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정지훈 기자= 처음은 특별하다. 두 번째는 희미한 추억 속으로 사라지더라도 첫 번째는 역사가 된다. ‘K리그 1호골’ 역사의 주인공 박윤기를 추억해봤다.
K리그 1호골의 주인공이자 초대 득점왕 박윤기. 그의 별명은 ‘황금 왼발’이었다. 조금은 촌스렁운 별명일수도 있지만 그 시절에는 황금 정도는 붙여줘야 별명으로 인정받았다. 또, 이만큼 공격수 박윤기를 잘 표현하는 단어는 없었다.
박윤기는 왼발 슈팅이 주 무기였고 제대로 맞기만 하면 어김없이 골망을 갈랐다. 그는 1979년부터 1982년까지 서울시청 축구단을 거쳐 1983년에 개막한 슈퍼리그(현 K리그)의 유공 코끼리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30주년을 맞이하는 K리그에 수많은 공격수들이 역사에 남는 골을 기록했지만 처음은 항상 특별하다. K리그 1호골과 초대 득점왕이라는 타이틀은 수백 년이 지나도 리그가 존재하는 한 기억될 것이다. 그 주인공이 박윤기다.
박윤기는 당시를 회상하며 “1983년 5월 8일이었다. 할렐루야와의 경기였는데 이강조의 패스를 받아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오른발 슈팅으로 골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왼발 슈팅이 주특기인 선수지만 K리그 1호골은 오른발 슈팅이었던 것이다. 이에 그는 “사실 왼발로 슈팅을 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오른발로 슈팅한 것이 들어갔다”며 웃으며 대답했다.
선수시절 박윤기는 좀 더 세련된 별명으로 ‘한국의 히벨리누’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만큼 왼발에 강점이 있었고 이 왼발로 첫 해에 9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 두 개의 기록만으로도 역사가 되겠지만 그는 리그 1000호골의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박윤기는 “1987년으로 기억한다. 당시 소속팀인 럭키 금성과 포철과의 경기였는데 이 한 경기를 통해 1000호골의 주인공을 결정하니 서로 골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원래는 호흡이 잘 맞던 선수들이었는데 그날따라 조민국, 박항서 등과 호흡이 맞지 않았다. 행운이 따랐다. 박항서의 슈팅이 수비수를 맞고 내 앞에 떨어졌고 왼발로 득점을 기록했다. 한 마디로 얻어걸렸다”며 쑥스럽게 말했다.
이후 박윤기는 일본에도 진출했었고 서울공고, 강릉상고, 천안FC 등의 감독을 거쳐 현재는 제주 국제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또, 왕년의 대표선수들과 함께 ‘황금발 봉사단’을 만들어 봉사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K리그 역사의 주인공 박윤기. 그의 역사는 K리그 살아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K리그 1호골의 주인공이자 초대 득점왕 박윤기. 그의 별명은 ‘황금 왼발’이었다. 조금은 촌스렁운 별명일수도 있지만 그 시절에는 황금 정도는 붙여줘야 별명으로 인정받았다. 또, 이만큼 공격수 박윤기를 잘 표현하는 단어는 없었다.
박윤기는 왼발 슈팅이 주 무기였고 제대로 맞기만 하면 어김없이 골망을 갈랐다. 그는 1979년부터 1982년까지 서울시청 축구단을 거쳐 1983년에 개막한 슈퍼리그(현 K리그)의 유공 코끼리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30주년을 맞이하는 K리그에 수많은 공격수들이 역사에 남는 골을 기록했지만 처음은 항상 특별하다. K리그 1호골과 초대 득점왕이라는 타이틀은 수백 년이 지나도 리그가 존재하는 한 기억될 것이다. 그 주인공이 박윤기다.
박윤기는 당시를 회상하며 “1983년 5월 8일이었다. 할렐루야와의 경기였는데 이강조의 패스를 받아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오른발 슈팅으로 골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왼발 슈팅이 주특기인 선수지만 K리그 1호골은 오른발 슈팅이었던 것이다. 이에 그는 “사실 왼발로 슈팅을 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오른발로 슈팅한 것이 들어갔다”며 웃으며 대답했다.
선수시절 박윤기는 좀 더 세련된 별명으로 ‘한국의 히벨리누’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만큼 왼발에 강점이 있었고 이 왼발로 첫 해에 9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 두 개의 기록만으로도 역사가 되겠지만 그는 리그 1000호골의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박윤기는 “1987년으로 기억한다. 당시 소속팀인 럭키 금성과 포철과의 경기였는데 이 한 경기를 통해 1000호골의 주인공을 결정하니 서로 골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원래는 호흡이 잘 맞던 선수들이었는데 그날따라 조민국, 박항서 등과 호흡이 맞지 않았다. 행운이 따랐다. 박항서의 슈팅이 수비수를 맞고 내 앞에 떨어졌고 왼발로 득점을 기록했다. 한 마디로 얻어걸렸다”며 쑥스럽게 말했다.
이후 박윤기는 일본에도 진출했었고 서울공고, 강릉상고, 천안FC 등의 감독을 거쳐 현재는 제주 국제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또, 왕년의 대표선수들과 함께 ‘황금발 봉사단’을 만들어 봉사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K리그 역사의 주인공 박윤기. 그의 역사는 K리그 살아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