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정성래 기자= 모두가 불가능한 도전이라 했다. 그러나 그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 감독이 외국인 선수 없이 K리그 클래식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황선홍 감독이 자신의 감독 경력에 K리그 클래식 우승을 추가했다. 지난 2008년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직에 앉은 황선홍 감독은 지난 2009년 피스컵 코리아서 준우승을 기록했고, 2010년에는 부산을 FA컵 결승전 무대까지 올려놨지만 정상 등극에 또 한번 실패했다.
부산서 감독직을 역임하며 경험을 쌓은 황선홍 감독은 포항 스틸러스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며 드디어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2012년 FA컵 우승과 함께 FA컵 최우수 감독상도 수상했고, 올 시즌 FA컵도 우승하며 FA컵 2연패에 성공했다.
그러나 황선홍 감독은 FA컵 우승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포항을 이끌며 선두를 달리던 울산을 끝까지 추격했고, 울산과의 경기에 앞서 내리5연승을 챙기며 울산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울산과의 승점 차는 단 2점. 포항은 결승전이나 다름 없는 울산과의 경기서 결국 승리를 거두며 극적인 K리그 클래식 우승을 확정 지었다.
포항의 우승은 외국인 선수 없이 이뤄낸 우승으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포항의 모기업 포스코가 철강 산업 경기 악화로 인해 지원을 줄였고, 이 때문에 포항은 외국인 선수를 단 한 명도 영입할 수 없었다. 때문에 포항은 순수 국내 선수로만 선수단을 꾸릴 수밖에 없었고, 황선홍 감독은 쇄국 정책을 펼친 흥선대원군에 빗댄 ‘황선대원군’이라는 웃지 못할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황선홍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선수들에게 짧은 패스 위주의 아기자기한 축구를 이식시켰고, ‘스틸타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돌풍을 만들어내며 포항의 극적인 우승을 이끌었다.
아쉬운 지원 속에서 이뤄낸 우승이기에, 포항의 우승은 더욱 값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황선대원군’ 황선홍 감독이 있었다.

그래픽= 기획취재팀 김재원 기자
황선홍 감독이 자신의 감독 경력에 K리그 클래식 우승을 추가했다. 지난 2008년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직에 앉은 황선홍 감독은 지난 2009년 피스컵 코리아서 준우승을 기록했고, 2010년에는 부산을 FA컵 결승전 무대까지 올려놨지만 정상 등극에 또 한번 실패했다.
부산서 감독직을 역임하며 경험을 쌓은 황선홍 감독은 포항 스틸러스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며 드디어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2012년 FA컵 우승과 함께 FA컵 최우수 감독상도 수상했고, 올 시즌 FA컵도 우승하며 FA컵 2연패에 성공했다.
그러나 황선홍 감독은 FA컵 우승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포항을 이끌며 선두를 달리던 울산을 끝까지 추격했고, 울산과의 경기에 앞서 내리5연승을 챙기며 울산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울산과의 승점 차는 단 2점. 포항은 결승전이나 다름 없는 울산과의 경기서 결국 승리를 거두며 극적인 K리그 클래식 우승을 확정 지었다.
포항의 우승은 외국인 선수 없이 이뤄낸 우승으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포항의 모기업 포스코가 철강 산업 경기 악화로 인해 지원을 줄였고, 이 때문에 포항은 외국인 선수를 단 한 명도 영입할 수 없었다. 때문에 포항은 순수 국내 선수로만 선수단을 꾸릴 수밖에 없었고, 황선홍 감독은 쇄국 정책을 펼친 흥선대원군에 빗댄 ‘황선대원군’이라는 웃지 못할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황선홍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선수들에게 짧은 패스 위주의 아기자기한 축구를 이식시켰고, ‘스틸타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돌풍을 만들어내며 포항의 극적인 우승을 이끌었다.
아쉬운 지원 속에서 이뤄낸 우승이기에, 포항의 우승은 더욱 값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황선대원군’ 황선홍 감독이 있었다.

그래픽= 기획취재팀 김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