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건달형으로 기억되길'' 故신해철의 10주기, 그를 추모하는 방법 [종합]
입력 : 2024.10.0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OSEN=김수형 기자] 고 신해철에 팬들의 곁을 떠난지 올해 10주년이 된 가운데, 후배들과 그의 발자취를 돌아본 시간을 가졌다. 

4일, MBC에서 '우리 형, 신해철' 특집 편이 방송됐다. 

이날 김동완은 "2013년? 2012년인 것 같은데"라며 신해철과 함께 다녔던 곳을찾았다. 김동완은 "대학가요제부터 팬이었던 형"이라 말했다. 김동완은 "영웅같은 선배"라 떠올렸다. 현진영에 이어 이루마 등 수많은 후배들도 그를 떠올리며 눈물 흘렸다. 

고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지 올해가 10년. 신해철은 지난 2014년 10월 17일 서울 S병원에서 위장관유착박리술 수술을 받은 후 고열과 가슴 복부 통증을 호소하다 심정지로 쓰러졌다 그러다 열흘 후인 27일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사망했다. 이에 고 신해철의 수술을 집도했던 K원장은 2016년 11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1심 선고에서 금고 10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유족 및 검찰 측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진행했고, 2심에서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후 대법원이 2심 판단에 손을 들어주면서, K원장은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최근 싸이는 자신의 콘서트에서 신해철의 추모곡을 부르기도 했다.자신의 공연마다 선배 신해철을 추모하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싸이도 직접 인터뷰 자리에 나섰다.  싸이는 "2002년 봄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다"며 신인가수 시절 강렬했던 기억을 회상했다. 싸이에게 특히 작곡, 편곡, 사운드 다루는 법까지 신해철이 가르쳐줬다고. 싸이는 "사운드를 정말 잘 잡았던 형, 열심히 가르쳐주셨다"며 "엄하게 혼내가며 가르쳐주셔, 덕분에 일반가수들보다 사운드를 잘 알게됐다"며 회상했다. 그러면서 신해철에 대해 "정이 정말 많았던 형"이라 말했다.

특히 신해철이 쓰러졌던 때를 떠올린 싸이는 "중환자실에 있을 때 인사하러 갔다"며 황망하게 떠난 때를 언급, "내 일생일대 충격인 사건,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렇게 지난 10년간 자신의 콘서트에서 신해철을 추모한 싸이였다. 그에게 신해철은 아낌없이 주고 간 가슴 따뜻한 형으로 기억했다. 

다음은 문희준이 출연, "꺼내기 쉽지 않은 얘기,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다"며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돌로 데뷔해 큰사랑을 받은 뒤 솔로활동을 시작할 때였다. 하지만 악플공세에 시달렸던 문희준은"어떻게 대처해야될지 몰랐을 때 (신해철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먼저 다가왔던 신해철을 떠올리며 "다른 사람 말 듣지 말고, 잘하고 있으니 계속 좋은 음악 했으면 좋겠다고 해, 다음 앨범이 기대된다고 해주셨다"며 고마웠던 마음을 꺼냈다. 문희준은 "정말 좋은 사람, 좋은 형이었다"고 그를 기억했다. 

3일 내내 장례식장만 맴돌았다는 현진영도 추모했다.각별한 형이었던 신해철에 대해 그는 "1집앨범 내고 사고를 쳐, 방송 못하고 쉴 때가 있었다"며 대마초 사건을 언급, 활동 중지됐던 때였다. 현진영은 "수입이 없어 힘든생활이 반복될 때, 작업실 나오는데 등 뒤로 손을 잡으시더니 5만원을 접어서 쥐어주셨다"며 "힘들때 더 옆에 있던 주던 사람"이라 말했다. 

한국 가요사에도 큰 울림을 준 신해철. 88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 신해철이 데뷔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대에게'란 곡으로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진 신해철. 음악평론가들은 "한국에서 록밴드 만들어진 음악 중 성공한 곡은 '그대에게'"라고 꼽으며 "락에 있어 중요한 인물의 탄생을 알린 곡"이라 했다. 발라드, 댄스가 왕왕했던 시기, 록이란 새로운 장르를 만든 그였다. 

그리고 신해철은 단숨에 오빠부대를 이끄는 하이틴 스타가 됐다.  밴드 형태의 음악을 시작한 신해철은 당시 인터뷰에서 "내가 하고싶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록밴드 '넥스트'로 다시 컴백한 그의 인기는 정점을 찍었다. 체조경기장을 꽉 채우다 못해 돌아간 팬들도 많을 정도였다는 당시 인기의 상황. 넥스트 베이스 담당이었던 동료 음악가는 "내가 그 무대에 있으면서도 낯설었다"며 실감했던 신해철의 인기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넥스트 녹음할 때, 편안하게 마음에 들 때까지 연주할 수 있게 해줬다"며 "녹음 제작비가 어마어마했을 텐데 자기 집처럼 렌트해서 녹음실을 썼다"고 했다. 

음악가 윤상도 "돈을 아껴야한단 개념이 없어, 음악 벌면서 돈 벌어야한다는 얘기를 안 할 수 있던 친구"라며 "그런 친구는 이제 없을 것 같다"꼬 말했다. 

하지만 제한적이었던 한국의 음악시장.1997년 신해철은 넥스트 해산을 공식 발표했다. 낵세트 해체 후 영국으로 유학을 간 신해철은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꿈꿨다.  98년도 였을 때를 떠올린 이루마는 "주변에 친구가 신해철 형이 런던에 있다고 해 만나러 갔다"며 인연을 전했다. 이루마는 "정말 진국인 형"이라 떠올렸다. 
영국 유학에서 음악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신해철. 테크노 뮤직이 유행하던 시기, 그는 모노크롬이란 장르를 개척했다. 

그의 거듭된 변신은 그 답을 찾아가는 끊임없는 도전이었다.  국가스텐 하현우는 "음악으로 이런 세계를 표현할 수 있구나, 대중음악에서 볼 수 없던 음악. 굉장히 많이 영감이 됐다"고 했다.음악 평론가도 "표절시비 곡이 한 번도 없어 그만큼 창의적으로 음악한 건 존경해야한다"고 말했다. 

그 시대 청춘들에게 용기가 됐던 신해철. 그 시절 외롭고 고단한 청춘들에게 위로를 준 모두의 형이었다. 
신해철 역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친구들  일으켜주는게 즐거워, (나는)동네 건달 형"이라 인터뷰하는 모습으으로 모두를 먹먹하게 했다. 

이 가운데 예고편에선 신해철 10주기 추모 특집 2부는 내일 10시에 방송예정이라 전했다. /ssu08185@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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