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전주] 김성진 기자= 성대한 은퇴 경기를 한 김상식(37, 전북 현대) 자신의 마지막 골이 된 페널티킥에 대한 뒷 얘기를 털어놨다.
김상식은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의 K리그 클래식 40라운드를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그는 후반 41분 페널티킥을 차서 1-1 동점골을 넣었다.
김상식은 “생각도 못했다. 페널티킥을 나왔을 때 평소 욕심을 내던 이동국, 레오나르도가 페널티킥을 차라고 하더라. 긴장 많이 됐다. 그것 못 넣었으면 동국이한테 두고두고 술안주거리 됐을 것이다. 천만다행이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서울전에 풀타임을 뛰며 마지막 경기를 소화한 그는 “성남에서 프로 시작을 했다. 우승을 했고, 대표 선수로서 정말 키워주신 부모님 같은 팀이다. 전북은 내가 어려울 때 최강희 감독님이 받아주셨고 지금까지 올 수 있는 은인이다”며 프로 생활 15년 동안 뛴 두 팀에 감사를 표했다.
- 멋진 은퇴 경기를 했는데?
은퇴 경기를 했는데 팬들도 많이 와줬다. 내 나름대로 은퇴식에 대한 많은 준비를 했는데 다 못 보여준 것 같다. 고별사를 준비했는데 다 잊을 까봐 종이에 써 갖고 왔다. 보고 읽으려니 뭉클해서 도저히 못 읽겠더라.
- 페널티킥은 예정에 되어 있던 것인가?
아니다. 생각도 못했다. 페널티킥을 나왔을 때 평소 욕심을 내던 (이)동국이랑 레오나르도가 페널티킥을 차라고 하더라. 긴장 많이 됐다. 그것 못 넣었으면 동국이한테 두고두고 술안주거리 됐을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 파넨타킥으로 페널티킥을 찼다. 연습했던 것인가?
페널티킥이 나면 대부분 골키퍼가 뛰니까 그건 연습을 많이 했다. FA컵 결승 때도 연습했는데 못 보여줘서 아쉬웠다.
- 성남과 전북에서만 프로 생활을 했다. 어떤 기억이 남는가?
성남에서 프로 시작을 했다. 우승을 했고, 대표 선수로서 정말 키워주신 부모님 같은 팀이다. 전북은 내가 어려울 때 최강희 감독님이 받아주셨고 지금까지 올 수 있는 은인이다.
- 경기가 끝났을 때 든 생각은?
운동을 많이 안 해서 45분만 뛸 줄 알았다. 힘들어서 빨리 끝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감독님과 얘기했을 때와 가족과 전화를 하면 고생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까지 고생한 것이 지나가더라. 며칠 지나고 약간 무덤덤해졌는데 고생했다는 말을 들으면 울컥하게 된다.
- 선수 생활을 하면서 아쉬운 것은?
2002년 월드컵 멤버에 들지 못한 것. 그때는 몸이 좀 안 좋았고 그 당시에 일이 좀 꼬였다. 히딩크 감독님이 오셨을 때 한일전에서 퇴장 당했다. 안 풀리니까 다음 대회에 나가면 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렸을 때여서 그랬던 것 같다. 이렇게 잘 될 줄 알았으면 더 해서 끈을 꽉 잡고 2002 월드컵에 나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 최용수 감독이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얘기하던데?
요즘은 지도자가 옛날처럼 권위의식이 아니라 형님 리더십처럼 후배들과 소통을 하면서 애로사항을 만져줘야 존경 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부족하지만 많은 노력과 공부로 선수들이 필요한 걸 깨우쳐서 선수들이 따라주고 감독을 위해 뛸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때 준우승한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우승했다면 그렇지 않을 텐데 우승하지 않아서 기억에 남는다.
- 지도자 연수가 예정되어 있다. 다녀온 뒤 전북 코칭스태프로 합류하고 싶은가?
리옹 연수는 추진 중인데 아직 확실하지 않다. 프랑스 갔다 온 뒤 공부 열심히 하고 최강희 감독님 밑에서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하나하나 배워 나가겠다.
- 이동국과 절친이다. 이동국도 몇 년 뒤면 은퇴를 할텐데 조언은?
동국이도 많이 아쉬워한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하니 은퇴시기도 그렇고 생각처럼 돼서 만족한다. 동국이와는 2003년에 군생활을 하면서 친해졌는데 어려울 때도 많고 즐거울 때도 많았다.
- 김기동의 필드 플레이어 최다 출전인 501경기를 깨고 싶어 했는데?
기록보다는 내가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것을 했다. 선배들을 보면서 나이 든 뒤 구단과 감독님에 게 밀려 쓸쓸히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러면 안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작년, 올해 최선을 다했다.
- 권경원, 박세직 같이 후배들에게 롱런의 비결 조언한다면?
사람마다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다. 나는 스트레스를 안 받았다. 징크스도 만들지 않았다. 징크스를 만들면 그것을 하게 된다. 징크스는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예전에 대표팀에서 김신욱이 시합 전날에 복도에서 막 뛰더라. 왜 뛰냐고 물어보니까 시합 전날에 20~30분씩 뛰어야 몸이 좋다고 답했다. 그래서 내가 15년, 20년 더 축구 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해도 잘 하니 그런 것에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했다. 경원이나 세직이가 나보다 실력도 좋은 선수니 자신에게 주어진 최선을 다하면 나 이상으로 잘 할 수 있다.
사진제공=전북 현대
김상식은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의 K리그 클래식 40라운드를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그는 후반 41분 페널티킥을 차서 1-1 동점골을 넣었다.
김상식은 “생각도 못했다. 페널티킥을 나왔을 때 평소 욕심을 내던 이동국, 레오나르도가 페널티킥을 차라고 하더라. 긴장 많이 됐다. 그것 못 넣었으면 동국이한테 두고두고 술안주거리 됐을 것이다. 천만다행이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서울전에 풀타임을 뛰며 마지막 경기를 소화한 그는 “성남에서 프로 시작을 했다. 우승을 했고, 대표 선수로서 정말 키워주신 부모님 같은 팀이다. 전북은 내가 어려울 때 최강희 감독님이 받아주셨고 지금까지 올 수 있는 은인이다”며 프로 생활 15년 동안 뛴 두 팀에 감사를 표했다.
- 멋진 은퇴 경기를 했는데?
은퇴 경기를 했는데 팬들도 많이 와줬다. 내 나름대로 은퇴식에 대한 많은 준비를 했는데 다 못 보여준 것 같다. 고별사를 준비했는데 다 잊을 까봐 종이에 써 갖고 왔다. 보고 읽으려니 뭉클해서 도저히 못 읽겠더라.
- 페널티킥은 예정에 되어 있던 것인가?
아니다. 생각도 못했다. 페널티킥을 나왔을 때 평소 욕심을 내던 (이)동국이랑 레오나르도가 페널티킥을 차라고 하더라. 긴장 많이 됐다. 그것 못 넣었으면 동국이한테 두고두고 술안주거리 됐을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 파넨타킥으로 페널티킥을 찼다. 연습했던 것인가?
페널티킥이 나면 대부분 골키퍼가 뛰니까 그건 연습을 많이 했다. FA컵 결승 때도 연습했는데 못 보여줘서 아쉬웠다.
- 성남과 전북에서만 프로 생활을 했다. 어떤 기억이 남는가?
성남에서 프로 시작을 했다. 우승을 했고, 대표 선수로서 정말 키워주신 부모님 같은 팀이다. 전북은 내가 어려울 때 최강희 감독님이 받아주셨고 지금까지 올 수 있는 은인이다.
- 경기가 끝났을 때 든 생각은?
운동을 많이 안 해서 45분만 뛸 줄 알았다. 힘들어서 빨리 끝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감독님과 얘기했을 때와 가족과 전화를 하면 고생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까지 고생한 것이 지나가더라. 며칠 지나고 약간 무덤덤해졌는데 고생했다는 말을 들으면 울컥하게 된다.
- 선수 생활을 하면서 아쉬운 것은?
2002년 월드컵 멤버에 들지 못한 것. 그때는 몸이 좀 안 좋았고 그 당시에 일이 좀 꼬였다. 히딩크 감독님이 오셨을 때 한일전에서 퇴장 당했다. 안 풀리니까 다음 대회에 나가면 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렸을 때여서 그랬던 것 같다. 이렇게 잘 될 줄 알았으면 더 해서 끈을 꽉 잡고 2002 월드컵에 나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 최용수 감독이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얘기하던데?
요즘은 지도자가 옛날처럼 권위의식이 아니라 형님 리더십처럼 후배들과 소통을 하면서 애로사항을 만져줘야 존경 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부족하지만 많은 노력과 공부로 선수들이 필요한 걸 깨우쳐서 선수들이 따라주고 감독을 위해 뛸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때 준우승한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우승했다면 그렇지 않을 텐데 우승하지 않아서 기억에 남는다.
- 지도자 연수가 예정되어 있다. 다녀온 뒤 전북 코칭스태프로 합류하고 싶은가?
리옹 연수는 추진 중인데 아직 확실하지 않다. 프랑스 갔다 온 뒤 공부 열심히 하고 최강희 감독님 밑에서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하나하나 배워 나가겠다.
- 이동국과 절친이다. 이동국도 몇 년 뒤면 은퇴를 할텐데 조언은?
동국이도 많이 아쉬워한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하니 은퇴시기도 그렇고 생각처럼 돼서 만족한다. 동국이와는 2003년에 군생활을 하면서 친해졌는데 어려울 때도 많고 즐거울 때도 많았다.
- 김기동의 필드 플레이어 최다 출전인 501경기를 깨고 싶어 했는데?
기록보다는 내가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것을 했다. 선배들을 보면서 나이 든 뒤 구단과 감독님에 게 밀려 쓸쓸히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러면 안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작년, 올해 최선을 다했다.
- 권경원, 박세직 같이 후배들에게 롱런의 비결 조언한다면?
사람마다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다. 나는 스트레스를 안 받았다. 징크스도 만들지 않았다. 징크스를 만들면 그것을 하게 된다. 징크스는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예전에 대표팀에서 김신욱이 시합 전날에 복도에서 막 뛰더라. 왜 뛰냐고 물어보니까 시합 전날에 20~30분씩 뛰어야 몸이 좋다고 답했다. 그래서 내가 15년, 20년 더 축구 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해도 잘 하니 그런 것에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했다. 경원이나 세직이가 나보다 실력도 좋은 선수니 자신에게 주어진 최선을 다하면 나 이상으로 잘 할 수 있다.
사진제공=전북 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