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의 축구 版!] 박지성에게 보비 찰튼의 자리를 권한다
입력 : 2012.05.1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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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몇 년 전, 박지성의 생일에 즈음해 영국 맨체스터에서 그를 만났다. 매년 맞이하는 생일의 소감이 어떠냐는 상투적인 질문에 그는 “아, 또 나이가 드는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는 답을 내놨다.

사실이다. 박지성도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있다. 박지성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강렬하게 국내 축구팬들에게 보여줬던 것이 풋풋하고 혈기 넘치는 질주는 볼 수 없다. 대신 이제는 10여 년 동안 쌓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완숙함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박지성도 유니폼을 벗고, 그라운드를 내려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분명 그가 유럽 무대에서 앞으로 활약한 날들은 지금까지 유럽에서 보낸 나날 보다 짧을 것이다.

은퇴 후 박지성은 어떤 길을 걸을까? 본인은 지도자의 길을 고려하지는 않지만, 분명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되는 일, 자신의 경험을 자산으로 열정을 공유하는 일을 할 것이다.

문득, 박지성이 그라운드에서 내려온 후에도 맨유의 일원으로 오랜 기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비 찰턴, 브라이언 롭슨 그리고 게리 네빌 처럼 말이다.

이들은 맨유의 레전드이기도 한 이들은 맨유가 선정한 클럽의 공식 앰버서더(대사, 大使, ambassador) 들이다. 사진 한 번 찍고, 카메라 앞에서 맨트 한 번 서비스한 후 끝나는 보편적 ‘홍보대사’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세계 각종 무대에서 맨유를 대표해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앰버서더-대사’의 사전적 의미는 ‘외교 사절의 최고 계급’이다. 맨유가 자신들의 앰버서더에게 부여하는 역할과 권한 역시 의미에 부합한다. 맨체스터 안팎에서 맨유를 대표하는 최고의 상징이다.

찰턴, 롭슨, 네빌 등 단 세 명 만이 앰버서더로 선정된 것 역시 이 자리가 단순한 ‘홍보’대사의 자리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맨유는 “전세계에서 맨유가 추구하는 축구를 대변하고, 축구를 통한 지역사회 발전, 자선사업 그리고 파트너들과의 관계에서 맨유를 대표한다”고 클럽의 종신 앰버서더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보비 찰튼은 맨유에서 가장 ‘어른’이다. 뮌헨 참사 이후 1960년대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조지 베스트, 데니스 로 등과 맨유의 부활과 중흥을 이끌었다. 현재는 종종 맨유의 특별한 원정 경기(챔피언스리그 결승, 클럽월드컵, 투어 등)시 단장직을 수행한다. 맨유의 살아있는 역사를 상징한다.

브라이언 롭슨은 80년대와 90년대 맨유에서 활약했다. 팬들은 맨유 역대 최고의 주장으로 그를 꼽는다. 맨유의 암흑기와 전성기를 함께한 상징성이 크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주장직을 수행했으며, 맨유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축구팬들에게 폭넓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 맨유의 앰버서더가 된 이유다. 맨유의 자존심, 잉글랜드의 자존심이다. 맨유가 세계 곳곳에서 코칭 스쿨, 유소년 축구 교실을 개최할 때 종종 모습을 비친다.

그리고 가장 최근 맨유의 앰버서더로 선정된 게리 네빌은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하다.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기까지 맨유의 유소년 시스템을 통해 육성되어 20년간 맨유에서만 활약했다. 박지성과도 수 시즌 함께 뛰었다. 맨유가 자랑하는 유소년 시스템과 ‘원 클럽 맨’을 상징한다. 팬들과의 끈끈한 유대 역시 네빌의 상징이다.

맨유는 전세계에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한 구단 중 하나다. 지금도 끊임없이 ‘글로벌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점차적으로 권위와 자격을 갖춘 앰버서더를 추가로 선정해 역할을 맡길 것이라고 한다. 머지 않은 미래에 네 번째, 다섯 번째 앰버서더가 탄생할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박지성에게도 기회가 올 것 이다. 맨유에서 남긴 단순한 기록만으로 평가한다면, 앞서 언급한 3인에 비할 수 없다. 하지만 박지성은 불가능의 영역을 가능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아시아 축구 선수가 결코 넘지 못할 벽을 뛰어 넘었고, 온갖 역경을 헤쳤다. 20세기가 낳은 아시아 축구 선수 중 유럽 무대에 진출해 가장 깊고 긴 족적을 남겼다.

‘아시아’라는 이름의 넒은 의미의 지역사회. 그 속에 존재하는 맨유의 팬들과 파트너를 하나로 묶는 앰버서더로 박지성이 적격이다. 유럽 무대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무이한 성공을 거둔 박지성 보다 더 좋은 대상자는 없다.

은퇴 후의 박지성이 맨유의 엠버서더가 된다면 개인의 명예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과 맨유, 나아가 유럽 무대를 잇는 가교로 더욱 큰 역할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내려온 후에도 전세계 곳곳을 누비며 족적을 남기는 '영원한 맨유의 산소탱크’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박지성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맨유에서 뛰는 마지막 순간 까지 지금처럼 성실하게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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