게 졌는데, 어린이날에 열렸던 주말 리그에서 이겼다더라.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첫 승을 했다니, 지도한 보람이 있어 뿌듯하다. 가서 아이들을 칭찬해주고 싶다.” 김강필(지도자준비)

“강사님들의 노하우와 코칭법을 배울 수 있어 뿌듯한 시간이었다. 나의 철학과 이곳에서 배운 것을 잘 접목시켜 좋은 지도자가 되겠다.” 박주호(김포FC U-12)

“비선수출신이라는 생각이 있어 다른 선생님들을 더욱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축구를 하면서 쌓은 스킬과 경험은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느꼈다. 코칭법에 있어서도 조금 더 철저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값진 경험이었다.” 김현모(김영우주니어풋볼아카데미)

“오랜만에 단체로 모여 땀 흘리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강사님들의 디테일한 교육과 코칭법은 앞으로 지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정현성, 홍상준(SON축구아카데미)

“계속 훈련시키고, 경기하기 바빴는데 이곳에 와서 전문적인 용어나 단어 선택, 어린 친구들을 더욱 세심히 관찰하고 배려하는 지도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준현(부산덕천SC U-15), 박찬우(부산서부SC U-15)

이번 교육에 참가한 선생님이 아닌 현재 활동 중인 익명의 지도자는 “한국 대표팀의 성적이 안 좋으면 한국 축구의 교육과 지도 방식이 잘못됐다고 손가락질한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힘이 빠진다. 유소년 육성도, 프로팀과 대표팀 성적도 단기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협회에서 지도자 양성을 위해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축구 선진국 사례도 접목시키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강사님들, 축구인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준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도자 24명(정준현(부산덕천SC U-15), 권동근(부산연산SC U-12), 정현성(SON축구아카데미), 김재겸(SON축구아카데미), 이현민(스포탈코리아), 김보빈(경북위덕대학교), 김현모(김영우주니어풋볼아카데미), 강현준(청주대성고등학교), 박주호(김포FC U-12), 박상건(함창중학교), 백영주(한국국제대학교), 김강필(지도자준비), 문예성(진관FC), 배성규(구미비산초등학교), 김창민(경기경영FC), 배재학(지도자준비), 윤형섭(경기오마FC U-12), 김바다(거제장승포스포츠클럽), 이정우(YSC축구클럽), 김연빈(LYP축구클럽), 박찬우(부산서부SC U-15), 최현우(미추홀구FC U-15), 홍상준(SOSN축구아카데미), 임장혁(지도자준비))의 소중한 땀방울이 한국 축구의 토대를 다지는 자양분이 되길 바랍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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