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울산, 조형래 기자]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최근 4시즌 동안 많은 선수들이 포지션을 바꿨다. 내야수는 외야수로, 포수는 투수로 바뀌는 등 어느 순간 2군 경기에서는 본래와 다른 포지션으로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이 많았다. 구단은 선수들의 포지션 전향을 쉽게 생각했고 이 과정에서 방황하는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성공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선수가 나균안이었다. 2017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로 지명을 받았던 대형 포수 유망주 나균안은 데뷔 초창기부터 과도한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뛰면서 성장이 정체됐다. 결국 2020년 스프링캠프에서 유구골 골절 부상을 당한 뒤 투수로 전격적으로 전향했다. 나종덕에서 나균안으로 개명까지 한 뒤 투수로 빠르게 정착했다. 2022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스윙맨 역할을 하더니 2023년에는 선발투수로 자리를 잡았고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까지 발탁,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병역혜택까지 받았다.
그러나 올해 나균안은 스프링캠프에서 개인사로 논란을 빚더니 시즌 중에는 선발 등판 직전 술자리를 가지는 사생활 이슈까지 터지면서 구단의 엄중한 자체징계를 받았다. 나균안의 트랜스포머 성공 스토리는 많이 퇴색이 됐다.
그런데 나균안과 같은 케이스의 선수가 또 한 명이 있다. 그리고 현재 조용히 1군에서 평균자책점 0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표본은 적지만 한정된 기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착실하게 드러내면서 접전 상황에서도 중용을 받고 있다.
투수 김강현(27)은 커리어 내내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였다. 청원고를 졸업하고 2015년 육성선수로 입단한 김강현은 입단 당시 포지션은 우투좌타 포수였다. 그러나 2018시즌까지 1군은 커녕 2군에서도 마땅한 입지를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2017시즌이 끝나고 방출됐고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2020시즌 전역했고 롯데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됐다. 이 해 감격의 1군 데뷔까지 했지만 특별한 존재감을 과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2020년 김강현은 개명을 했다. 개명 전 이름은 김호준.
2021년까지 변변치 않았던 커리어의 김강현은 나균안처럼 투수로 전향하게 된다. 퓨처스리그에서도 통산 6시즌 동안 130경기 타율 1할9푼9리(191타수 38안타) 1홈런 27타점 OPS .610의 기록만 남긴 채 투수 글러브를 끼었다. 2021년 11월 교육리그부터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김강현은 당시 꽤나 호평을 받았다. 당시 2군 관계자들은 “공격력에서 아쉬움은 있었지만 어깨는 좋은 선수였다. 그래서 구단과 저 모두 투수 전향을 권유했다. 첫 경기를 제외하고는 투수로서 제구도 안정적으로 잡혀가고 있다”라며 “변화구는 아직 미숙하지만 터널링이 좋은 편이다. 슬라이더 같은 변화구를 던져보니 점점 괜찮아지고 있다. 구속도 현재 140km 정도 나오는데 구속도 점점 좋아질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2군 코칭스태프는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하는 것은 나균안과 같지만 투구 스타일은 다르다. 몸에 베어 있는 송구 스타일이 스리쿼터 유형인데 공의 궤적이 자연스럽게 투심처럼 간다. 투심으로 약한 타구를 곧잘 유도해내고 있고 점점 좋아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2022년 본격적인 투수 전향 첫 시즌, 퓨처스리그에서 16경기 22⅓이닝 4승2패 1홀드 평균자책점 6.04의 성적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투수로 21경기 51⅔이닝 3승4패 3홀드 평균자책점 3.66으로 괜찮은 성적을 남겼고 1군에서 투수로 데뷔해 2경기를 던졌다.투수 전향 3년차인 올해, 김강현은 더더욱 성장했다. 퓨처스리그에서 17경기 31⅓이닝 1승1패 3홀드 평균자책점 2.01의 호성적을 남겼다. 이닝 당 1개에 육박하는 31개의 탈삼진을 잡아냈고 볼넷은 7개에 불과했다. 9이닝 당 볼넷은 2.01개로 제구력이 안정을 찾았다.
2군의 성적을 바탕으로 1군 김태형 감독에게도 보고가 들어갔고 지난 5월 31일,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됐다. 1군 등록 열흘 가까지 등판하지 못했던 김강현. 그러나 6월9일 SSG 랜더스와의 더블헤더 1차전 1-5로 뒤진 8회 등판해 2이닝 2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를 펼쳤다. 올 시즌 첫 등판을 이렇게 마치고 김강현은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고 20일 다시 등록됐고 현재까지 1군에서 생존하고 있다. 등판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고 중요도가 비교적 떨어지는 상황에서 등판하고 있지만 김강현은 현재 평균자책점 제로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1군에서 9경기 등판해 8⅓이닝 동안 5피안타 2볼넷 9탈삼진 비자책 1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닝 당 출루 허용(WHIP)은 0.84에 피안타율은 1할6푼7리에 불과하다.
점점 등판하는 상황의 점수 차가 줄어들더니 필승조에 준하는, 접전 상황에서 주용받는 투수로 거듭나고 있다. 17일 울산 두산전 1-2, 1점 차로 뒤진 8회초 2사 1루에서 진해수의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올라왔다. 그리고 간단하게 허경민을 3루수 땅볼로 유도하면서 이닝을 정리했다. 이후 8회말 윤동희의 동점 적시타가 터졌고 연장 10회 레이예스의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6-2 승리를 완성했다. 승리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냈다.
이튿날인 18일에도 김강현은 1점 차에 등장했다. 선발 박세웅이 8이닝 4피안타(1피홈런) 9탈삼진 3실점으로 역투를 펼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2-3으로 1점 차로 뒤져있었다. 9회였기에 필승조가 등판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태형 감독이 투입한 투수는 김강현이었다.
김강현은 믿음에 보답하며 깔끔하게 1이닝을 틀어막았다. 정수빈을 투수 땅볼, 허경민을 3루수 땅볼로 요리한 뒤 라모스까지 삼진으로 잡아내 삼자범퇴를 만들었다. 만만치 않은 두산의 상위타선이었지만 김강현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비록 롯데는 9회 1점의 격차를 따라붙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희망을 붙들 수 있었다.김상수 구승민 등의 필승조에 부담이 비교적 많이 쏠린 롯데다. 시즌 초반 필승조 역할을 했던 최준용과 전미르는 2군에서 재정비를 하고 있기에 당장 1군 불펜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새얼굴이 절실했는데 김강현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아직 확실한 신뢰를 얻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마운드에서 스스로 증명하면서 김태형 감독의 믿음을 서서히 얻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김강현은 지난해까지의 나균안처럼, 투수 전향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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