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잠실, 한용섭 기자] 눈물의 고별전이었다.
LG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는 2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전날(19일) 구단으로부터 방출 결정을 통보받은 켈리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등판하겠다고 자청했다. 염경엽 감독은 등판할지 안 할지를 켈리의 의사에 맡겼는데, 켈리는 아내와 상의하고서 마지막 선발 등판을 준비했다.
켈리는 1회를 삼자범퇴로 막고, 2회 1사 1,2루에서 김기연의 살짝 뜬공 타구를 유격수 오지환이 센스 있게 원바운드로 잡고서 2루 주자를 태그 아웃하고 2루 베이스를 밟아 더블 플레이로 이닝을 끝냈다.
LG가 6-0으로 앞선 3회, 켈리는 1사 1루에서 정수빈을 3루수 땅볼로 처리하며 2사 2루가 됐다. 이 때 폭우가 쏟아지면서 경기는 오후 6시50분에 중단됐다.
우천 중단 된 경기는 비가 그치자 오후 8시35분에 재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라운드 정비 작업을 마쳤는데, 또다시 폭우가 쏟아지면서 결국 오후 8시 29분에 노게임이 선언됐다.
“이닝을 끝까지 막겠다”는 의사를 밝힌 켈리는 1시간 40분 가까이 기다리면서 불펜에서 몸을 풀고 다시 등판할 준비를 했으나 하늘의 뜻에 막혀 무산됐다.
우천 노게임이 선언되고, 이후 켈리의 고별행사가 열렸다. 내야 그라운드에는 대형 천으로 만든 켈리의 유니폼이 펼쳐졌다. 1루측 덕아웃 앞에 켈리의 등번호 ‘3번’이 적힌 작은 단상이 마련됐다.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많은 LG팬들은 야구장을 떠나지 않고 켈리를 향한 뜨거운 응원과 격려를 보냈다.
김인석 LG 트윈스 대표이사가 기념품을 전달했고, 주장 김현수를 비롯해 임찬규, 오지환, 박해민, 박동원, 오스틴이 차례로 꽃다발을 전달하며 포옹을 나눴다. 켈리는 LG팬들을 향해 큰 절을 했다.
켈리는 아내와 딸, 아들 가족들과 단상에서 전광판에 상영된 LG에서 뛴 6년간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을 지켜봤다. 선수단과 단체 사진까지 찍은 켈리는 잠실구장 내외야를 한 바퀴 돌면서 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어제오늘 복잡하고 다사다난했을 것 같다
몇 년 동안 부진할 때마다 교체 루머가 있었는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다. 올 시즌 초 루머가 있었고, 이번에 또 들었는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지난 5년 반 동안 시간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 팬들의 응원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1번 더 등판 기회를 얻어서 기분 좋았다.
-어제 방출 통보를 받고도 오늘 등판을 자청했는데.
어제 마지막으로 아내와 상의를 하고, 오늘 던지기로 결정했다. 한화전은 마지막 경기라는 것을 몰랐던 상태였으니까, 잠실에서 팬 앞에서 한 번 더 하자, 그런 생각으로 결정을 했다. 또 다른 이유는 5년 반 동안 함께 한 동료들과 한 번 더 해보고 싶었다. 두산전에 던지는 것이 항상 즐겁고 신났기에 동료들과 한 번 더 경기를 하고 싶어서 결정했다.
-비가 온다 안 온다 했는데, 날씨를 보며 준비하면서 마음은 어땠나
집중하려 했다. 경기가 재개된다고 했을 때 끝내기 못한 이닝을 끝내고 싶었다. 두 번째 비가 쏟아지면서 중단되면서, 이게 내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2이닝을 잘 던져, 동료들과 함께 했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고별 행사는 어땠나.
굉장히 놀라웠다. 이전에 뛰었던 외국인 선수들 중에서 이런 세리머니를 했던 것을 본 적이 없다. 5년 반 동안 특별한 시간이었고, 세리머니가 열린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울지 않으려고 잘 참았는데, 세리머니 시작하자 눈물이 그치지 않고 계속 흘렀다. 팬들이 궂은 날씨에도 기다리고 남아줘셔서 내 마음 속에 특별하게 남을 것 같다. 구단 프런트에 감사하고, 팀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맙다.
-LG 동료들도 많이 울었다. 어떤 얘기들을 해줬나.
감사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동안 팀 동료들이 음식 주문, 커피 주문 등 잘 알려주고 도와줬다. 5년 반 동안 동료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가족과 다름없다. 선수들 자녀들과 우리 아이들이 친구처럼 잘 놀고 지냈다. 특별한 사이였다. 앞으로 영상 통화 자주하고 그러면 될 거 같다.
-5년 반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서 어떤 경기가 제일 와 닿았는지.
많은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한국시리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장 특별한 경기는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다. LG가 29년 만에 우승을 했고, 팬들도 구단도 한국시리즈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을 가졌다. 그 경기에 던지고 승리 투수가 된 것이 영광이고 특별했다.
-자녀들에게 상황을 어떻게 얘기해줬는지.
딸 카미는 이해할 나이가 됐다. 우리 이제 애리조나로 돌아간다고 하니까, ‘아빠, 그럼 우리 내일 비행기 타요’ 그러더라. 아들 CJ는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카미가 지금 유치원 다니고 있다. 웨이버 기간까지 유치원을 보내고, 그 다음에 이제 애리조나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알려줄 것이다. 아이들은 기분 좋겠지만, 막상 돌아가면 한국을 떠난 것을 좀 슬퍼할 것 같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야구 선수 이기 이전에 인간 켈리를 먼저 기억해줬으면, 팬 여러분 성원을 많이 보내줬다. 처음에 팬심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경험을 하면서 KBO의 팬심에 놀랐고, 감명 받았다. 매 경기 최선을 다했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줬다. 팀을 위해 희생을 하게 됐다. 최고의 팀 플레이어로 기억되고 싶고. 야구를 잘 했다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오늘 만감이 교차했다. 일단 내가 건강하고 만족스럽다. 생각할 시간이 있는데, 여러 선택지가 있다. 미국이 될지, 대만이 될지 선택지를 검토해보고, 여전히 마운드에서 던지고 싶고, 야구를 하고 싶다. 어딘가에서 야구를 하지 않을까 싶다.
-팬들에게 큰 절을 했는데.
(행사를 몰라서) 아무런 준비를 안 했다. 팬들이 끝까지 남아주셔서 감사하고, 구단과 직원들이 행사를 준비해줘 너무 감사했다. 생각한 이상으로 많은 부분이 감사하다. 생각치 못한 세리머니에 감사하고 특별했다.
-만약 LG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응원을 어떻게.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다. 동료들을 응원하는 것 보다는 팀의 일원으로 경기를 하고 싶었다. LG가 한국시리즈에 올라간다면, 당연히 응원해야죠. 지금도 동료들을 응원하고 앞으로도 응원할 거다. LG는 내 마음에 특별한 존재로 남아있는 팀이다. 한국에 와서까지 응원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LG 트윈스를 응원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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