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축구] 관중 폭력, '100km 밖 홈경기' 어떤가요?
입력 : 2012.03.2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윤진만 기자 = #사례 1. 2005년 4월, 이란은 평양시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을 마치고 북한 축구팬의 난동을 경험했다. 2-0으로 이긴 이날 경기를 마치고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은 일부 북한 팬이 이란 선수단 버스를 포위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란 선수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사례 2. 2007년 3월, 이탈리아 세리에A의 ‘시칠리아 더비’에서 악명 높은 카타니아, 팔레르모 팬들이 정면충돌해 경찰관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홈팀 카타니아 팬들이 팔레르모 원정팬의 출입을 막으며 시작된 소동은 팔레르모의 2-1 승리로 끝난 뒤 본격적인 몸싸움으로 번졌고, 폭동을 저지하던 현지 경찰관이 얼굴 부위에 폭탄물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례 3. 2010년 10월, 세르비아 루이지 페라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르비아-이탈리아간의 유로 2012 C조 예선전은 일부 세르비아 팬의 폭동으로 7분 만에 중단됐다. 경기 중단 후에도 경기장에 이물질을 투척하고 화염을 쏘자 당시 주심은 세르비아의 0-3 몰수패를 선언했다. 세르비아는 몸만 풀다가 대패를 당했다.


축구팬이 경기장에서 난동을 피우는 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홈 팀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상대팀-심판에 대한 불만, 더 나아가 정부에 대한 불신 등이 어우러져 볼썽사나운 문화를 만든다. 지난 2월 이집트 리그 경기에선 천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는 전대미문의 폭동극이 펼쳐져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폭력 가담자는 멀쩡히 살아있고 죄 없는 관중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현장을 지켜 보며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지난 24일 K리그 4라운드 인천-대전전에서 불거진 관중 난동 사태도 ‘인천 마스코트만 다친’ 사건으로 치부하기에는 부족하다. 마스코트 유티를 집단 구타한 대전 서포터즈 A, B씨를 형사 입건한다고 해도 개운치 않다. 개장 후 두 번째 경기를 맞이한 인천축구경기장에 버젓이 일어난 사태라 인천이 책임을 회피할 수 없고, 서포터즈 관리 미흡이라는 측면에서 대전도 떳떳하기 어렵다. 사례 1~3에서 볼 수 있듯이 관중 난동으로 죄 없는 구단, K리그만 욕먹고 있다.

해결책을 하루 빨리 강구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또 다양하다. 지하 격투기장과 동유럽 축구장을 연상케 하는 철제 펜스, 무관중 경기 징계, 난동 가담자와 인천-대전 서포터즈 충돌에 가담자에 대한 평생 경기장 출입 금지, 거액의 벌금 등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다. 연맹은 상벌위원회를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이 사태를 바라보며 해결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앞서 일어난 사례를 보면 해답에 근접할 수 있다. 사례 1부터 보자. 북한축구협회가 “불공정한 주심의 판정이 이끈 결과”라고 뻔뻔하게 나오자 국제축구연맹(FIFA)은 홈경기 개최권을 박탈했다. 북한-일본전은 제 3국인 태국 방콕에서 열렸다. 사례 2에선 사망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터져 이탈리아 축구협회에서 해당 라운드의 세리에 A, B 경기를 취소했다. 사례 3에서 세르비아는 1경기 무 관중 홈경기 징계와 1억 8천만원의 벌금을 물었다. 모두 팬의 기행이 만든 후폭풍이다.

인천 입장에선 수익에 반하는 무관중 경기를 하고 거액의 벌금을 내는 건 억울하다. 인천은 시즌 개막 후 선수단의 급여를 겨우 지급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열악하다. 단돈 한 푼이 아쉬운 처지다. 그런 상황에서 (공개적으론) 피해자인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 나가는 사태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다. 대전도 마찬가지다. 팬은 구단의 소유물이 아니다. 서포터즈 관리 측면에서 팬의 잘못을 감싸 안는 게 구단이라고는 하지만, 도가 지나친 팬의 행동에 벌금은 가혹하다. 최은성 재계약 논란 사태로 손가락질 받은 대전은 이번 관중 난동 사태로 이미지만 더 나빠졌다.

물론 축구의 순수성을 망친 팬도 철퇴를 맞는다. 그게 옳고 그렇게 해야 하고 다행히도 세계 축구가 그렇게 하고 있다. 한 평생 한 구단을 목숨 걸고 사랑한 팬은 단 한 번의 바나나 투척, 인종차별 폭언, 폭행으로 평생 출입 금지 징계를 받은 사례가 드물지 않다. 구단과 팬 모두 불이익을 받게끔 하자는 쪽으로 균형추가 기울고 있다. 구단이 부모가 아닌 이상 팬의 잘못된 행동도 안고 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대전-인천전에서 경기장에 뛰어 들어 마스코트를 무차별 폭행한 대전 팬도 이미 홈 & 원정 경기 관람 금지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뉘우침의 측면과 파급력을 놓고 볼 때 한 개인에만 책임을 묻는 건 크게 와 닿지가 않는다. 다른 팬들에게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내가 실수하면 다른 사람도 덩달아 피해를 본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대표 수직 조직 군대는 딱딱한 문화를 보이지만 작은 행동 하나에도 책임감을 갖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서포터즈 문화를 잘못 이해한 팬들이 참고할 만하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응원한다고 해도 걔 중에는 감정을 절제한 채 축구를 사랑하는 팬도 있다. 난동은 그런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다.

'기똥찬' 제안을 하나 할까 한다. 사실 필자의 제안이기보단 브라질 출신 모아시르 대구FC 감독의 입에서 나온 얘기다. 그는 2010년 브라질 꾸리치바 소속 코치로 활약할 당시 100km 떨어진 곳에서 홈경기를 열 번이나 했다고 한다. 2009년 홈 관중 난동 때문에 징계를 받아 홈 경기임에도 짐을 꾸려 버스를 타고 원정길에 나서야 했다. 100km는 서울에서 천안까지의 거리(약 96km)로 그리 멀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홈 경기를 진정한 의미의 홈에서 할 수 없고 낯선 곳에서 해야 한다는 점은 선수단과 팬 모두에게 불편함을 준다.

100km를 이동하면서 꾸리치바 난동 가담자들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으리라고 믿는다.(걔 중에는 관람 금지 징계를 받는 팬도 있겠지만). K리그에서도 타이틀 스폰서 눈치 보며 3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홈 경기를 하는 행위를 이제는 징계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분명 다른 나라의 방식을 무턱대고 따라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K리그 실정에 맞는 대안이 필요하다. 만약 뚜렷한 해법이 없이 갈팡질팡할거면 '100km 원정 홈경기'도 고민해 봄직하다. 전혀 생뚱맞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진=이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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