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잠실, 한용섭 기자] 마음에서 우러나온 존경의 의미였다. 진심이 하늘에 닿았을까. KBO 43년 역사에서 최초 기록을 세웠다.
프로야구 LG 트윈스 외국인 타자 오스틴이 동일 투수 상대로 '1이닝 2홈런' 기록을 세웠다. 역대 최초 기록이다. 그런데 공교롭게 절친한 외국인 선수가 대기록의 희생양이 됐다.
오스틴은 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NC와 경기에 3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했다. 이날 NC 선발 투수는 외국인 선수 요키시였다. 201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키움에서 뛴 요키시는 지난해 6월 부상으로 방출됐다. 지난달 31일 NC와 10만 달러에 계약하고 교체 외인으로 한국 무대로 돌아왔다.
오스틴은 0-3으로 뒤진 1회말 1사 1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신민재에게 볼넷을 허용한 요키시가 마운드에서 준비를 하자, 오스틴은 잠시 타석에서 벗어나더니, 요키시를 향해 헬멧을 벗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 오스틴은 지난해 요키시를 상대해 봤고 서로 알고 있는 사이다.
복귀 환영 인사를 한 오스틴은 1볼에서 2구째 체인지업(132km)을 끌어당겨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타구 속도 173.6km의 강력한 타구를 날렸다.
오스틴의 홈런을 시작으로 LG 타자들은 6연속 안타를 때려내며 요키시를 난타했다. 5-3으로 역전시켰고, 타순이 한 바퀴 돌아 2사 만루가 됐다. 신민재의 우중간 3타점 3루타로 8-3으로 점수 차는 벌어졌다. 오스틴 타석이 다시 돌아왔다.
오스틴은 1볼-1스트라이크에서 요키시의 3구 투심(140.8km)을 밀어쳐서 이번에는 우중간 담장을 넘겨버렸다. 또 투런 홈런이었다. 오스틴의 개인 첫 연타석 홈런. 그리고 동일한 투수에게 '1이닝 2홈런'은 KBO 최초 기록이다.
경기 후 오스틴은 ‘같은 투수에게 한 이닝 홈런 2개를 친 타자는 KBO에서 최초 기록’이라는 말을 듣고서 깜짝 놀랐다. 그는 “처음이라고 하니까 계속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 좋겠는데, 또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그 기록을 깨는 사람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첫 타석에서 헬멧을 벗고 인사한 건 환영의 의미였냐고 묻자, 오스틴은 “환영 인사도 있었지만 존경을 표하는 의미가 좀 더 컸다. 요키시 선수는 나보다 한국에 먼저 온 선배이기도 하고, 지난 5년간 활약을 보면 충분히 그 정도 경의를 표할 만한 선수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선수들과 경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 정도의 관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나도 그런 모습을 본받아서 나중에 존경이나 존중을 받고 싶다. 요키시, 켈리처럼 존중받을 만한 선수들을 많이 챙겼기 때문에 나도 그런 선수를 본받아서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4회 요키시와 3번째 승부에서도 홈런을 기록한 뻔했다. 높이 뜬 타구는 중견수가 한가운데 펜스 바로 앞에서 잡아냈다. 오스틴은 “넘기고 싶었지만 잠실구장이 워낙 커서, 뭐 안 되는 거는 안 되는 거다. 딱 거기까지였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스틴은 뜬공 아웃되고 나서 2루 근처에서 돌아오다가 요키시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요키시가 오스틴을 보고 웃으면서 ‘다행이다(thank god)’라고 말했고, 이미 홈런 2방을 친 오스틴은 ‘미안하다(I’m sorry)’라고 말해줬다.
오스틴은 “한국 야구에 외국인 선수는 적지 않은가. 다 같이 얘기도 자주 하고, 으샤으샤 하는 것도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요키시 선수가 힘냈으면 좋겠다. 또 경기 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요키시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까 조금 마음이 놓였다는 것을 느껴 좀 안도를 했다. 다 같이 힘내서 서로 응원하고 서로 잘 됐으면 하는 생각으로 경기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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