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1,058일의 기다림' 백승호가 돌아온 그 날
입력 : 2016.01.1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사라고사(스페인)] 홍의택 기자= '할 만큼 했다'. 근 3년 만에 복귀전을 치른 백승호(18)에 대한 한 줄 감상평이다.

FC 바르셀로나 후베닐A는 10일(이하 현지 시각) 스페인 사라고사 지방에서 열린 CD 에브로전 원정 경기에 나섰다. 복귀전에 선발 출격한 백승호에게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야유를 퍼붓던 현지 팬들의 극성스러운 분위기을 극복해야 했다. 물을 뿌리지 않은 인조 잔디(바르사 홈 경기장과는 다른 상태)에 적응도 해야 했다.

이날 바르사 후베닐A는 0-1로 패했다. 전반 16분 코너킥 상황에서 내준 선제 실점을 끝내 뒤집지 못했다. CD 에브로는 이미 홈에서 8-0으로 완파해본 상대지만, 적지에서 만난 적군은 또 달랐다.



백승호는 가로줄 무늬가 박힌 올 시즌 유니폼을 처음 입었다. 가브리 가르시아 바르사 후베닐A 감독으로부터 등번호 10번을 받았고(고정 번호 없이 포지션별 배정), 4-3-3 전형의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 자리를 꿰찼다. 그간 뛰지 못했던 선수를 과감히 선발로 삼은 건 1~2군을 오가며 팀 내 입지를 다져온 데 대한 믿음의 표시이기도 했다.

퍼포먼스는 괜찮았다. 지난해 4월 수원 JS컵에서 마지막 실전을 뛴 이가 리오넬 메시급으로 필드를 휘젓고 다닌다는 것은 어불성설. 어느 정도 감안하고 잣대를 들이댈 경기에서 백승호는 기대했던 만큼의 경기력을 펼쳤다. 이런저런 우려에도 경련으로 쓰러지기까지의 58분을 알차게 보냈다.

굳이 영국 등지에서 매기는 평점 방식을 끌어오자면 7점 언저리는 수행하지 않았나 싶다. 경기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던 터라 8점대 활약을 보인 이는 사실상 없었고, 백승호는 무난하면서도 특별한 모습으로 본인을 어필했다.



경기 템포는 빨랐다. 개인 기량에서 밀린다고 판단한 상대는 앞으로 달려들며 만회하려 했다. 더 많이 뛰고, 더 격렬히 압박하는 방식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바르사 후베닐A는 횡패스와 백패스를 연발했다. 볼이 뒤쪽에서 오래 돌았던 탓에 불안함도 증폭됐다.

이 경우 팀 전체의 운영 방식이 조금은 아쉬웠다. 목적이 불분명한 짧은 패스는 오답을 낼 가능성이 크다. 볼을 완벽히 다룰 수 없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그렇다면 패스 미스를 각오하면서까지 진흙탕 싸움을 벌일 게 아니라, 반대로 크게 전환하고 공간으로 때려 넣는 경기도 필요는 했다. 하지만 최후방에서 헤맨 탓에 스스로 후퇴하는 게임을 반복했다.

공수 이동이 잦자, 백승호가 커버해야 할 범위도 넓어졌다. 팀이 상대 진영에서의 볼 소유를 충분히 늘리지 못했기에 헐레벌떡 위아래를 오갈 일도 많았다. 이러한 템포를 얼마나 잘 따라갈 수 있느냐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는데, 오랜만의 실전이었음에도 호흡에서 큰 문제를 보이지는 않았다. 경기 속도에 곧잘 녹아들었다. 측면 수비나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호하는 임무 역시 비교적 충실히 해냈다.



뒤에서부터 공격을 시작한 바르사 후베닐A는 그 과정에서 백승호를 주로 활용했다. 활동 반경을 중앙에 한정짓지 않았다. 사이드로 넓게 움직여 공간을 만드는 데도 능숙했다. 측면 공격을 맡은 동료가 수비에서 공격으로 채 전환하지 못했을 때, 본인이 직접 뛰어들어 패스 선택지를 늘렸다.

볼 받기 전의 기본기는 운동장에 들어찬 스물두 명 중에서도 눈에 띄었다. 흔히 바디 포지션(Body position)이라고 칭하는 사전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몸을 볼이 오는 정방향에 맞추질 않았다. 대신 신체 각도를 다른 쪽으로도 열어두면서 패스 진행 방향, 혹은 상대 골문 방향으로의 다음 동작을 이어나가고자 했다. 키핑 능력이 안정돼 있어 볼이 튀는 경우가 드물었고, 상대 수비가 개입할 여지도 봉쇄했다.

이후 볼을 방출할 때는 잘 대처한 적도, 곤경에 빠진 적도 있었다. 볼을 쉽게 바로바로 돌려놓되, 때에 따라 드리블도 과감히 쳤다. 볼이 멈춘 상황에서는 부드러운 턴 동작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상대 수비 조직을 향해 직접 뛰어들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공격 속도를 높이는 장면은 예상했던 것보다 좋았다. 상대를 두세 명씩 제치는 장면도 만들었다.

공세를 완성하지 못한 아쉬움 역시 존재한다. 이 경우 보통은 쌍방 과실일 공산이 크다. 볼을 전달할 패서(Passer)의 시야나 대처 능력만 탓하기는 어렵다. 리시버(Receiver)가 된 공격진 개개인이 너무 정적이었고, 이미 상대 수비에게 등 떠밀린 형국이라 백승호 입장에서는 볼을 건네기가 어려웠다. 부분 전술, 즉 약속된 움직임이나 일정화된 패턴의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데는 서로 발맞출 시간이 제한적이었음도 꼬집어볼 만했다.



백승호는 후반 시작 후 다리 테이핑을 뜯어내면서 무언가 불편한 기색을 비쳤다. 전반전 45분은 그간 못 뛴 선수란 게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단, 15분을 쉰 뒤 임하는 후반전은 또 다른 얘기다. 팀 내 체력 테스트를 낙오 없이 잘해왔고는 해도, 힘을 비축하고 배분해 쓰는 '경기 체력'은 조금 다른 영역에 있다. 보통 6~70분대부터 드리우는 체력적 부담을 타 선수보다 짙게 느꼈을 법했다.

정확히 58분을 뛰었다. 현지 트위터 중계를 통해 부상을 당한 것처럼 알려졌으나(que marxa amb problemes físics), 백승호는 2~3분간 치료를 받은 뒤 두 발로 직접 걸어나갔다. 옆줄로 나가려는 볼을 살리려 욕심냈고, 발을 뻗는 동작에서 근육이 올라왔다. 훈련 도중 자주 연출되지는 않는 상황. 그간 잠자던 몸을 깨우는 과정임이 가감 없이 드러났을 뿐, 심각한 장면이 전혀 아니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볼 경기였다. 일단 뛰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경기 후 만난 다비드 페르난데스(백승호 에이전트사 직원)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는 '재능(Talent)', '잠재력(Potential)' 등의 단어를 번갈아 쓰며 이 선수를 평했다. 지금껏 잘 인내해 왔으니 앞으로 만개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도 던졌다.

백승호의 공식 리그 출장 기록은 2013년 2월 17일에 멈춰있었다. FIFA(국제축구연맹) 징계 소식에 실감이 안 나 '진짜인가?' 싶었다던 그 날 이후로 3년 가까이 흘렀다. 1,058일을 기다려 입은 유니폼, 이제 원 없이 뛸 일만 남았다.

사진=홍의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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