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업] 유쾌한 라돈氏의 '미친 인맥' 9인
입력 : 2012.04.2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성장’이란 단어가 눈물 나게 적절한 스타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제난 라돈치치(29, 수원)이다. 2004년 몬테네그로의 스무 살짜리 청년이 한국이란 낯선 곳에서 홀로 섰다. 불안감, 두려움, 외로움으로 시작된 라돈치치의 K리그 스토리는 9년이 흐른 지금 찬란한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국에서 배우고, 한국에서 성장해서, 한국에서 성공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 한 켠에 걸린 ‘라돈을 국대로’란 문구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진정한 K리거로 성장한 라돈치치의 ‘라인업’ 시작한다. <편집자 주>

안종복 인천 전(前) 단장| 스무 살 시절 라돈치치의 멘토
라돈치치 says_ “아버지 같은 분”
취재진 앞에서 바짝 긴장하는 보통의 선수들과 달리 라돈치치는 유머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천하의 장난꾸러기 라돈치치도 안종복 전 인천 단장의 이름을 듣자 얼굴 표정이 금세 진지해졌다. 2004년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라돈치치를 안종복 전단장은 아들처럼 대해준 은인 중 은인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너무 잘해주셨어요. 너무 어렸을 때였고, 경기도 못 나가고, 솔직히 축구도 잘 못했어요. 한국 선수들은 여기서 밥 먹고, 나는 저기 떨어져서 혼자 밥 먹고 그랬어요. 매운 음식은 아예 안 먹었고요. 너무 힘들었을 때 안사장님께서 오셔서 ‘나는 너를 내 아들이라고 생각해’라고 말씀 많이 해주셨어요. 한국에서 가장 고마운 분이에요. 연락 자주 드려야 하는데…”



장외룡 인천 전(前) 감독| 라돈치치에게 길을 열어준 은인
라돈치치 says_ “우리 삼촌”
2004년 K리그에 참가한 인천의 당시 감독은 독일의 베르너 로란트였고, 장외룡 전감독이 수석코치였다. 한국 데뷔 시즌 한 골도 넣지 못했던 라돈치치는 2005년 장외룡 전감독 휘하에서 27경기 13골 2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준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헤딩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장외룡 감독은 팀 훈련이 끝난 뒤 라돈치치와 함께 따로 헤딩 연습을 집중적으로 시켰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2005년 1월부터 4월까지 2군에만 있었어요. 터키 전지훈련에 갔어도 동료들과 밥 같이 먹고, 산책 같이 하고 했지만, 훈련 때가 되면 저 혼자 따로 떨어졌어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K리그가 개막한 뒤에도 나는 2군에서만 하루에 서너 번씩 훈련을 소화해야 했어요. 그때 인천이 1무4패였던가 했어요. 서울 경기 이틀 전에 감독님께서 부르시더니 ‘컨디션 괜찮나?’, ‘잘할 수 있겠냐?’라고 물어봐서 오케이라고 했죠. 감독님께서 ‘내일부터 합숙 들어오라’고 하시더군요. 그 경기(2005년4월17일, 인천3-2서울)에서 내가 2골 1도움 했어요. 아기치랑 같이 감독님 집에 가서 갈비 얻어먹고 그랬어요.”

신태용 성남 일화 감독| 선수를 이해할 줄 아는 감독
라돈치치 says_ “최고의 멘탈리티를 가진 지도자”
2009년 팀의 지휘봉을 잡은 신태용 감독(당시 대행)은 K리그 지도자 입성이 너무 빠른 것 아니냐는 주위의 우려를 성적으로 보기 좋게 씻어냈다. 2009년 성남으로 이적한 라돈치치는 신태용 감독 휘하에서 첫해 K리그 준우승을 이끌었고, 이듬해인 2010년 대망의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신태용 감독님은 해외 경험이 많아요. 그곳에서 많이 배워온 것 같아요. 성격도 좋고 무엇보다 카리스마가 있어요. 지도자로서의 멘탈리티가 정말 최고에요. 열 받으면 욕도 막 하죠. 욕도 정말 잘해요(웃음). 하지만 선수들과 프렌드십이 잘 돼요. 무릎 수술하고 돌아왔을 때(2011년) 솔직히 6월부터도 뛸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 뛰었으면 금방 또 다쳤을 거에요. 신감독님께 가서 출전시간을 조절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씀 드렸더니 쿨하게 이해해주시더라고요. 사타구니 다친 걸 참고 뛰다가 너무 아파서 결국 2주만 쉬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도 그러라고 했어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술도 잘 마시고(웃음).”



사샤 오그네노브스키 성남 일화 주장| 라돈치치 아이의 대부(代父)
라돈치치 says_ “지금까지 만나본 제일 좋은 사람”
사샤는 라돈치치와 성남 입단 동기(2009년)다. 압도적인 힘과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사샤는 K리그 역사상 최초로 주장 완장을 찬 외국인 선수다. 2010년 사샤는 라돈치치와 함께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일등공신이다. 당시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사샤는 대회 MVP로 선정되었고, 이후 AFC ‘올해의 선수’의 영광을 안아 축구 경력 최고의 해를 만들었다. 구(舊) 유고(마케도니아)의 혈통을 갖고 있는 덕분에 라돈치치와는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오늘도 사샤 집에서 저녁 먹기로 했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잖아요.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에요. 얼마 전에 사샤랑 영화를 같이 보러 갔는데, 그 영화에서 계속 대부(代父) 얘기가 나오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사샤한테 ‘우리 아이(5월 출산 예정) 나오면 사샤가 대부를 해줘’라고 부탁했더니 바로 오케이 해줬어요(웃음). 이젠 아예 가족이 된 거죠. 하필이면 우리 경기(4월28일, 수원vs성남) 때 돌아온대요(웃음). 맨날 나한테 ‘딱 한 경기만 기다리고 있어. 너랑 붙을 경기’라고 말해요. 쉰가드(정강이 보호대)가 떨어져나갈 것 같아요(웃음).”

데얀 다먀노비치 FC서울 공격수| K리그 모임 멤버
라돈치치 says_ “한때 싸울 뻔했던 동료”
데얀과 라돈치치는 악연으로 시작했다. 라돈치치가 인천에서 주전으로 자리잡고 있던 2007년 데얀이 입단했다. 하지만 데얀이 라돈치치의 자리를 결국 빼앗는 격이 되었다. K리그 무대에서 펄펄 날아다니는 데얀에 밀린 라돈치치는 그 해 일본 J리그로 임대를 떠나야 했다. 친해질 수 없는 관계였지만, 이제는 오해를 풀고 타향살이의 동료로서 잘 지내고 있다.

“인천에 있을 때 사실 기분이 나빴어요. 인천에서 테스트 받을 때, 내가 나름대로 많이 도와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입단 계약에 사인하고 나니까 갑자기 데얀 어깨에 힘이 들어가더니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막 그러는 거에요. 정말 기분 나빴죠. 막 싸울 수도 있었지만 팀 분위기상 참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잘 지내요. 이번에 괌 전지훈련 갔을 때 수원과 서울이 같은 호텔을 썼어요. 그때 내가 데얀한테 "그때 나한테 잘못한 거 많다"고 솔직히 말했어요. 데얀이 오해였다고 하고, 그래서 지금은 괜찮아요. 자주 만나요. 사샤, 스테보, 보스나, 데얀 등은 자주 만나요. 언어가 같으니까요.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확실히 편해요. 좋아하는 음식도 비슷하고.”

알미나| 재활의 고통을 분담해준 은인이자 아내
라돈치치 says_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해준 사람”
2010년 FIFA 클럽월드컵 3/4위전에서 라돈치치는 왼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독일에서 수술과 재활을 마친 라돈치치는 고향인 몬테네그로 구신예(Gusinje)에서 피지컬 코치와 함께 고통스러운 재활을 소화해야 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외로운 과정이었지만, 알고 지내던 동네 후배 알미나가 라돈치치의 아픈 마음을 쓰다듬어줬다.

“알미나는 원래 알고 지내던 동네 후배였어요. 나이차가 약간 나긴 했지만, 그때 내가 너무 힘들었어요. 혼자서 맨날 왔다 갔다 하면서 너무 외로웠어요.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을 때 바로 알미나와 만났어요. 결혼하기로 결정하는 데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알미나는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해준 사람이에요. 만약 결혼 안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2~3억원짜리 차를 사고 여자들을 옆에 끼고 그랬을지도 모르죠. 알미나 덕분에 그런 짓 안 해요. 오늘도 자전거 타고 왔어요(웃음). 지금 집에 돌아가면 음식 다 해놓고 기다리고 있어요. 얼마나 좋아요.”



조동건 성남 및 수원 동료| 좋은 동생
라돈치치 says_ “다치지 좀 말았으면 하는 후배”
“성남에 있을 때부터 친했어요. 되게 착해요. 형, 형 하면서 잘 따랐어요. 다음주에 병원 가서 검사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부상이 많은 게 아쉬워요. 재작년에도 큰 수술을 받았잖아요. 제가 보기엔 재활을 너무 성급하게 한 것 같아요.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알미르 체추냐닌| 몬테네그로 가라데 대표팀 주장
라돈치치 says_ “내 결혼식에서 들러리(Best Man)해준 친구”
“옛날에 가라데를 같이 배웠어요. 알미르는 몬테네그로, 유니버시티, 월드, 하여튼 다 챔피언이에요. 집에 가면 메달이 수천 개는 있어요. 지금 5~6년째 몬테네그로 가라데 대표팀 주장이에요. 일정이 너무 바빠서 한국에는 아직 온 적이 없지만, 이번에 내 아이가 태어나면 올 수도 있겠죠.”

안젤코(KEPCO) & 이싸빅 & 모따| 웃긴 놈, 고마운 ‘형’, 대단한 ‘동료’
라돈치치 says_ “정말 많은 걸 가르쳐준 사람”
“안젤코는 제일 재미있는 친구에요. 진짜 웃긴 놈이에요. 어휴, (손 제스처를 써가며)키가 이~만하고, 어깨랑 손이, 어휴, 정말 커요. 가라데 선수보다 때리는 힘이 더 셀 거에요. 이싸빅과도 친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식으로 정말 많이 가르쳐줬어요. 지금도 자주 만나요. 모따도 좋은 사람, 최고의 선수에요. 브라질 선수들은 원래 다 기술은 있는데 열심히 안 하고 수비도 안 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모따는 멘탈리티가 정말 좋아요. 같이 뛴 게 많진 않았지만 정말 좋은 선수라고 생각해요.”

번외 어록
“구신예 가면 예쁜 여자 정말 많아요. 농담 아니고 되게 많아요. 결혼 안 한 사람들 모아서 한번 가야겠네(웃음).” (기자가 인구 2천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미녀와 잘도 만났다며 칭찬하자)

“말을 잘 못 알아듣겠어요. 그런데 뭐 그게 괜찮을 수도 있어요. 다 알아들으면 더 힘들지도 모르니까요.” (기자가 윤성효 수원 감독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냐는 물음에 대한 라돈치치의 답변. 윤성효 감독 특유의 우물우물 화법은 취재진마저 헷갈리게 만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럼 여자친구 두 명 있으면 더 빨리 배우겠네요.” (지금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이 혹시 한국 여인들 덕분이 아니냐는 질문에)

인터뷰•정리= 홍재민 기자
사진= 이연수 기자
그래픽= 박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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