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부산, 조형래 기자] 극적으로 생존에 성공한 프로야구 LG 트윈스 디트릭 엔스는 이제 팀의 위력적인 1선발로 자리매김하면서 새롭게 합류할 외국인 투수 엘리에이저 에르난데스를 이끌어야 할 중책을 맡았다.
엔스는 2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92구 4피안타 1볼넷 1사구 7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투를 선보이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비록 팀이 8회 동점을 허용했지만 9회 김현수의 결승타로 2-1로 승리, 팀은 6연승을 달렸다. 엔스의 호투로 LG는 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엔스는 다시 한 번 롯데전 강세를 보여줬다. 이날 경기 전까지 3경기 등판해 모두 승리를 챙겼고 평균자책점 2.45(18⅓이닝 5자책점)으로 초강세를 보여주고 있었고 이날 역시 위기를 극복하고 6이닝을 책임졌다. 시즌 평균자책점을 3.93까지 끌어내렸다.
이날 엔스는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펼쳤고 위기에서도 스스로 상황을 극복해냈다. 엔스가 직접 손으로 일궈낸 승리였다. 3회 선두타자 손성빈에게 3루타를 허용했지만 박승욱과 윤동희를 연속 삼진으로 솎아냈고 전준우까지 3루수 땅볼로 처리하면서 실점 위기를 극복했다.
5회에도 선두타자 나승엽에게 좌전안타를 허용했지만 고승민을 우익수 뜬공, 손성빈을 투수 병살타로 돌려세워 위기를 넘겼다.
6회가 최대 고비였다. 1사 후 윤동희에게 좌중간 2루타를 맞았고 전준우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1사 1,2루의 위기에 몰렸지만 손호영을 1루수 파울플라이로 처리하면서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레이예스에게 2루수 내야안타까지 맞으면서 2사 만루 위기가 찾아왔다. 엔스는 2사 만루에서 맞이한 정훈을 상대로 혼신의 힘을 쏟아내며 151km 강속구로 헛스윙 삼진을 솎아냈다.
이날 엔스는 최고 152km의 포심 34개, 커터 31개, 체인지업 20개, 커브 7개를 구사하면서 롯데 타선을 확실하게 제압했다. LG는 외국인 선수 교체를 놓고 시즌 중반부터 고심했다. 2년 연속 대권을 위해 확실하게 압도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1선발감으로 영입했던 엔스는 불안했고 ‘6년 장수 외인’ 케이시 켈리도 구위 저하로 한 번 위기의 기로에 놓였던 상황. 결국 LG는 고심 끝에 엔스를 잔류시키고 켈리를 퇴출하는 결정을 내렸다. 엔스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고 또 구위를 갖춘 좌완이라는 이점이 있었다. 엔스와 켈리는 본의 아니게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LG로서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서 결정을 내렸다. 켈리는 올 시즌 19경기 5승8패 평균자책점 4.51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지난달 25일 잠실 삼성전에서 8이닝 퍼펙트를 기록했다가 9이닝 1피안타 완봉승까지 거뒀다.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 듯 했지만 대권을 위해, 그리고 선두 KIA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켈리보다 더 강력한 투수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통산 163경기 73승46패 평균자책점 3.25의 성적을 남기고 LG 생활을 마무리 했다.지난 20일 잠실 두산전 우천 노게임이 됐지만 마지막 등판을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노게임 결정이 내려진 이후 뜨거운 눈물을 흘린 고별 행사가 이뤄졌다. 엔스도 이 장면을 지켜봤다. 엔스가 한국에서 확실하게 자리잡고 적응에 도움을 준 켈리의 위대함과 존재감을 재차 확인했다.
엔스의 이날 등판은 신분이 안정된 상황에서 가진 첫 번째 등판이었다. 엔스는 자신의 적응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켈리를 가슴에 품고 마운드에 올랐다.
엔스는 “켈리는 좋은 팀 동료였다. 그리고 나의 롤 모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보고 싶을 것이다. 많이 슬프기도 할 것 같다”라면서 “하지만 오늘처럼 앞으로도 쭉 잘 던지면서 잘 경뎌야 할 것 같다. 잘 견디면서 던지는 게 모두 도움이 될 것이고 그게 켈리를 위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고별 행사를 지켜보면서 엔스는 “켈리는 한국에서 커다른 족적을 남겼고 우승을 이끈 챔피언이었다. 많은 기록들을 세웠다. 꾸준함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켈리가 여러 족적을 쌓아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고 켈리의 공헌에 구단이 감사함을 표시한 점도 멋지다고 생각한다”라며 “켈리는 레전드이고 또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거창하게 미래의 목표를 세우기 보다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면 켈리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이제 엔스는 떠난 켈리의 빈자리를 채우고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투수진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일단 켈리 대신 합류하는 엘리에이저 에르난데스의 적응을 도와줘야 한다.
당장 에르난데스는 입국하지 못하고 있다. 한시가 급한데 미국에서 발이 묶였다. 지난 19일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항공사 발권시스템에 영향을 받았고 LG와 에르난데스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됐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머물고 있는 에르난데스가 한국행 직항 노선이 있는 조지아주 애틀랜타까지 와야 하는데 이 과정 자체가 지체되고 있기 때문. 차명석 단장과 함께 귀국하려던 계획은 어긋났고 에르난데스와 외국인 선수 담당자가 여전히 미국에 머물고 있다.
취업비자 발급 절차 등을 생각하면 한시가 급하다. 입국 시점이 늦어질수록 에르난데스가 적응해야 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염경엽 감독은 “에르난데스가 들어오면 연습경기나 잔류군 경기 일정을 잡아서 감각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래야 1군에서 던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LG는 급하다.
대신 현장에서 에르난데스의 적응 속도를 단축시킬 수 있다. 켈리가 엔스의 안정을 찾게 해준 것처럼 엔스가 에르난데스의 적응을 도와주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엔스는 “사실 팀 동료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오스틴과 에르난데스는 동료였다고 들었다. 시간이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좋은 선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라며 “하루 빨리 만나고 싶고 만남의 순간이 기대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에르난데스의 적응에 최고의 도우미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켈리가 저에게 해줬던 얘기를 그대로 전달을 해주고 싶다. 에르난데스도 한국에 와서 성공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니까 이 선수가 잘할 수 있게끔 응원하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기꺼이 대답해주겠다. 서로 도와가면서 시즌을 풀어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엔스가 에르난데스를 이끌어 갈 경우, 투수진의 케미가 최고조로 올라올 수 있을까. LG 투수진의 안정이 달려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