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용수 감독, “언제까지 우승후보에 만족할건가”
입력 : 2012.02.1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가고시마(일본)] 배진경 기자= 용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이 있다. FC서울 최용수 감독을 보면 이번 시즌 K리그 개막을 준비하고 있는 선수들이 왜 그토록 자신감에 넘쳐있는지 알 것 같다.

최용수 감독은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다. 선수 시절부터 유명했다. 남다른 투지와 근성으로 상대 골문을 휘저었고, 자신의 길을 막아서 방해하는 선수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되갚아주곤 했다.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도 경기를 대하는 자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경기는 승점을 벌기 위한 전쟁터다. 양보란 있을 수 없다. 우승컵에 대한 열망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나눌 수 없는 것이기에 더더욱 오랫동안 소유하고 싶은 대상이다. 목표는 분명하다. “언제까지 우승후보라는 말에 만족할건가”라는 말에 군더더기가 없다. 선수들의 승부욕까지 깨우는 말이다.

최용수 감독은 “시간이 없다”고 했다. 최용수 감독과 서울의 계약기간은 2년이다. 장기 계약은 스스로 원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팀을 만들어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서울은 결과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팀이다. 이번 시즌에는 정면승부를 걸어보고 싶다. 자신의 지도력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받겠다는 각오도 섰다.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최용수 감독을 전지훈련이 한창인 가고시마 교세라호텔에서 만났다.

- 괌 전지훈련에 이어 일본에서 2차 전지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계획대로 팀이 완성되고 있나. 지금까지 성과는 어떤가.
생각보다 진도가 잘 나가고 있다. 괌에서는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무척 좋았다. 선수들의 의지가 느껴졌다. 취약 포지션을 보강하면서 균형도 잡혔다. 1차 훈련에서 개인 기술을 점검하고 팀의 전체적인 체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일본에서는 좀더 완성도를 높이는 데 신경쓰고 있다. 3월 개막시점에 맞춰 준비하고 있는데, 시작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경기에서 삐걱거리면 자칫 팀 전체의 자신감이 떨어질 수 있다. 좋은 출발을 보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 부상 선수가 없는 상황도 시즌 준비에 힘이 될 것 같다.
그만큼 팀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건강이라는 건 기술이나 전술 같은 경기 내적 요소부터 선수들의 마인드, 심리적인 것까지 모두 해당된다. 선수들 스스로 FC서울의 팀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지도자가 일일이 상황을 만들어줄 수는 없다. (부상이 없는 건)선수들의 프로의식이 그만큼 진보했다는 증거다.

- 대행 꼬리표를 떼고 정식 감독이 됐다. 이번 시즌은 감독으로서 제로 단계에서 새로 시작하는 원년인가, 아니면 지난해부터 보여준 축구를 확장시키는 연장인가.
후자다. 작년 4월 26일부터 선수들과 함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어왔다. 그러는 동안 서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결과를 보면 절반의 성공이었다. 올해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안다. 내가 특별한 주문을 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알아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상태다.
사실 나한테는 3년, 5년, 10년 같은 장기계약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시점에 선수들을 잘 이끌어서,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이 있는지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고 또 정당하게 평가받고 싶다.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단계적으로 만들어갈 필요성도 있지만 나한테는 그럴 시간이 없다. 바로 올해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많다.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법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기대는 된다. 정면승부를 걸고 싶다.

- 훈련장에서 보니 점유율을 높이는 부분에 대해 강조하던데. 올 시즌 코드는 ‘점유율 축구’인가.
전략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얘기할 수는 없다. 점유율이 전부는 아니다. 축구라는 건 89분 동안 압도적으로 볼을 소유하다가도 (골을 넣지 못한 채) 90분에 한 골을 먹으면 끝나는 싸움이다. 90분 전체를 잘 조절하자고 강조한다. 매번 상대를 일방적으로 요리할 수도 없고, 상대도 우리팀에 대해 많이 준비할 것 아닌가. 다만 우리가 볼을 갖고 있으면 실점할 확률은 많이 줄어들 테니까 그 부분에 대해 주의를 주고 있다.

- 서울은 젊은 선수들이 많고, 빠른 패스 위주로 재밌는 축구를 하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감독이 생각하는 FC서울의 색깔, 정체성은 무엇인가.
구성원들 볼 만지는 걸 좋아하는 팀이다. 볼을 만진다는 것은 자기 발을 거쳐서 만들어가는 플레이를 좋아한다는 의미다. 공격지향의 축구를 선호하고, 골을 넣고 싶어하고,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들이 강하다. 축구지능이 상당히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결국 시스템이나 전략이라는 것은, 내가 가진 구성원들을 잘 파악해서 어떻게 완성시켜나가느냐의 방법론이 아닌가 싶다.

-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좀더 보완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굳이 안 좋은 점을 공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웃음).

- 토너먼트나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약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 이유는 뭐라고 보고 있는지.
가장 최근의 경기가 지난해 11월 19일(6강 플레이오프)이다. 그때는 솔직히 우리가 울산보다 준비 과정이 미흡했다. 그날 경기에 뛰었던 선수 중 절반 정도가 큰 경기에서 뛴 경험이 없었다. 결과는 상대한테 졌다. 하지만 나름의 수확도 있다. 그날 뛰었던 선수들이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좀 두르려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웃음). 이 친구들이 올해 또 그렇게 큰 경기에 나서면, 이번에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데얀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평가도 있다. 동의하나.
데얀은 K리그 누구라도 인정하는 최고의 용병 아닌가. 나뿐만 아니라 우리팀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한 신뢰와 긍지를 갖고 있다. 데얀과 우리 선수들은 하루하루 정말 즐겁게 잘 지내고 있다. 데얀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하지만, 사실 그 친구 포지션이 스트라이커이고, 몬테네그로 대표 선수인데 (골을 넣는게)당연한 것 아닌가. 골을 넣으라고 데려온 선수니까 그 역할을 하는게 당연하다. 그 외에 다른 친구들도 충분히 K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할 수 있는 자질이 있다. 데얀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다른 선수들이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달라.

- 이청용과 기성용, 박주영이 모두 서울에서 뛰다가 유럽으로 진출했다. 올해나 내년에 서울에서 또 그런 선수들이 나올 거라고 기대할 만한가?
사실 이청용과 기성용, 박주영까지 이렇게 좋은 선수가 될 줄은 몰랐다.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이야 알아봤지만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청용이와 성용이의 경우 귀네슈 감독이 끌어주고 기다려주고 기회를 주면서 키웠다. 그런 걸 보면 감독의 역할도 정말 중요하다. 지금 우리팀에서도 좋은 페이스로 만들어간다면, 누가 나와도 쏟아질 것 같다. 다만 선수 이름을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 박주영이 많이 힘든 상황인데.
비단 나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특별히 그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 이번 시즌에 특별히 기대되는 맞대결이 있나. 서울을 제외한 15개 팀 감독 중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상대가 있다면.
내가 감독 생활을 오래하면 좀더 여유가 생길까. 지금은 딱히 누구를 꼽기 어렵다. 모두에게 다 지고 싶지 않다.

- 그래도 공식 기자회견에서 보면 남다른 언변을 자랑하던데. 상대 감독과의 신경전도 흥미진진하고.
내가 우리 팀을 대표해서 나가는 자리니까. 내 말 한 마디에 우리 선수들의 자신감이 올라갔다 떨어졌다 할텐데, 나 스스로 당당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내가 젊은 감독이니 가능한 것 아니겠나. 내가 60대 감독이 되어서 ‘패기’나 ‘열정’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고. 또 여러 선배 감독님들이 내가 하는 말들을 너그럽게 받아주시니 팬들이 재밌게 봐주시는 것 아닌가 싶다.

- J리그도 경험했고 올림픽팀 비쇼베츠 감독 때부터 히딩크, 귀네슈 등 유난히 많은 외국인 감독들을 경험했다. 지도 철학을 세우는 데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아무래도 지도자로서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귀네슈 감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잠자는 것 빼고는 거의 모든 생활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그분의 축구에 대한 열정, 욕심, 배움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보면서 깨달은 게 많다. 선수들에게 편견없이 대하고 또 어떻게 해야 선수들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K리그에 맞는 새로운 축구를 보여줄 수 있는지 연구하셨던 분이다. 준비 과정을 보면 살벌함이 느껴질 정도로 철저한 프로페셔널이었다. 정말 명장이었다.
귀네슈 감독뿐 아니라 여러 감독들의 좋은 점을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내가 만약 선수로 자라던 당시의 한국적인 상황만 주입돼 있었더라면, 지금 지도자로 지내는 데 굉장히 편협하고 위험한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감독님들을 통해 상황마다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공부를 한 것 같다.

- 서울은 매 시즌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팀이다. 이번 시즌에도 당연히 우승이 목표인가.
당연히 재작년 우승의 환희를 다시 한번 누리고 싶다. 하지만 작년에 우승하지 못했으니 이제는 우리가 도전자의 입장이다. 챔피언스리그에도 나가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실패했다. 반드시 (명예를)되찾아야 한다.

다만 우리가 이제 도전자의 입장이라는 출발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매번 우승후보라 손꼽히니 선수들이 착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우승팀이 아니다. 정신무장을 다시 하고 경기에 나서야 한다. 언제까지 우승후보라는 수식어에 젖어 있을건가. 그러니까 ‘경기에 졌는데도 ‘우승후보다운 경기력을 보여줬으니 이 정도면 만족한다’에서 그치는 거다. FC서울이라는 환상에 젖어있으면 안된다. 앞으로는 우리 스스로 우리가 가진 실력을 보여주고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땀 흘려서 얻어낸 우승이라면, 이후에는 우리가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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