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슛돌이' 이강인을 기억하시나요?②
입력 : 2015.03.0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발렌시아(스페인)] :: 1편에 이어서 계속(다시보기 클릭)

트로피를 하나둘 설명한다. "이건 발렌시아주 대표로 나가서 받은 MVP고요. 이건 국제 대회 나가서 받은 득점왕이고요.". 이내 "바르셀로나에 있는 형들(백승호, 이승우, 장결희)이 훨씬 더 많을 걸요?"란다.

이강인(14, 발렌시아 인판틸A)은 이미 지역 내 유명 인사였다. 유소년팀 경기가 TV 전파를 탄 것은 물론, 지역 신문에도 주기적으로 실렸다. 축구가 일상인 이곳에서는 같은 반, 같은 학교 아이들 외에도 "네가 강인이야?"라며 먼저 인사를 건네온 일이 적지 않다. 축구만 잘한다면 연령대를 막론하고 대우하는 것이 현지 분위기다.

그렇다고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잘하면 견제하고, 못 하면 무시하는 것이 이방인을 대하는 경쟁자들의 태도였다. 응당 패스가 나와야 할 타이밍에 볼을 받지 못 한 적도 많다.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으나, 결국엔 스스로 극복해야 함을 몸으로 부대끼며 배웠다. 볼 잡은 동료 이름을 외치며 줄기차기 뛰어다니던 모습은 스페인 생활 5년 차 이강인이 찾아낸 생존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2007년 <날아라 슛돌이(3기)> 오디션 현장. 합격자 명단을 일일이 호명하던 가운데, 일곱 살 소년 이강인의 이름은 좀처럼 불리지 않았다. 인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그만 돌아가려 한 순간 '이강인'이라는 석 자가 마지막으로 튀어나왔다. 이날 테스트를 관장한 모 실업팀 축구 선수들은 "발 재간이 좋아 실기 시험 때 가장 눈에 들어왔어요. 높은 점수로 1등을 해 제일 마지막에 불렀습니다."라며 선발 배경을 전했다.

2차 오디션까지 통과한 이후, 유상철 감독에게 본격적으로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다. 정작 본인은 "슛돌이 생활이 확실히 기억나진 않아요."라며 회상했으나, 팀 내에서는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 크로스바 맞히기 내기에서 유 감독을 꺾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체 경기 외 상대 팀과 대전하는 훈련 프로그램 중 지나치게 승패에 매달리지도 않았다. 축구를 즐기며 익히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인천유나이티드 U-12 팀을 거쳐 다다른 곳은 스페인. 초등학생 4학년 이강인의 매력은 완전히 한국 축구도 아닌, 그렇다고 완전한 스페인 축구도 아닌, 그 '접점'에 서 있다는 데 있었다. 한국에서 기본기를 세세히 주입하던 축구를 경험했다면, 스페인에서는 경기를 뛰며 상황에 맞는 기술을 깨우쳐가는 식이었다. <슛돌이>와 인천에서 배운 기술에 발렌시아 스타일을 입힌 독특한 축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두 국가, 더 나아가 두 축구 문화권의 장점이 두루 섞였을 만큼 궁합이 잘 맞았다.

이에 매혹된 발렌시아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어린 선수의 상업화 등을 이유로 유소년(16세 이하)의 에이전트 제도를 공식 인정하지 않던 구단 측에서는 이강인에게 한해 특별히 고용을 허락했다. 그 외 연령별로 운영하는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고, 소속 선수들을 두눈으로 확인시켜가며 신뢰를 줬다. 구체적인 생활 지원 등 타지 정착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그만큼 이강인을 잡고 싶어했다.



'낮게', '묵묵히', '침착하게'. 이강인네 가족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다. 1골 1도움으로 2-0 승리를 이끈 이강인도 집에서만큼은 구박받는 막내였다. "오늘 잘했다고 건방 떨면 안 돼."라던 부모는 "한국에도 좋은 선수들은 넘쳐요. 강인이는 운 좋게 기회가 왔을 뿐이고요."라며 활약상을 일축했다. 두 누나는 "더 성의 있게 대답해야지."라며 질문에 응하는 동생을 코칭했다. 이 모든 것이 넉살 좋고, 때로는 까불까불했던 이강인을 다루는 나름의 방식이었다.

당시 스페인은 외데가르드의 레알마드리드 입단으로 떠들썩했다. 그럼에도 느림의 미학을 몸소 실천해온 교육 철학은 단호했다. 이강인은 일주일에 며칠씩 한 단계 높은 연령대인 카데테B로 월반해 훈련했고, 2월 마지막 주에는 직접 경기에 나서기까지 했다. 하지만 부모는 선수 본인의 성장 곡선에 맞게 뛰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목표치를 상향 조정해 동기를 자극한다는 장점도 있으나, 피지컬 차이로 인한 부상 우려와 심한 견제에서 기인할 자신감 하락을 우려했다.

팀 이적도 마찬가지였다. 공 잘 찬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다른 지역에까지 퍼졌다. 팀별 스카우트와 에이전트가 집결한 국제 대회라도 나설 때면 어김없이 러브콜이 쏟아졌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수의 클럽에서 접촉을 시도해왔으나, 일일이 언론에 흘리지 않아 국내에 알려진 소식은 드물었다. 에이전트 하비 역시 "발렌시아에 있는 것을 더 추천해요. 지금 당장 팀을 옮길 수도 있으나, 장단점이 있어요. 오히려 발렌시아 1군에 진입한 뒤 기회를 엿보는 게 더 낫습니다."라며 덧붙였다.

우물 안 개구리로 무한 경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나친 욕심으로 무리한 경주에 놓이는 일을 막고자 함이었다. 이미 적응한 곳에서 찬찬히 성장하며, 조금 더 단단해질 때를 기다리고자 했다. 기껏해야 만 14세. "오늘 팀에서 애들끼리 싸움 났어요."라며 일과를 전해오던 이강인에겐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했다.



이강인은 기대와 부담을 동시에 짊어지고 있었다. 나머지 네 식구가 한 경기, 한 골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침묵하고 기다려온 것도 그 때문이다. 한 가정이 전부 스페인으로 옮겨왔을 만큼 거는 기대가 크지만, 더 지켜봐야 한다는 마음에 주위 반응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아직 본인이 직접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나이기에 구단과의 계약부터 부모가 직접 보살펴야 할 부문도 한둘이 아니다.

같은 스페인에서 뛴다는 이유로 일각에서는 이강인을 바르셀로나 삼총사 백승호, 이승우, 장결희와 엮어왔으나, 서너 살이나 어린 게 현실이다. 후베닐에서 프로 입성을 노리는 이들과 달리 이강인은 '인판틸→카데테B, A→후베닐B, A' 코스를 차근차근히 밟아야 할 유망주. 하물며 월드컵 진출은 언감생심이다.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 마당에 먼 미래를 논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일리가 있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유망주가 너무도 빨리 소모된 경우를 목격해 오지 않았던가. 빛 발하길 기대하는 마음과는 달리 희미하게 드러난 빛마저 바래는 일이 심심찮게 나타났다. 선수 스스로 헛바람이 든 경우도 있었다. 주위에서 띄워준 높이가 본인이 비상할 수 있는 고도인 줄로 착각했다. 천천히, 안전하게 착지할 날개 근육이 갖춰지지도 않은 채 평탄한 기류에도 흔들렸다. 잔인하게도, 스타의 등장에 환호했던 이들 중 일부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던 그 모습을 조롱하며 즐거워했다.



요즘 발렌시아는 낮 기온이 20℃에 육박한다. 이는 곧 초가을에 시작해 늦봄에 끝나는 시즌이 막바지로 치닫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월 중순만 넘으면 '올 시즌이 이곳에서 뛰는 마지막'임을 직감하는 선수들이 나타난다. 이를 두고 현지에서는 '(구단이 아이들을 쓰다가) 길에 버린다'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울며불며 사정하는 일 없이 그저 본인의 능력이 부족했다며 쿨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강인이 뛴 인판틸A 경기가 끝난 뒤에는 카데테A 팀이 들어섰다. 현지 관계자는 "저 선수는 바르셀로나에서 찍었어요. 이번 시즌이 끝나면 데려간다고 하더라고요.", "저 친구는 지금 입지가 간당간당합니다."라며 설명을 보탰다. 그러더니 대뜸 "지금 뛰는 선수들 모두 괜찮아 보여도, 냉정하게 말해 아무도 프로에 데뷔 못 할 수도 있어요. 그게 현실이에요."라며 사정을 전했다.

도전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있는 그대로' 보고 들은 결과, 또래에 비해 반 발자국 정도 앞서 걷고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현 상황이 축구선수로서의 성공을 절대 보장하는 것도 아닐 터. 이강인에겐 조금 더 긴 호흡, 그리고 넉넉한 시선이 필요해 보였다.

글, 사진=홍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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