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축구환상곡] 손흥민과 구자철에게 필요했던 것은 ‘기회’
입력 : 2012.04.1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슈퍼 탤런트’ 손흥민이 181일이 만에 득점포를 가동했다. 아우크스부르크 임대 이후에만 4골을 몰아친 ‘어린왕자’ 구자철과 2011/2012시즌 득점 기록에 보조를 맞췄다. 손흥민이 장기간 이어진 골가뭄을 끝낼 수 있었던 이유는 4개월 만에 주어진 선발 출전 기회 덕분이었다. 경기장 밖에서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고 체력 단련을 해도 경기장 안에서 쌓는 실전 감각, 그리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활동 시간이 없다면 결과를 내기 어렵다.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격수 올레 군나르 솔샤르와 같은 ‘슈퍼 서브’의 사례는 극히 찾아보기 어렵다.

손흥민이 14일(현지시간) 열린 하노버96과의 ‘2011/2012 독일 분데스리가’ 31라운드 경기에 선발 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전 공격진의 동반 이탈 때문이었다. 페루 대표 공격수 파올로 게레로가 여전히 장기 징계를 소화 중이며, 크로아티아 공격수 믈라텐 페트리치가 경기 전 감기 증세로 갑작스레 명단에서 빠졌다. 최근 집중적으로 기용되며 좋은 플레이를 펼쳐온 스웨덴 공격수 마커스 베리와 짝을 이뤄 선발 투톱으로 출전했다.

손흥민은 경기 시작부터 활기찬 플레이를 펼쳤다. 과감한 슈팅과 시원스런 드리블링은 물론 측면으로 이동해 결정적인 크로스 패스로 수 차례 뿌렸다. 독일 언론 ‘빌트’는 손흥민에게 경기 최고 평점인 2점을 부여했고, 함부르크 지역신문 ‘모르겐 포스트’는 “손흥민이 죽어가던 함부르크를 살렸다”고 보도했다.



▲ 4개월 만의 선발 출전, 조급증 덜어내자 골 터졌다

손흥민의 하노버96전 활약은 사실 크게 놀라운 모습이 아니다. 손흥민은 토어스텐 핑크 감독 부임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후반기 11경기 연속으로 교체 투입됐다. 이 중 평점을 받을만큼의 시간을 소화한 것은 세 차례에 불과했다. 30라운드 호펜하임전에는 아예 결장했다. 핑크 감독은 게레로와 페트리치 같은 베테랑, 베리와 아슬란 같은 기교파 선수들을 더욱 선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손흥민은 교체 선수로 나설 때 측면과 2선 등에 배치되어 전방 공격진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페널티 에어리어 근방과 내부에서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는 손흥민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은 아니다. 하지만 손흥민은 제한된 기회에도 최선을 다했다.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공격 지역이든 수비 지역이든 온 몸을 던졌고, 빠른 돌파과 적극적인 슈팅으로 강등권으로 추락하면서 고전하던 함부르크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그럼에도 손흥민에겐 선발 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주어진 선발 출전 기회에서 손흥민은 전반 12분 만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 같은 특급 스타들이 구사하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왼쪽 측면에서 수비를 달고 문전으로 파고 들어 밀집 수비와 골키퍼가 막을 수 없는 골문 구석으로 마무리 슈팅을 찔러 넣었다.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투입되어 경기 시작부터 리듬을 타기 시작하니 손흥민의 경기력이 제대로 살아났다. 90분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빨리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증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손흥민은 계속해서 출전 기회가 제한된 상황에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기회를 기다렸다. 동료 선수들과 돈독한 관계를 이루어 왔다. 오랜만에 찾아온 선발 출전 기회에 강박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손흥민은 이날 경기 종료 직전에 교체되며 기립 박수를 받았다. 핑크 감독은 손흥민과 격한 포옹을 나누었다.

이날 득점과 활약은 향후 주전 경쟁에 분명한 청신호가 될 것이다. 선발 출전이라는 기회는 손흥민의 자신감과 경기 감각, 경기 체력을 모두 살려주었다. 손흥민은 어린 나이지만 많은 출전 시간을 부여 받으면서 함부르크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프리시즌 많은 골을 터트릴 수 있었던 것도 충분한 시간과 심리적 여유 때문이었다. 손흥민은 시간과 여유를 되찾았다. 앞으로 더 많은 골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 아우크스부르크 임대로 꾸준한 출전 기회를 잡은 구자철

구자철 역시 볼프스부르크 시절에는 존재감이 미미했다. 2010/2011시즌에는 총 10경기에 출전했지만 교체 투입이 9차례였다. 2011/2012시즌 전반기에는 12경기 중 5경기가 교체 투입이었다. 풀타임 경기를 소화한 것은 한 차례도 없었다. 마가트 감독은 구자철은 다양한 포지션에 기용하며 시험했고, 그 과정에서 한 번도 구자철의 역량을 최대화 시킬 수 있는 전술을 마련하지 않았다. 구자철은 자신의 기량을 100%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아우크스부르크 임대 이후에는 전폭적인 기회를 받았다. 요스 루후카이 감독은 구자철이 지닌 장점이 무엇인지 확실히 파악했고, 구자철이 가진 역량이 아우크스부르크 공격진에 부족한 2%를 채워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구자철은 2선의 모든 포지션에 기용됐지만 부여 받은 역할은 창조성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프리롤’이었다. 구자철은 "감독님이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하셨다"며 팀의 전술적 지시를 전했다.

구자철은 아우크스부르크 2선의 패스 플레이과 과감한 슈팅 시도로 롱볼 위주의 단조롭던 공격진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구자철은 호펜하임과의 데뷔전에서 교체 투입된 이후 매 경기 선발 선수로 투입됐고, 선발 선수로 꾸준히 기회를 잡가 경기 감각이 살아나고 경기 체력이 강화됐다. 그 결과 아우크스부르크 임대 이후에만 4골 1도움을 기록할 수 있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지 않고 아껴두면 썩는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엉뚱하게 조리하면 제 맛을 내지 못한다. 적재적소의 활용은 그래서 중요하다.

손흥민과 구자철은 마침내 독일 분데스리가 정복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2011/2012시즌은 3경기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2012/2013시즌 두 선수의 활약상은 더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23세 이하인 한국 축구의 두 대형 유망주는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할 가능성도 높다. 손흥민과 구자철이라는 새로운 기수의 등장으로 한국 축구팬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글.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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