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우울했죠, 끝내기 맞아본 것도 처음이고…”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2년 차 파이어볼러 유망주 김서현(20)은 지난 11일 고척 키움전에서 4-4 동점으로 맞선 연장 11회말 구원등판했다. 1사 후 임병욱에게 안타, 이주형에게 볼넷을 내주며 1,2루 위기에 몰린 김서현은 로니 도슨에게 우중간 빠지는 끝내기 2루타를 허용했다. 3구째 한가운데 직구를 맞았다.
데뷔 첫 패전을 안은 김서현은 마운드를 내려오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때 양상문 한화 투수코치가 김서현에게 다가가 “잘했다. 고개 숙이지 마라”면서 따뜻하게 위로했다. 이튿날 김경문 한화 감독도 “볼볼볼 해서 볼넷을 주고 실점했다면 실망이겠지만 자기 공을 던져서 안타 맞은 건 뭐라 하면 안 된다. 난 칭찬하고 싶다. 잘 던졌다”며 오히려 박수를 보냈다.
김 감독은 지난달 초 한화에 부임한 뒤 김서현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김서현은 2군에 있었지만 퓨처스 팀의 경기가 없는 날 대전으로 불러 따로 식사 시간도 가졌다. 프로에 와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방황하고 움츠러든 유망주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김 감독이 직접 소통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말 1군에 콜업한 뒤에도 김서현만 보면 항상 ‘나이스 피처’라고 부른다.
김 감독뿐만 아니라 후반기부터 한화에 합류한 양상문 투수코치도 김서현을 특별 케어하고 있다. 한화에 온 뒤 투수들에게 모두 손편지를 써서 전달한 양 코치는 김서현에게도 “넌 미래에 에이스가 될 선수다. 같이 하면서 에이스로 거듭나 보자”고 전했다.
잦은 투구폼 변경과 제구 난조로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었던 김서현은 김 감독과 양 코치를 만나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다. 끝내기 안타를 맞은 뒤 5경기에서 5⅔이닝 3피안타 1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 중이다. 지난 19일 대전 KIA전에선 트랙맨 기준 최고시속 160km(159.8km)까지 던질 만큼 스피드는 여전히 빠르다.
여기에 제구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지난 5일 인천에서 열린 퓨처스 올스타전 때부터 주자가 없을 때 왼 다리를 들었다 잠시 멈추는 이중 키킹으로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을 막으며 투구 밸런스를 잡았다. 김서현은 “이중 키킹을 한 뒤로 손에서 완전히 빠지는 공이 없어졌다. 올스타전 때 그렇게 던진 뒤 밸런스가 좋아져서 계속 가져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흔들리던 제구를 잡으면서 멘탈도 잡았다. 끝내기를 맞은 날이 역설적으로 좋은 계기가 됐다. “우울했다. 끝내기를 맞아본 것도 처음이고, 최대한 자신 있게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타자가 잘 쳤다”고 떠올린 김서현은 “그때부터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내게 도움이 된 시간이었다. 양상문 코치님이 고개 숙이지 말라면서 위로를 해주신 게 힘이 됐다. 감독님도 나이가 있으시지만 친근하게 다가와주셔서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관심을 보내주시는 만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뭔가 보여주려고 하면 밸런스가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거만 최대한 열심히 하는 게 보답드리는 길이 아닌가 싶다”고 이야기했다.
여유 있는 스코어에 주로 등판하던 김서현은 지난 24일 대전 삼성전에선 1-2로 뒤진 8회초 마운드에 올랐다. 지고 있어도 1점차 타이트한 상황. 선두타자 루벤 카데나스에게 중전 안타를 허용했지만 포수 최재훈의 2루 도루 저지로 수비 도움을 받은 뒤 강민호를 8구 승부 끝에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 잡았다. 이어 김영웅을 몸쪽 꽉 차는 직구로 유격수 내야 뜬공 유도하며 1이닝을 14개의 공으로 끝냈다. 트랙맨 기준 최고 시속 157km, 평균 156km 직구에 힘이 넘쳤다.
김경문 감독은 “투수 입장에서 지고 있어도 1점차라 편안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서현이가 1이닝을 잘 막아주면서 우리가 역전할 수 있는 찬스가 왔다. 이렇게 던지면서 점점 중요한 타이밍에 쓰게 될 것이다. 어린 선수일수록 자신감에 기복이 크다. 서현이가 자신감을 확실히 갖게 되면 더 좋은 공이 나올 것이다”고 기대했다.
김서현은 요즘 대전 홈구장 불펜에 새겨진 글귀를 보면서 등판 전 마음을 다잡는다. 후반기 시작에 맞춰 양 코치의 요청으로 한화 불펜에는 ‘내가 던지는 이 공 안에 최강 한화를 외치는 팬들이 있다’는 문구가 걸렸다. 김서현은 “마운드에 올라갈 때 정신이 없긴 한데 항상 그 문구를 보고 간다.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가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팬분들꼐서 환호를 해주신다. 그걸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고 이야기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