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의 눈물 ''선수 아닌 일반인으로...전설로 기억되길''(일문일답)
입력 : 2019.05.1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중구] 서재원 기자= '빙속 여제' 이상화(30)가 공식 은퇴식을 열고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상화는 16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공식 은퇴식 및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공식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던 이상화는 이날 기자회견을 끝으로 14년 선수 생활을 마친 소감을 밝혔다.

이상화는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단거리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다. 체격 조건이 좋은 서양 선수들 틈에서 아시안 선수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2010 밴쿠버 올림픽 여자 5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차지했고 4년 후 2014 소치 올림픽에서도 우승하며 2연패를 차지했다. 2013년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에서 세운 36초 36의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18 평창 올림픽에서 고다이라 나오(일본)에게 정상의 자리를 빼앗겼다. 고질적인 왼쪽 무릎 부상과 오른쪽 종아리 부상으로 시름하던 이상화는 은퇴 시기를 놓고 고민의 시간을 가졌고 평창 올림픽이 끝난 뒤 1년 여 만에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이상화는 "바쁘신 와중에 많은 관계자분들이 찾아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스케이트 선수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함이다.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며칠 동안 고민했다"라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상화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흐르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어렵게 입을 연 이상화는 "15살 때 국가대표가 처음 된 날이 기억난다. 토리노 올림픽 때 막내로 참가해, 빙판 위에서 넘어지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었던 게 엊그제 같다. 그런데 벌써 17년이 흘렀다. 선수로서, 여자로서 꽤 나이가 많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선수권 우승, 올림픽 금메달, 세계신기록 보유 등 세 가지의 목표를 세우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분에 넘치는 국민 여러분들의 응원과 성원 덕분에 17년 전에 세웠던 목표는 다 이룰 수 있었다. 목표를 다 이룬 후에도 국가대표로서 국민 여러분께 받은 사랑을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음 대회를 준비했다. 하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무릎이 문제였다. 이런 몸 상태로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드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로 해결하려 했지만, 수술 이후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약물 치료로 재활을 계속했지만 몸은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스케이트 경기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하는 제 자신에게 실망했다. 그래서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라고 은퇴를 결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빙속여제 이상화는 이제 일반인의 삶을 살게 된다. 그는 "국민 여러분들이 더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줄 수 있는 위치에서 선수 생활 마감하고 싶었다. 항상 빙상여제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최고의 순간만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스케이트 선수로서 생활은 마감하지만, 앞으로도 국민 여러분께 받았던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하겠다. 이순간이 지나고 당장 내일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되지만 여태껏 해온 것처럼 다른 일도 열심히 해보려 한다. 행복했다. 사랑과 응원 평생 잊지 않고 가슴 속 새기며 살겠다"라고 말을 이었다.



▲ 이하 일문일답

- 최종적으로 은퇴 결심을 한 때는?

사실 3월 말쯤 은퇴식이 잡혀있었다. 막상 은퇴를 하고 은퇴식을 치르려 하다 보니 온몸에 와 닿았다. 아쉽고 미련이 남아 더 해보자하는 마음으로 재활을 병행했다. 하지만 예전의 몸 상태로 돌리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판단이 섰고 지금 위치에서 마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목표만을 위해 달려왔다. 여유롭게 살면서 그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다. 다 내려놓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소치 올림픽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선수들은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 올림픽 메달을 못 따는 징크스가 있었다. 하지만 징크스를 이겨냈고 2연패를 성공했다. 개인적으로도 깔끔한 레이스였다고 생각한다.

- 올림픽에서 딴 3개의 메달에 각각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밴쿠버 올림픽 메달은 첫 메달이었다. 3위 안에만 들자는 목표로 대회에 출전했는데, 예상 외로 깜짝 금메달을 땄다. 소치 올림픽은 이전에 말씀드렸듯이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좋은 성적으로 2연패를 했다는 자체로 스스로에게 엄청난 칭찬을 해주고 싶다. 평창 올림픽 때도 3연패라는 타이틀로 이겨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부상이 4년 전 보다 커져가고 있었고 우리나라여서 더 긴장됐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평창 올림픽 은메달도 색이 굉장히 예뻤다. 저에게 다 좋은 메달이었다.

- 평창 올림픽 때 나오가 베이징에서 보자고 말했다.

저번주 금요일에 저의 은퇴 기사가 나갔다. 나오가 깜짝 놀라면서 '농담 아니냐'고 물었다. 잘못된 뉴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도 상황을 보자고 했는데,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를 알리게 됐다.

- 부모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해주셨나.

사실 부모님은 제가 계속 운동을 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 속상해 하실까봐 지난주까지 말씀을 안 드렸다. 은퇴를 한다는 소식에 많이 서운해 하신다. 차차 마음을 달래 드려야 할 것 같다.

- 제2의 이상화를 꿈꾸는 후배 선수들이 많다. 향후 빙상 쪽에서 일을 할 계획은 없는가.

은퇴를 고민했던 게, 올해부터였다. 평창 올림픽만 보고 달려왔기에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제가 은퇴를 하면서, 스피드 스케이팅이 비인기종목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아쉽다. 저도 후배들을 위해 헌신할 의향은 있다. 하지만 생각을 정리한 후에 결정할 문제다.

- 무엇이 가장 아쉬운 것 같나.

겨울에 성적을 내기 위해, 여름에 훈련을 열심히 해야 한다. 쇠 끝나고 캐나다에서 3년 열심히 했다. 겨울에는 성적을 내면 그만인데, 여름엔 훈련 과정이 힘들지만 재미있다. 이렇게 더운 날씨를 보면 그동안 해왔던 운동이 생각난다.

- 밴쿠버 3총사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태범이는 다른 종목을 하고 있다. 가끔 이야기를 나누는데, 같이 운동할 때가 재밌었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종목을 하고 있지만 힘들다고 하더라. 저는 은퇴하지만 친구들은 현역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평창 올림픽 후 '레전드'라는 이름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스피드 스케이팅에 이런 선수가 있었고 정말 노력을 많이 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항상 열심히 노력했고 안 되는 걸 되게 한 선수로 기억되길 바란다.

- 나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오 선수랑 인연이 많다. 우정이 깊은 것 같다. 그런데 나오는 아직 현역이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조만가 나가노에 찾아갈 계획이다.

- 만약 베이징에 갔다면 어땠을 것 같나.

베이징 올림픽을 간다면, 그때도 부담감 때문에 떨 것 같다. 항상 1등만 해왔는데, 2등을 했다는 부담이 컸을 것 같다. 준비 과정도 어려울 것 같다. 이제는 해설위원이나 코치로 갈 수 있다. 둘 중 하나로 참가하고 싶다.

- 나오 외에 기억나는 라이벌이 있다면.

2015/16 시즌에 중국 선수가 강자로 떠올랐다. 한중전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그 친구와 번갈아가면서 1~2등을 다퉜다. 마지막인 세계 선수권에서 제가 이겼다. 한중전과 이번 한일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 주변 은사님들을 찾아뵐 계획인가.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도와주신 코치 선생님들, 대표팀 되고 금메달을 따게 해준 분들이 굉장히 많다. 마지막을 소치부터 평창까지 함께한 케빈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된다면 캐나다로 가서 찾아뵙고 싶다. 한국에 있는 많은 코치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전달할 계획이다.

- 기록은 언제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나.

욕심이지만, 영원히 안 깨졌으면 좋겠다. 물론 기록은 언젠가 깨질 것이다. 선수들의 기량도 많이 올라왔다. 그래도 1년은 더 유지가 됐으면 좋겠다.

- 선수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

마인드 컨트롤이 힘들었다. 많이 힘들었고 부담이 컸다. 1등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식단 조절도 해야 했고, 남들이 하나할 때 전 두 개를 해야했다. 모든 걸 자제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스스로 해야 했던 게 힘들었다.

- 포스트 이상화로 지목해주고 싶은 선수나 눈여겨 본 선수는.

저는 김민선 선수를 추천해주고 싶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력이 좋다. 저의 어렸을 때 모습과 흡사하다. 이번 평창 때도 같이 했는데, 저보다 12살 어린 선수가 언니에게 떨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신체 조건도 좋다. 500m뿐 아니라 1000m도 연습해서 최강자로 거듭나는 걸 보고 싶다.

- 김연아 등 동시대 활동한 선수들이 메시지를 정해줬나.

사실 한국에 있는 친구들보다 외국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한국 친구들은 많이 망설여하는 것 같다. 오늘 공식적으로 발표를 한다면, 더 많은 메시지를 받을 것 같다.

- 치열한 자기관리를 해왔다. 남들의 일상생활 중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그런데 저희는 하루에 4번의 훈련을 하다 보니, 정말 힘들었다. 그런 패턴을 내려놓고 싶다. 저도 한가롭게 산책을 하며 그런 삶을 즐기고 싶다.

- 연예 소속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들었다.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인가.

아직 향후 계획은 없다. 저를 내려놓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예정이다. 연예 소속사이긴 하지만, 다른 스포츠 선수들도 많다. 친분을 쌓고 싶어서 들어갔다.

- 선수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

평창 전이 정말 힘들었다. 독일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고 평창에 넘어갔는데, 느낌이 정말 달랐다. 메달을 아예 못 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4년 동안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정말 압박감이 컸다.

- 은퇴한 선수들이 다른 종목을 하기도 한다. 굳이 선수가 아니더라도,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종목이 있는가.

저는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다른 종목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무릎 부상이 컸기에 다른 종목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몸 상태가 좋아지면, 그 때 찾게 될 것 같다.

- 선수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무엇을 가장 하고 싶나.

잠을 편하게 자고 싶다. 평창 올림픽 끝나고 알람을 꺼두겠다고 했는데, 훈련을 하느라 하루 이틀밖에 못했다. 마음이 상당히 착잡했다. 이제 선수 이상화는 사라졌으니, 일반인 이상화로 돌아가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이제 결정을 해야 할 때다. 링크장에서 저는 사라지지만, 스피드 스케이팅이란 종목을 변함없이 사랑해주시길 바란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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