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설기현 ''역주행 사건, 이제는 좋은 추억''
입력 : 2012.02.2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치유안(중국)] 류청 기자= 정호승 시인은 “이 길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라고 썼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모든 게 반복된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길이 있고, 고민의 끝에는 다른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축구선수의 삶도 마찬가지다. 달리고 달려도 그라운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설기현의 인생은 이 같은 사실을 잘 보여준다. 벨기에에서 시작한 축구 인생은 영국(잉글랜드)를 거쳐 사우디 아라비아를 잠시 경유했다가 한국으로 왔다. K리그에서도 포항과 울산을 거쳐 인천에 정박했다. 4개국, 아홉 개 팀을 아우르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이 순간에도 설기현의 길은 미래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인천과 함께 걷는 길이 그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좁고 힘든 길이라는 점이다. 환경이나 팀 구성 측면에서 전에 몸담았던 팀들보다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설기현이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힐랄로 임대 이적했을 때와 같은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예상과 걱정은 주변 사람들의 몫이다. 길을 걷는 당사자는 앞만 바라볼 뿐이다. 설기현도 다르지 않다. 별다른 걱정이 없다. 그는 “어렵지만 재미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울산에 남고 싶어했다. 동료들의 신임도 두터웠다. 결국 인천으로 오게 됐는데?
당시에는 울산 잔류가 최고의 선택이었다. 재미있었고, 선수들하고 정도 많이 들었다. 자주 모여서 이야기하면서 당장의 이야기부터 앞으로 다가 올 시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동계 훈련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다. 그렇게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했었는데 여기 와 있다. (웃음)

선택은 쉬웠다고 했는데, 과정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허정무 감독님과는 깊은 인연이 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와서 선수들을 이끌어 달라고, 도와달라고 하셨다. 좋은 팀에 가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좋지만, 나를 잘 아는 감독님 밑에서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큰 고민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게 감독님과의 궁합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너무 잘 아니까.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프로 생활을 시작하면서 벨기에 로얄 앤트워프로 이적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하는 기분일 것 같다 .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벨기에로 갔었다. 벨기에가 어디 있는 줄도 몰랐다. 아무것도 없이 프로 무대에 나섰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했고 운이 좋아서 유럽에 오래 있었다. 지금은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다. 상황은 비슷할 지 몰라도 마음가짐은 많이 다르다. 경험도 있고, 후배들을 도울 수도 있다. 편안하고 여유롭다고 해야 할까?

유럽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레딩에서 저돌적인 모습을 보이며 정말 멋진 골들을 넣었다. 그런데 K리그 복귀 후에는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플레이가 많이 바뀌었다. 당시에는 코펠 감독이 저돌적인 모습을 주문했었다. 적극적으로 파고들어가서 슈팅을 날리고, 수비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반면 지난 시즌 울산에서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밸런스를 잡는 역할을 했다. 골을 넣어줄 선수들이 많았다.

여전히 당시의 설기현이 모습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올 시즌에는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나?
적극적인 모습을 다시 보여주고 싶다. 어떤 포지션을 맡게 될 지 모르지만, 골도 많이 넣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 뒤에 (김)남일이 형이 있으니 믿음이 간다. 부담 없이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 인천의 상황을 봐도 내가 더 적극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저니맨’이라 불리는 안정환 만큼 팀을 많이 옮겨 다녔다.
이상하게 한 팀에 오래 못 있었다. 사실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게 정말 힘들다. 그런데 나는 호기심이 많다. ‘저 팀 가서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렇게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공부도 많이 했다. 벨기에, 영국, 사우디, 한국이 다 다르고, 감독도 다 다르다. 그걸 경험한 것이 내 재산이다. 선수 생활이 끝나도 축구에 관련된 일을 할 텐데,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논란에 휩싸였었다. 월드컵 때도 맘 고생을 많이 했고, ‘역주행’ 사건도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생기더라. 당시에는 가슴 아플 수 있는데, 모두 좋은 경험과 추억이 된다. 항상 좋을 수는 없다. 시련이 있어야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 게 된다. 거기서 포기하면 평범한 선수가 되는 거다. 이겨내면 더 많은 기회가 열린다. 고민은 나만 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다 한다. 선수 생활은 항상 갈림길이다. 어떤 게 더 좋은 길인지 알아내는 방법은 없다. 문제는 선택한 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이후다.

논란이 많았던 사우디 이적도 갈림길의 하나였나?
갈 때는 욕을 많이 먹었다. ‘왜 저기 가지?’ ‘축구를 접었나’ 등등. 당시에 임대로 갔는데 되게 두려웠다. 상황을 전혀 몰라서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런데 가보니 별 다른 게 없었다. 환경은 오히려 더 좋았다. 새로운 환경에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다시 K리그로 돌아오자. 강등제가 시작되면서 부담이 늘었을 것 같다.
부담이 크다. 잘 못하면 강등될 수 있다. 그래도 매 경기 재미있어질 것 같다. 시즌 초반부터 팀에 많은 변화가 생길 거다. 예를 들면 감독이 시즌 중에 바뀌는 일도 늘어날 것이다. 물론 누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는 없다. 잉글랜드에서도 상상하지 않았던 팀이 종종 떨어지곤 했었다.

인천에는 특별한 스타가 없다. 결국 조직력으로 승부해야 할 것 같다.
축구는 개인 운동이 아니라 팀 스포츠다. 11명의 선수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면 11명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다. 우리도 조직적으로 가야 한다. 남일이 형이 잘 이끌어준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허 감독과 주장 정인환이 모두 8위 안에 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포항과 울산에 있었다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천에서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리그 제도도 바뀌었기에 플레이오프로 만회할 수도 없다. 쉽지 않겠지만, 못 갈 것도 없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을 목표로 해야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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