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내야수 김태연(27)은 지난 1월 호주 멜버른 스프링캠프를 떠나면서 3가지 종류의 글러브를 챙겨갔다. 주 포지션인 내야는 물론 외야, 1루 글러브도 같이 챙겼다. 고정된 포지션이 없는 상황에서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당시 김태연은 “여러 포지션을 다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팀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감독님께서 내 이름을 부담 없이 쓸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고 굳은 각오를 보였다.
5월 중순을 지나가는 지금, 김태연은 시즌 전 다짐을 현실로 만들었다. 올 시즌 1루수로 17경기(10선발) 105⅓이닝, 2루수로 6경기(4선발) 30⅔이닝, 우익수로 6경기(5선발) 38이닝을 커버하며 내외야 3개 포지션을 넘나들고 있다.
확실한 포지션이 없는 상황에서도 타격감을 꾸준히 유지 중이다. 33경기 타율 3할3푼7리(83타수 28안타) 3홈런 17타점 13득점 13볼넷 11삼진 출루율 .439 장타율 .518 OPS .957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특히 득점권에서 타율 5할2푼9리(17타수 9안타) 2홈런 15타점으로 놀라운 결정력을 과시하고 있다.
90타석 이상 소화한 타자 89명 중 OPS 7위로 리그에서 손꼽힐 만한 타격 생산력이다. 한화 팀 내에선 이 부문 전체 1위 요나단 페라자(1.025) 다음에 이어 2위. 페라자를 제외한 한화 국내 선수 중 김태연이 최고 타자다.
이렇게 잘 치는데도 붙박이 주전이 아니었다. 원래 포지션이었던 3루에는 노시환이 있고, 2루에는 문현빈이 있어 1루로 가장 많이 나서고 있다. 다만 1루도 채은성과 안치홍이 지명타자 자리와 함께 번갈아 맡다 보니 김태연의 출장 기회가 제한됐다. 우익수로 뛰거나 벤치에서 대타로 대기해야 했다.
채은성이 허리 염좌로 이탈한 뒤 김태연이 붙박이 1루수로 자리잡았다. 지난 10일 대전 키움전부터 최근 9경기 중 8경기를 선발 1루수로 나서며 타율 3할9푼(41타수 16안타) 2홈런 9타점 OPS 1.042로 맹타를 치며 페라자와 함께 타선을 이끌고 있다.
최근 8경기 연속 안타로 19일 대구 삼성전에선 홈런 포함 6타수 4안타 2타점으로 대폭발했다. 이 기간 1번 타순에서 타율 4할4푼(25타수 11안타) 2홈런 7타점 OPS 1.180으로 맹활약하며 한화의 고민이었던 리드오프 문제까지 해소하고 있다.
허리 염좌를 털고 지난 주말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린 채은성이 1군에 복귀하지만 이제는 김태연을 선발로 안 쓸 수 없는 상황에 왔다. 팀 내 최고 수준의 타자를 벤치에 썩힐 정도로 한화 타선이 좋은 것도 아니다.
포지션 교통 정리에 대한 고민이 있긴 하다. FA로 거액을 들여 영입한 채은성과 안치홍도 어떻게든 써야 하는 선수인데 1루수, 지명타자를 나눠 맡고 있다. 둘 다 동시에 기용하면 김태연이 설 수 있는 곳은 우익수밖에 없다. 이 경우 우익수 페라자가 좌익수로 옮겨 동시 기용이 가능하지만 코너 쪽에서 수비 약화를 감수해야 한다.
수비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지만 김태연의 방망이는 외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왔다. 들쑥날쑥하고 제한된 출장 기회에도 경쟁력을 유지했고, 스스로 자리를 만들며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투수 상대 타율(.190→.288)을 전년 대비 1할 가까이 끌어올려 좌우 투수를 안 가리는 타자로 거듭났다.
지난겨울 결혼한 김태연은 신혼여행도 미루고 팀 선배 최재훈과 짝을 이뤄 대전에서 개인 운동에 집중했다. 그때 그는 “신혼여행은 나중에 가기로 했다. 지금은 운동에 집중해야 할 때이고, 와이프도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시즌 초반부터 에버리지가 나올 수 있게 연구하고 준비하겠다”며 독하게 마음먹었다. 앞서 2년간 슬로 스타터엿지만 올해는 개막부터 꾸준히 감을 유지하면서 빛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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