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불펜투수 박상원(30)이 데뷔 후 처음으로 2회에 깜짝 투입됐다. 10타자를 퍼펙트로 정리하며 길게 던질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 한화는 패배에도 의미 있는 수확을 거뒀다.
한화는 지난 13일 대전 LG전에서 선발투수 김기중을 ‘퀵후크’했다. 김기중은 1회초 1사 후 문성주, 김현수, 문보경에게 3연속 안타를 맞은 뒤 박동원에게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내줬다. 이어 오지환에게 우전 적시타를 맞아 추가 실점했다.
계속된 2사 1,2루에서 김성진을 3구 삼진 처리하며 첫 이닝을 끝낸 김기중은 그러나 2회초 박해민에게 우월 솔로 홈런을 맞았다. 투스트라이크 유리한 카운트에서 던진 3구째 몸쪽 높은 커브를 공략당했다. 1회부터 맞은 5개의 안타 모두 변화구(슬라이더 3개, 커브 2개)로 LG 타자들의 노림수에 읽히는 모습이었다.
김기중은 2회초 투아웃을 잡은 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강판됐다. 투구수가 36개밖에 되지 않았지만 빠른 타이밍에 투수 교체가 이뤄졌다. 그 다음 투수는 우완 박상원. 지난 2017년 프로 데뷔 후 7시즌 통산 311경기 모두 구원으로 나선 박상원이 2회에 등판한 건 처음이었다. 2020년 9월13일 수원 KT전에서 선발 채드벨이 어깨 통증으로 2이닝 만에 조기 강판되면서 3회에 등판한 적은 있었지만 2회는 첫 등판.
그동안 주로 6~9회에 나서는 필승조, 마무리로 활약한 박상원이었기에 2회 등판은 너무나도 낯선 장면이었다. 2회 첫 타자 문성주를 3구 삼진 돌려세우며 시작한 박상원은 3회부터 5회까지 순식간에 정리했다. 3회초 문보경의 2루 땅볼 때 황영묵의 포구 실책으로 주자가 나갔지만 다음 타자 박동원을 유격수 병살타로 유도한 박상원은 4~5회에도 연속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막았다.
앞서 2이닝이 개인 최다 투구였지만 이날 3⅓이닝을 던지며 10타자 상대 탈삼진 1개 포함 무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막았다. 수비 실책을 빼면 사실상 퍼펙트 피칭. 투구수도 32개밖에 되지 않았다. 트랙맨 기준으로 최고 시속 152km, 평균 148km 직구(18개)를 비롯해 포크볼(8개), 슬라이더(6개)를 구사했다.
박상원의 호투에 힘입어 한화는 선발 조기 강판에도 3점차 간격을 5회까지 유지하며 추격 희망을 이어갔다. 비록 경기는 3-7로 패했지만 올 시즌 부진을 거듭했던 박상원이 자신감을 찾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운드에서 모처럼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했다.
입단 2년 차였던 2018년부터 한화 불펜 필승조로 활약한 박상원은 지난해 5월말부터 마무리를 맡아 16세이브를 거뒀다. 올해는 마무리로 시즌을 시작을 했지만 초반부터 불안감을 노출했고, 5경기 만에 중간으로 보직을 옮겼다. 낮은 쪽을 잘 안 잡아주는 ABS 영향인지 주무기 포크볼의 구종 가치가 떨어지면서 제구가 흔들렸고, 자신감까지 떨어지며 4월과 5월 두 번이나 2군에 내려갔다.
올 시즌 성적은 33경기(29⅔이닝) 3패1세이브4홀드 평균자책점 7.89. 통산 평균자책점(3.99)을 감안하면 올해 부진은 예상하기 힘든 수준이다. 지난달 5일 수원 KT전에선 상대를 자극할 의도가 없었지만 과한 세리머니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데뷔 후 이렇게 야구가 안 되고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날 투구는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나아가 박상원에게서 길게 던질 수 있는 능력까지 확인한 한화 벤치에선 그의 활용법을 보다 다양하게 가져갈 수도 있다. 세기는 떨어져도 구위가 좋은 박상원은 그동안 1~2이닝 짧게 힘을 압축해서 던지는 데 능했지만 이날 특유의 공격성으로 긴 이닝도 효율적으로 막았다.
한화는 지난해까지 이태양, 장민재, 윤대경 등 팀과 경기 상황에 따라 불펜에서 2이닝 이상 길게 던질 수 있는 롱릴리프형 투수들이 꽤 풍족했다. 그러나 올해는 모두 2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고, 선발이 일찍 강판되거나 연장전에 들어가면 길게 던질 수 있는 불펜이 부족했다. 박상원이 당분간 이 역할을 맡는다면 한화의 마운드 운영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