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축구환상곡] 아데우(Adeu)! 과르디올라, 진보를 위한 후퇴
입력 : 2012.04.2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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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한준 기자= FC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고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펩 과르디올라가 자신의 손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진출 실패, 스페인 라리가 타이틀 방어 실패라는 연이은 ‘패배’ 뒤에 과르디올라의 사임이 공식발표됐다. 프로의 세계는 냉혹하다. 하지만 과르디올라의 사임은 ‘패배’에 대한 책임 때문이 아니었다.

과르디올라는 27일 오후(한국시간) 바르사의 홈 경기장 캄노우에서 공식 기자 회견을 가졌다. 이미 몇일 전부터 그의 사임설이 돌았다. 일부 바르사 팬들은 그의 입에서 ‘사임’이라는 말이 나오기 까지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라운드 위에서 항상 예상을 깨는 축구, 예상을 뒤엎는 결과로 승승장구해온 과르디올라였지만 이번만큼은 예상을 깨지 못했다. 그는 떠나겠다고 말했다.

과르디올라는 이 자리에서 이미 사임이 오래 전에 결정된 일이라고 밝혔다. 과르디올라의 바르사 퇴단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돌았던 이야기다. 과르디올라는 지난 해 12월 산드로 로셀 회장에게 팀을 떠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즉, 최근 연이은 경기의 실패가 사임의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대해 “결정에 영향을 전혀주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과르디올라는 현역 은퇴 이후 2007년 바르사 B팀의 감독으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여름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떠난 1군 팀 감독으로 승격됐다. 감독직에서 만으로 5년, 바르사 1군을 만으로 4년 이끌었다. 그는 지쳤고, 열정과 체력이 고갈됐다고 털어놨다.

“내 안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고 느꼈다. 다시 채워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5년 전 바르사 B팀을 맡았을 때와 같은 이상과 열정을 되찾아야 한다.”

과르디올라가 털어놓은 “지쳤다”는 말은 엄살이 아니다. 감독직 부임 당시 풍성했던 머리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사라졌고 주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성공시대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수 많은 다툼과 마찰과 장애물이 있었다. 그는 성공을 위해 때론 냉정한 모습을 보여야 했고, 그로 인해 수 많은 오해를 샀다. 낭만적인 축구를 구사하면서도 그는 누구보다 차가운 사람이 되어야 했다. 과르디올라는 언제나 감정을 배제한 화법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그래서 까다로운 사람으로 오인받는 일이 많았다.

과르디올라의 사임은 전 유럽의 화제였다. 스페인 언론과 영국 언론 등 유럽 주요 미디어가 과르디올라의 사임 기자회견을 생중계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달됐다. 은퇴가 아닌 사임임에도 ‘빅 이슈’였다. 과르디올라가 지난 4년간 축구계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를 방증하는 결과다.

과르디올라는 1군 감독 부임 첫 해에 스페인 축구 역사상 첫 트레블을 달성했다. 그리고 2009년 여세를 몰아 두 개의 슈퍼컵과 FIFA 클럽월드컵을 추가로 들어올리며 전인미답의 6관왕을 달성했다. 이후 과르디올라는 라리가 3연패를 이뤘고, 4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과 두 번의 우승 등 총 13개의 우승 트로피를 획득했다.

과르디올라는 그 과정에서 잉글랜드 축구가 낳은 최고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완벽하게 제압했고, 승승장구하던 ‘스페셜 원’ 주제 무리뉴에게 패배감을 안기기도 했다. 짧은 시간, 초보 감독이 이루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성과다. 바르사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시간을 보냈고, 펩의 팀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평가 받았다. 그와 동시에 펩은 가파르게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특권을 신화로 만든 남자, 더 큰 전진을 위해 하산하다

일각에서는 과르디올라의 성과가 우수한 선수들의 존재 때문이라고 폄하했다. 과르디올라 스스로도 기자회견에서 “내가 꿈꾸던 축구를 현실로 만들어준 선수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르사의 축구를 꾸준히 지켜본 이들이라면 과르디올라가 서말이나 되는 구슬을 얼마나 완벽하게 꿰어냈는지 알 것이다. 그리고 매 경기 실험과 변화를 추구하며 매 시즌 진보와 진화를 이루어 왔는지를 알 것이다.

과르디올라의 팀이 4년이나 전성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성공에 취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 싸움을 꾸준히 끌고 간 수장이 바로 과르디올라다. 산드로 로셀 회장은 "우리가 보여주고 있는 스타일의 핵심"이라고 과르디올라를 설명했다.

역설적으로 과르디올라가 떠난 이유는 그래서다. 바르사의 축구는 한계점에 도달했고, 더 큰 도전을 이어가기 위한 동력이 떨어졌다. 그의 심신은 더이상 지칠 수 없을만큼 지켰다. 정상 위의 정상을 향해 발을 내디뎌 왔지만 이대로 가면 남은 것은 내리막길 뿐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하산을 택했다. 바르사는 여름 이적 시장 무한 자금과 연봉 백지 수표를 제시했다. 부와 권력을 모두 안겨주겠다는 제안이다. 하지만 과르디올라는 거절했다. 세상에는 그 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과르디올라는 “돌아올 것”이라는 말로 지금의 사임이 감독직 은퇴나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첼시 감독 부임설에 대해 “거짓말이다. 이 바르사에 대한 존중심이 결여된 일이 될 것”이라며 일축했다. 안도니 수비사레타 단장도 “지금의 사임은 장기 계획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말했다. 과르디올라 스스로도 “늘 말했듯 가장 고향이 최우선”이라며 바르사 감독을 로 돌아오게 될 것을 암시했다.



“바르사 감독직은 특권이었다. 이곳에 있었던 것이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과르디올라의 사임은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다. 그는 더 큰 계획을 위해 자신이 가진 최고의 특권과 행복을 내려놓았다. 과르디올라는 지금의 업적 만으로도 살아있는 전설이요, 역사다.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성공을 맛보았으며 축구의 진보를 이끈 사상가이며 혁명가다.

과르디올라는 1년 간의 휴식을 갖겠다고 말하며 안방 캄노우를 떠났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아주 좋은 오후입니다” 혹은 “아주 좋은 밤입니다”라는 카탈루냐어 인사로 기자회견을 시작하던 과르디올라의 근사한 모습을 최소한 1년 간은 볼 수 없게 됐다.

스페인에서 작별인사는 ‘아디오스’다. 바르셀로나가 위치한 카탈루냐에선 더 짧게 ‘아데우(Adeu
)’라고 말한다. 아데우, 펩. 그동안 아름다운 축구를 보여준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 다시 돌아와 더 멋진 축구를 선보일 과르디올라를 기대한다.

글=한준 기자
사진=한준, ⓒBPI/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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