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ALIE RIVALRY] <1> 이운재와 김병지, '넘버 1'의 秘書를 전한다
입력 : 2012.12.0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우호적 경쟁이라는 말이 있다. 전장에서는 치열한 분투 관계지만 결국엔 서로의 발전을 끌어내는 견제 구도를 의미한다. 김병지와 이운재. 두 개의 큰 별을 의 한 공간에 나란히 담는다. 이것은 한국 축구사에 유례 없이 치열했던 골키퍼 전쟁의 서막이 올랐던 시절, 그 20년 간의 기록이다. 다행히 이야기는 하나의 빛이 다른 빛을 가리거나 점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음으로 더 환하게 빛나 마침내 전설이 되었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들의 일대기를 육성으로 듣는 건, 이 시대를 함께 호흡하는 이들 모두에게 축복이다.

1994년 6월 27일 미국 댈러스 코튼볼 경기장.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한낮의 찜통더위는 그라운드 위 선수들이나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 아침 일찍 일어나 TV 중계를 지켜보던 한국 축구팬들 모두를 숨막히게 하는 것이었다. 앞서 스페인과 볼리비아를 상대로 체력을 방전한 탓인지, 독일전 골문 앞에 선 골키퍼 최인영은 이상하게 무기력했다. 전반에만 3골을 실점하며 크게 뒤진 한국이 후반 들어 약관의 젊은 골키퍼를 내세우자 지레 경기를 포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마저 생겼다. 그런데 이 골키퍼, 놀라운 집중력과 예민한 반사능력으로 후반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그 사이 황선홍과 홍명보가 연속골을 뽑아내며 맹추격을 벌였다. 단 5분의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역사가 다시 쓰였을지도 모를, 놀라운 뒷심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경기였다. 출전시간은 45분에 불과했지만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선명하게 각인됐다. 이운재. 신선한 등장이었다.

약 1년 뒤, 노란색 머리카락을 흔들어대는 골키퍼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노란빛이 도는가 싶었던 머리카락은 주기적으로 빨간색이나 오렌지색, 보라색 심지어 청록색으로 휘날렸다. 머리색깔만 튀는 게 아니었다. 당대의 아이콘이었던 로베르토 바지오를 연상케 하는 ‘말총머리’로 어필하기도 했다. 남다른 화술과 관중들의 환호를 끌어내는 쇼맨십으로 그라운드 밖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했다. ‘뭐 저런 골키퍼가 다 있지?’라며 삐딱하게 쳐다보던 시선은 어느새 ‘우리나라에도 이런 선수가 나타나다니!’라는 흥분으로 변했다. 편견을 기대감으로 바꾼 힘은 당연하게도, 경기장에서의 방어 실력이었다. 민첩하게 볼을 캐칭하고, 빠르게 공격으로 전환시키며, 종종 골문을 비우고 나와 필드 선수처럼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관중들은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함께 희열을 느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가 아니라 일반 산업체에서 일하다 상무에 자원입대해 프로팀 연습생이 되고 대표로 발탁되었다는 그의 배경이었다. 골키퍼의 이름은 김병지. 외모만큼이나 파격적인 등장이었다.

한 때 그들은 라이벌이었다. 앞서거니뒤서거니 대표팀 골문 쟁탈전을 벌였고, K리그를 대표하는 클럽들의 수문장으로 맞섰고, 플레이 성향의 대척점에 서서 견제 구도를 형성했다. 김병지가 선택한 몸의 언어는 적극적인 것이었고, 이운재가 선택한 몸의 문맥은 안정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선방쇼에 감탄하면서, 조금씩 한국 축구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에 감동하면 되었다. 그렇게 또 한 시절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그들은 골키퍼계 양대 산맥이 되어 한국 축구를 떠받치고 있었다. 이제 누가 더 뛰어난지 우열을 가린다거나 누가 옳고 그른지를 논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 됐다. 각자의 방식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그 자체로 전설이 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대신 조금씩, 담아둔 것을 꺼내야 할 때라는 것은 알고 있다. 정해진 시간이 다가오고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보다 그들이 더 잘 안다. 그렇게 그들은 마음을 열었다. ‘넘버 1’이 되기까지 걸어온 길과 ‘넘버 1’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연마했던 일급 비기들. 긴 시간 동안 온 몸으로 체화한 그 비서(秘書)를 <스포탈코리아>에 풀어놓는다.

글= 배진경 기자
사진=이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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