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의 축구話] 韓英축구 '닮은꼴' 늦은 결단의 성패는
입력 : 2012.02.1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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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국과 잉글랜드의 축구는 여러모로 닮았다. 우승도 못하면서 각 대륙 축구의 주인을 자처한다. 월드컵만 되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다.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하면서도 대표팀의 전력은 그에 못 미친다는 점도 유사하다. 거사(巨事)를 앞두고 바쁜 결정을 내리는 것도 닮았다.

닮은꼴 #1: 너무 늦은 결정
2월 들어 잉글랜드축구협회는 내홍(內訌)을 겪고 있다. 대표팀 주장을 박탈했고 결국 감독 교체라는 초강수까지 두었다. 두 가지 결정 모두 유로2012 본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내려졌다. 특히 파비오 카펠로 감독과의 결별은 가히 충격적이다. 시점이 너무 좋지 않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 탈락이라는 성적에 충분히 실망했더라면 그때 결단을 내렸어야 한다. 하지만 카펠로라는 이름의 거대함이 잉글랜드축구협회의 이성적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낸 끝에 축구계의 두 번째 대사(大事) 유로2012 4개월 전 사령탑 교체라는 암담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잉글랜드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한축구협회도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사령탑 교체라는 극단적 선택을 내렸다. 조광래 전 감독의 입지가 2011년 8월 있었던 한일전 3-0 참패 이후 급속히 좁아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결국 잉글랜드처럼 한국도 그때 내렸어야 할 판단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엉뚱한 시점을 선택하고야 말았다. 3차예선 최종전에서 한국은 쿠웨이트와 비기기만 해도 최종예선 진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3차예선부터 탈락 가능성과 직면해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우리에겐 매우 낯설다. 그 만큼 중요한 일전을 불과 두 달 앞두고 있던 지난해 12월말 대한축구협회가 선장을 갈아버린 것이다.

닮은꼴 #2: 전임 감독의 황소 고집
지금은 ‘과거’가 되어버린 카펠로 감독과 조광래 감독도 닮은 구석이 많다. 두 감독 모두 최씨 성은 아니었지만 고집 하나만큼은 황소급이었다.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어붙일 정도로 자아(自我)가 강하다. 카펠로 감독은 잉글랜드 대표팀 내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엄격한 행동강령으로 다스렸다. 단체식사 중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은 물론 지각하는 선수들에겐 엄벌을 내렸다. 잉글랜드 대표팀 재임 시절 그는 전술의 달인이 아닌 강력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리더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자기자신에 대한 신념과 자신감이 바탕에 깔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팀 관리법이다.

조광래 감독의 고집은 일상에서의 행동규칙보다는 자기만의 축구 철학 실천에서 드러났다. ‘포어 리베로’, ‘포어 체킹’ 등 자기만의 문법 안에 기존 선수들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이청용의 “만화 축구” 발언으로 대변되는 조광래 감독의 4-3-3 전술에 많은 선수들이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럼에도 조광래 감독은 꿋꿋이 자기 믿음을 고수했다. 자기 전술 완성을 위해서라면 장거리 이동이 불가피한 해외파는 물론 올림픽 대표팀 소속 선수들의 차출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세계 어느 국가에서나 A대표팀이 최우선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조광래 감독은 주변과의 맞춤보다는 자기 철학에 더 충실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선수 선발은 독단으로 보였고 결국 대한축구협회 내에서 크고 작은 잡음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닮은꼴 #3: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구석
그래서 한국과 잉글랜드가 모두 실패의 길로 접어든 걸까? 그렇진 않다. 현재 모습은 분명히 불안하고 흔들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국가가 결국 실패할 거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카펠로 감독의 경질이 잉글랜드의 유로2012 실패를 의미하진 않다. 오히려 조별리그 1, 2차전에 나서지 못하는 웨인 루니의 공백이 더 큰 걱정거리다. 2006년 이탈리아는 승부조작 파문으로부터 불과 한 달 뒤 월드컵을 들어올렸다. 부정적 상황 하에서의 위기감이 역으로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된 좋은 사례다. 잉글랜드도 자국 출신 지도자를 선택함으로써 지금까지 제기되어왔던 통솔력과 의사소통의 부재 문제를 개선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토트넘 홋스퍼의 해리 레드냅 감독이 영순위 후보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새 감독도 희망을 걸 수 있는 인물이다. 최강희 감독은 지금까지 과소평가되어왔다. 외국인 감독에 대한 판타지가 여전한 분위기 속에서 K리그를 제패한 지도자의 역량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은 모든 선수들이 인정하고 존경할 수 있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K리그 우승은 장기 레이스에서 꾸준함을 유지시킬 수 있다는 능력의 증거다. AFC챔피언스리그 실적(우승 1회, 준우승 1회)은 단기 토너먼트에서의 스트레스를 넘기기 위해 지도자가 가져야 할 처방과 관리 요령을 말해준다. 평소 지나친 겸손이 흠이라면 흠이랄까 최강희 감독은 변화가 필요한 한국 축구에 있어서 최적의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결단의 끝은 어디로
서두에 말했지만 한국과 잉글랜드의 축구는 매우 닮았다. 스타플레이어가 많음에도 대표팀 성적은 매번 화려한 이름값의 총합에 다소 못 미쳤다. 대한민국 대표팀만큼 화려한 면면을 지닌 아시아 지역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일본이 아시안컵 주인 행세를 해도 구성원의 프로필에선 한국을 당하지 못한다. 프리미어리그의 슈퍼스타들이 한 자리씩 꿰차고 있는 잉글랜드 대표팀도 액면가에서만큼은 언제나 유럽 최정상이다. 하지만 월드컵은커녕 유로 대회에서조차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축구가 국민적 관심사인 두 국가에서 당연히 국가대표팀 감독직은 가장 명예롭고 가장 힘든 자리다. 언론 노출은 물론 과정과 결과를 놓고 실시간으로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채점을 당해야 한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자리다. 양쪽 모두 중요한 일전을 목전에 두고 그 자리에 변화를 줬다. 그 결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대단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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