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축구] 포돌스키, 박주영이 '충동 영입'이라는 증거
입력 : 2012.05.0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지난해 8월, 아스널 아르센 벵거 감독은 로빈 판 페르시 백업 공격수가 절실했다. 유럽 전역으로 눈을 돌려 선수를 물색했다. 조건은 간단했다. 유럽 축구 경험, 실력 대비 저렴한 몸값, 마케팅 등이 고려대상이었다. AS 모나코에서 세 시즌 동안 뛰며 프랑스 리그1 탑 클래스 공격수로 활약한 박주영이 레이더망에 걸렸다. 프랑스 태생으로 리그1 출신 선수에 대한 애착이 강한 벵거 감독은 릴의 ‘장바구니’에 담긴 선수를 ‘아스널’이라는 매력적인 구단명으로 유혹했다. 그 선수는 ‘혹’했고 9번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박지성에 이어 또 한 명의 태극전사가 빅클럽의 문을 여는 순간이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났다. 축구 인생 최악의 위기가 찾아왔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단 5분을 뛰었다. 경기 출전은 커녕 벤치에 앉기도 버겁다. 이 기간 동안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가 잉글랜드 출신의 십대 공격수에게 출전 기회를 빼앗기는 굴욕도 당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2년 앞두고 최고의 몸 상태로 6월부터 월드컵 최종예선에 임해야 하는 박주영은 장기 결장에 따른 실전 감각 결여로 대표팀 내 입지가 좁아졌다. 그 사이 군 면제로 인한 비난 여론에도 휩싸였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애초부터 잘못된 만남이다. 지나고 보니 ‘유리몸’ 판 페르시를 위한 특별 보험이었다는 게 명백해지고 있다. 벵거 감독은 보험을 들어놓은 것도 잊은 지 ‘본척만척’이다.

벵거 감독은 결국 충동적으로 영입했다. 1월 아프리칸 네이션스컵에 출전하는 마루아네 샤마흐, 제르비뉴의 공백에 대비할 심산이었다. 두 선수가 빠지면 공격진에 판 페르시와 시오 월컷이 남는데 둘 모두 부상을 달고 사는지라 불안했다. 벵거 감독은 1월부터는 출전 기회를 줄 것이라고 했지만, 이 또한 지나고 보니 깨알 같은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 “판 페르시가 부상 당할 경우”라는 가정법을 썼어야 했다. 또 “새로운 누군가 내 마음에 찼을 경우”를 빼먹었다. 눈 밖에 난 샤마흐는 그렇다 쳐도 제르비뉴, 요시 베나윤, 토마스 로시츠키가 항상 기용 우선순위에 뒀다. 사지 멀쩡한 박주영에게 프리미어리그는 너무 먼 무대로 보였다.



그렇게 시즌 종료를 맞이하면, 내년에는 괜찮아지리라는 희망이라도 품어야 한다. 하지만 또 다시 위기설에 휩싸인 건 청천벽력 같은 뉴스 때문이다. 1985년생 동갑내기 독일 대표 공격수 루카스 포돌스키가 아스널 유니폼을 입었다. 이적료만 1,300만 파운드에 달하는 ‘빅 사이닝’이다. 영입 과정이 상당히 대조적이고, 영입 확정 후 반응도 다르다. 박주영이 충동 영입이었다면 포돌스키 영입은 구단 측에서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작품이다. 박주영에게 판 페르시의 백업 공격수라는 꼬리표가 달렸다면 포돌스키에겐 판 페르시의 대체 공격수 또는 짝꿍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독일 분데스리가 쾰른, 바이에른 뮌헨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독일 대표로 유럽선수권대회 준우승까지 맛본 소위 ‘A급’ 공격수 포돌스키와 엮이기에는 지금의 박주영은 초라하다.

올 시즌도 무관에 그친 아스널은 포돌스키를 적극 기용할 생각으로 돈을 풀었다. 내년 시즌부터는 포돌스키 원톱(판 페르시 이적시), 판 페르시-포돌스키 투 톱, 포돌스키-판 페르시-월컷(제르비뉴) 스리톱 등 공격 전술이 최전방, 섀도우, 측면 공격수가 가능한 포돌스키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애석하게도 박주영이 낄 자리는 없다. 판 페르시가 우승 트로피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며 팀을 떠난다고 해도 포돌스키라는 새로운 벽이 막아서고 있다. 그 벽을 뛰어넘을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인데 포돌스키가 부진한 활약으로 과거 훌리우 밥티스타,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등과 같이 벵거 감독의 눈도장을 찍지 못할 경우와 박주영 스스로 프리시즌 활약을 통해 감독의 마음을 돌려놓는 경우다. 포돌스키의 실력과 풍부한 국제경험, 그리고 벵거 감독의 고집을 놓고 볼 때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스널에서 박주영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글. 윤진만 기자
사진. ⓒMarc Atkins/BPI/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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