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축구] 박지성이 구자철에게 던진 네 가지 숙제
입력 : 2012.05.0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구자철(23, 아우크스부르크)의 오랜 별명 ‘어린 왕자’는 그만 버려도 좋을 것 같다. 올해 지켜본 구자철은 더 이상 곱거나 어리지 않다. 물오른 외모, 떡 벌어진 어깨, 환상적인 축구 실력은 완성된 ‘축구 수컷’의 전형이다. 제주 시절 누나 팬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면 지금은 그 누나팬들도 쉽게 접근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구자철은 이제 그 정도의 아우라를 갖췄다. 그도 그럴 것이 아시아 최고의 대표팀이 모인 아시안컵에서 득점상을 타고 유럽 3대리그 중 하나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귀국 기자회견에 취재진이 장사진을 이룰 정도로 그의 대표팀 입지와 관심도는 몰라보게 높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피크(Peak)가 아니다. 2012년 해가 뜨고 근 5개월 동안 유럽파 중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했다 해도 갈 길이 멀다. 누구보다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강한 본인이 잘 알 것 같다.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하나, 둘…. 셀 수 없이 많다. 그를 스폰하는 A용품 업체의 예전 광고처럼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정신으로 한 고비씩 넘는 숙제가 남았다. 하지만 시대를 잘 탄 덕에 그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잘 닦여져 있다. 대선배 박지성(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유)이 개척자의 정신으로 만든 길이다. 구자철은 정글만큼은 아니지만 숱한 장애물과 함정이 파인 그 길을 따라 걸어야 그가 꿈꾸는 한국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다. 박지성 입장에 서서 구자철이 반드시 새겼으면 하는 조언 네 가지를 남긴다.

#1. 후회하기 싫다면 지금 그 기회를 잡아라
구자철은 다음 시즌 원 소속팀 볼프스부르크로 복귀해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맡기느냐, 아우크스부르크 포함 새 둥지에서 새 축구인생을 펼치느냐 고민 중이다. 현재 4~5개 팀에서 손을 내민 가운데 구자철은 “시간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여유를 보인다. 하지만 이적을 결정할 순간이 왔고, 그 4~5팀에 누구나 알 법한 빅클럽이 속했다면 지금과 같은 여유는 사치다. 주전 경쟁의 두려움 때문에 망설여진다고? 박지성의 사례를 다시 되뇌어보면 도전 정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될 것이다. 2002 한일 월드컵을 마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에레데비지에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한 박지성은 2005년 여름 맨유로 이적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한 시즌 더 뛰고 가라”고 만류했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직접 통화한 박지성은 잉글랜드로 둥지를 옮겼다. 그리고 스물 넷의 청년은 서른 한 살의 준고참급 선수가 되어 아직도 맨유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 활약한다. 구자철의 현 나이 스물 셋.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나이라 한번쯤 도전해볼 만하다. 직접 “더 큰 산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대표팀 선배 박주영(27, 아스널)의 사례도 결과론적인 얘기지 당시의 선택을 나빴다고 욕할 수는 없다.



#2. 불평 불만 없이 묵묵히 헌신하라
박지성이 7년 동안 맨유에서 ‘수명’을 유지한 건 근면성실한 자세 때문이다. 진부하지만, 이것이 진실이다. 박지성은 뛰어난 언어 습득 능력으로 일찍이 영어를 ‘마스터’해 감독, 코치, 선수들과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했지만 한번도 불평 불만을 하지 않았다. 연봉을 올려달라고 떼쓰는 공격수 R, 출전 기회 좀 달라고 졸라대는 어린 미드필더 P와 같이 경기장 밖에서 퍼거슨 감독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박지성의 움직임은 최고다”라는 극찬을 받으며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구자철은 어떤가. K리그 선수가 대표팀을 거쳐 유럽까지 진출한 것을 보면 분명 축구 실력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다는 걸 방증한다. 그러나 구자철은 지난해 6월 가나와의 평가전을 마치고 볼프스부르크에서 출전 기회를 제한 받아 무척이나 힘들다고 토로했다. “아이고 어린 청년이 많이 힘들었나 보구나 쯧쯧”하며 위로하는 쪽, “자기가 원해서 갔는데 뭐가 힘들다고…돈도 많이 벌면서 쯧쯧”하며 비아냥거리는 쪽으로 시선이 갈렸다. 올해 아우크스부르크에서 15경기(교체 1) 연속 출전하며 더 이상 예전처럼 우울한 기색을 볼 수 없는데 앞으로도 한결 같은 정신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신체 만큼이나 정신 건강이 중요하다.

#3. 큰 경기를 놓치지 마라
낚시의 꽃은 ‘월척’이다. 이왕 지루한 시간 싸움을 벌이는 김에 엄청나게 큰 생선을 잡으면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축구 경기에서도 중하위권 팀과의 경기에서 아무리 잘해봐야 표가 나지 않는다. 축구에 문외한인 동네 아주머니 A씨가 알 정도의 팀과의 대결에서 ‘월척’하면 이름값, 몸값이 순식간에 급상승한다. 구자철은 올 시즌 아우크스부르크 소속으로 팀 공격을 이끌며 분데스리가 명문 바이에른 뮌헨, 바이엘 레버쿠젠전에서 득점포를 가동해 진가를 알렸다. 박지성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리버풀, 아스널, AC 밀란과 같은 강호와의 경기에서 빛나는 활약을 한 것과 닮았다. 6만 명이 넘는 원정 관중 속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100% 그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고 득점으로 그 경기의 영웅까지 되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쓴 셈이다. 구자철은 이미 2009 이집트 U-20 월드컵,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1 카타르 아시안컵과 같이 굵직한 국제대회에서도 떨지 않고 ‘구자철’다운 활약을 했었다. 앞으로도 선배 박지성이 그랬듯이 또 지난 시즌 선보였듯이 ‘빅클럽 킬러’가 될 필요가 있다. 이는 월드컵을 준비하는 한국 축구에도 좋은 일이다.



#4. 국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
구자철은 분데스리거로서 첫 ‘풀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그의 진짜 시즌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5월 31일 세계 최강 스페인과의 A매치를 시작으로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2012 런던 올림픽 본선과 같은 메이저 무대가 남았다. 두 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뛸 것이 유력하다. 구자철은 “(박)지성이형, (이)영표형이 은퇴한 상황에서 젊은 선수들이 대표팀을 이끌어가고 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굉장히 소중하다. 물려받은 책임감을 토대로 경기를 잘 준비하겠다”라고 당찬 출사표를 밝혔다. 그는 “올림픽에선 꿈과 정신을 쏟아 붓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를 말했다. 태극마크의 의미를 잘 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박지성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국가대표라는 무게는 말로 “잘 하겠다”라고 하면 끝나는 토너먼트가 아니다. 마라톤과 같은 장기 레이스로 그 여정 속에는 비난과 칭찬이 뒤따른다. 박지성이 11년 가까이 숱하게 무릎을 다치면서 헌신했음에도 비난을 들은 걸 떠올려보라. 구자철은 아직 박지성 A매치 출전수의 1/4(25경기)를 뛰었다. 해야할 일도 참아야 할 일도 많다.

글=윤진만 기자
사진=ⓒpicsort/PHOTO KISHIMOTO, MattWest/BPI/스포탈코리아, 이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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