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경기당 평균 10.7득점. 프로야구 역대 5번째로 많은 득점이 쏟아지는 ‘타고투저’ 시즌에 투수들은 그아말로 죽을 맛이다. 투수력이 고갈되는 시즌 중후반 여름이 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다득점 경기가 쏟아진다. 투수들의 이닝당 출루 허용 수치인 WHIP도 역대급이다. 올해 리그 WHIP는 1.52로 2014년(1.559), 2016년(1.556)에 이어 3번째로 높다. ABS 도입, 수비 시프트 제한, 반발력 상승이 의심되는 공인구 등 여러 환경이 투수들을 가혹하게 몰아넣고 있다.
이런 타고투저 시즌에 독보적인 WHIP를 기록 중인 투수가 있다. 한화 이글스 마무리투수 주현상(32)이 그 주인공이다. 올해 48경기 6승2패17세이브2홀드 평균자책점 2.13 탈삼진 54개로 위력을 떨치고 있는 주현상은 58이닝 동안 안타 37개, 볼넷 6개를 허용해 WHIP가 0.78에 불과하다.
피안타율(.190)이 2할도 되지 않고, 9이닝당 볼넷 0.98개로 극강의 제구를 뽐내면서 0.78이라는 놀라운 WHIP 수치를 찍고 있다. 최소 10이닝 이상 던진 리그 전체 투수 200명 중 유일하게 0점대 WHIP. 주현상 다음 좋은 선수가 투수 3관왕에 도전하는 NC 카일 하트로 1.03이다. 올해 주현상보다 평균자책점이 낮은 마무리투수로는 LG 유영찬(2.02), 두산 김택연(1.93)이 있지만 WHIP는 각각 1.43, 1.19로 높다.
주현상의 WHIP는 올 시즌뿐만 아니라 역대로 봐도 대단한 수치다. 50이닝 이상 던진 투수 기준으로 주현상의 WHIP는 역대 단일 시즌 9위에 해당한다. 그 위로 1993년 해태 선동열(0.54), 1995년 해태 선동열(0.58), 2005년 삼성 오승환(0.67), 2011년 삼성 오승환(0.67), 2006년 삼성 오승환(0.69), 2009년 KIA 유동훈(0.74), 1996년 한화 구대성(0.76), 1989년 해태 선동열(0.78) 등 4명의 투수만이 있다.
한화 프랜차이즈 기준으로 따지면 1996년 구대성 다음으로 좋은 기록이다. 1996년 구대성은 55경기(139이닝) 18승3패24세이브 평균자책점 1.88 탈삼진 183개로 리그를 지배하며 MVP를 차지했다. 마무리이지만 규정이닝을 채운 ‘중무리’로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남겼다. 그 시절 시속 150km 강속구를 뿌리던 좌완 강속구 투수 구대성 같은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아니지만 올해 주현상의 안정감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출루 허용을 최소화하며 이기는 경기를 깔끔하게 책임져주고 있다. 승계주자 실점율도 4.5%(1/22)로 거의 완벽에 가깝다.
지난 9일 대전 키움전에서도 6-5로 앞선 8회초 2사 1루에 구원등판, 9회까지 탈삼진 1개 포함 4아웃 세이브를 퍼펙트로 거두며 한화의 7-5 승리를 지켰다. 트랙맨 기준 최고 시속 148km, 평균 147km 힘 있는 직구(15개) 중심으로 슬라이더(8개), 체인지업(5개), 커브(1개)를 구사했다.
경기 후 주현상은 “세이브할 때마다 팀이 이기는 것이니 기분 좋다. 요즘 팀이 계속 이기면서 세이브 기회를 많이 받고 있다”며 “나뿐만 아니라 우리 불펜투수 모두 누가 나가더라도 다 막아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서로 믿음을 갖고 던지다 보니 다들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큰 기복 없이 꾸준함을 유지하는 게 주현상의 최대 강점이다. 지난해에도 셋업맨으로 55경기(59⅔이닝) 평균자책점 1점대(1.96)를 찍었는데 그 안정감이 마무리 자리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스스로도 “내가 이 정도로 할 거라곤 생각 못했다. 결과가 나오니 자신감도 생기고, 계속 잘되는 것 같다”며 신기해했다.
물론 완벽한 마무리는 없다. 올해 블론세이브도 3개가 있다. 하지만 그 충격이 다음 경기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마무리투수라면 블론을 안 할 순 없다. 블론을 했다고 해서 너무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또 던져야 하고, 시즌을 계속 치러야 하니 맞은 날은 빨리 잊고 새로 준비한다”고 말했다.
가족의 힘을 빼놓곤 설명이 되지 않는 대활약이다. 2022년 시즌 후 결혼한 주현상은 지난해 8월 태어난 딸이 오는 12일 첫돌을 맞이한다. 주현상은 “요즘 날이 많이 덥지만 체력 관리라고 할 게 없다. 집에서 아내가 해주는 맛있는 요리 먹고, 애기 보면서 힘을 많이 얻는다. 가족 생각하면서 하다 보니 야구가 잘된다”고 이야기했다.
어느덧 세이브 개수를 17개로 늘린 주현상은 첫 해부터 20세이브가 머지않았다. 그는 “마무리가 되고 난 뒤 처음 목표는 10세이브였다. 10세이브 다음은 20세이브를 목표로 가고 있다”며 “올해 3연투를 한 번도 안 했다. 감독님께서 투수들의 체력을 많이 안배해주신다. 그래서 다들 성적이 좋게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필요하실 때 3연투를 하라고 하면 언제든 준비가 돼 있다. 내일(10일)도 아마 감독님께선 쉬라고 하실 것 같은데 내 생일이라 마음 같아선 던지고 싶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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