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있는 의심, 근거 없는 맹신 속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들 [김재동의 나무와 숲]
입력 : 2024.11.0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OSEN=김재동 객원기자] “지금 니가 이 모양인데 누가 의심 안하겠냐?”

1일 방송된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6회에서 최영민(김정진 분)이 밝힌 그 날의 내막은 장하빈(채원빈 분)의 가슴에 대못을 쳤다.

엄마 윤지수(오연수 분)가 이수현의 사체를 묻는 동영상, 최영민이 보여준 그 영상을 장하빈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그런데 아빠 장태수(한석규 분)마저 믿지 못할 소리를 한다.

“이수현, 네 엄마가 죽인 거 맞아. 그래서 최영민 풀어줬어. 그걸 덮고 싶어서!” 아빠는 그 말을 믿게 하고 싶었나보다. 엄마 죽던 날 만난 사실을 숨긴 것에 대해 승진심사를 앞두고 있어서 엄마 때문에 발목 잡히기 싫었다고 그럴싸하게 덧붙였다. 마치 비겁했던 속내도 털어놨으니 이만하면 믿으라는듯. 하지만 하빈은 안다. 엄마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죽은 송민아(한수아 분)의 아빠라면서 접근한 헬멧남(유오성 분)의 도움을 받아 은신처를 나서는 최영민을 낚아챘다. 허벅지에 칼을 박아 넣으며 고문했다.

“정말 우리 엄마가 이수현 죽였어?” 하빈이 듣고 싶은 대답이 나왔다. “아냐! 아니라고!” 그러면 그렇지. “그럼 누군데? 엄마가 시체를 왜 묻어?” 물을 수밖에 없는 질문였다. “너 때문에! 니가 이수현 죽인 줄 알고 묻은 거라고!” 아니, 묻지 말았어야 할 질문, 물어선 안됐던 질문이었다.

최영민이 말한 ‘지금 이 모양’? 대답을 듣자고 사람을 상대로 서슴없이 칼질하는 여고생? 그게 나라서 엄마는 내가 이수현을 죽였다고 믿었다고? 그 때문에 최영민에게 협박 당하고 결국은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니까 결론은 엄마를 죽인 게 나라고? 장하빈은 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아, 그 엄마조차 나를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랬었다. 엄마 윤지수조차 장하빈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윤지수의 마지막 날, 장태수가 집을 찾았을 때 온 집안을 가스 냄새가 점령하고 있었다. 하빈은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있었고. 술과 약에 취한 채 윤지수는 장태수에게 물었었다. “정말 당신이 맞았을까? 하준이... 정말 하빈이가 죽인 거면 어떡해?”

장태수가 울컥했다. “여태 그런 생각으로 애 키운 거야? 내가 실수라고 했잖아! 실수라고! 그렇게 죽고 싶으면 너 혼자 죽어. 더 이상 하빈이한테 너 필요없어!” 모진 말도 했지만 다독여도 주었었다. “너 죽으면 하빈이 괜찮을 것 같애? 너 없으면 하빈이 고아라고! 걔한테 난 남이야!”

그때 지수는 태수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오늘 일 하빈이한테..” 안심시켜 주었다. “절대로 얘기 안할게!” 도대체 어떻게 얘기한단 말인가. 네 엄마가 너의 살인을 의심해서, 동생까지 네가 죽인 걸로 생각해서 너랑 동반자살하려 했다고?

태수는 실수라고 했지만 이 가족은 그 실수가 심어둔 의심암귀에 삼켜져 버렸다.

그런가 하면 맹목에 눈 가려 파국으로 치닫는 가족도 있다.

최영민에게 장하빈을 데려다 준 헬멧남은 혼란에 빠진 장하빈의 뒤를 밟다 박준태(유의태 분)에게 만류당한다.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아무 것도 하지 마시라구요!” 아들은 혼란에 빠져 위태로와 보였다.

“정신차려! 너 아무 것도 안했다고! 부모는 알아. 내 새끼가 어떤 사람인지! 걱정하지 마, 나한테 계획이 있다고.” 내 아들이 살인자? 내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얼마나 선량한 아들인데 그 따위 허울을 뒤집어 쓰게 할쏘냐!

주요 사건 현장마다 등장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헬멧남 유오성의 정체가 박준태의 아버지로 밝혀지면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사건 얼개도 얼추 유추된다.

그의 장담대로, 또 연인 관계인 김성희(최유화 분)의 믿음대로 박준태는 좋은 사람, 좋은 선생였을 것이다. 이수현(송지현 분)이 가출했을 당시 몇 개월을 찾아다닐만큼. 그리고 찾아낸 이수현은 최영민의 가출팸에 속해 있었던 모양이다.

김성희와는 가출팸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집주인으로 만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 연인인 김성희를 설득해 그 집에 제자 이수현이 포함된 가출팸들을 안주시켰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이수현에게 분노했고 죽인 모양이다. 어쩌면 이수현이 좋은 선생 박준태를 연모했고 그 정도가 심해 함정에 빠트렸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 사실을 박준태의 아버지나 김성희로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던 상황. 그때 이수현을 정신없이 찾아 헤매는 장하빈이 눈에 들어오고 그런 딸에게 애면글면하는 윤지수가 눈에 들어왔다면?

한편 가출팸 무리 중 송민아란 아이도 박준태 아버지의 눈에 위태롭게 보였을 수 있다. 김성희 아들이 구대홍(노재원 분)에게 증언한 바에 따르면 송민아가 박준태에게 마음을 둔 정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미 이수현으로 인해 살인까지 저지른 아들이다. 송민아로 인해 또 어떤 위험이 도래할지 모른다. 그럴 때 한량없이 선하기만한 아들을 지키고 싶은 아비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경찰을 아버지로 둔 장하빈이 경찰의 눈을 가리고 사건을 호도하기에 꽤 유용해 보이지 않았을까?

최영민으로부터 딸 하빈이 모든 걸 알게 됐다는 전언을 듣고 장태수가 서둘러 달려간 폐건물. 최영민은 이미 죽어 있고 온통 피에 젖은 딸 하빈이 옆에 서있다. 어떻게 알았는 지 몰려든 경찰의 수색은 코 앞으로 닥쳐오고... 아마도 장하빈은 최영민에게 마저 확인할 것이 있어 돌아온 자리에서 죽은 최영민을 마주했을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어쨌거나 사건은 아들의 선량함을 맹목적으로 믿는 부정(父情)이, 실수로 딸을 의심한 부정(父情)을 농락하는 모양새로 급선회했다.

그처럼 역동적인 전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앞으로가 궁금하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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