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부산, 조형래 기자] 잡아야 하는 경기들을 내주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믿었던 필승조들이 몰락했다. 그리고 딜레마에 빠졌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좀처럼 상승세로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 충격적인 패배들이 반복되면서 데미지도 누적되고 있다.
롯데는 1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4-6으로 재역전패를 당했다. 롯데는 5연승 이후 반등세로 돌아섰고 탈꼴찌까지 노려봤지만 LG와의 홈 3연전을 모두 내주면서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LG와의 3연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9위 한화와 승차없는 10위였지만 이제 한화와 키움은 공동8위가 됐고 이들과 승차는 다시 2경기로 벌어졌다.
점수를 뽑아야 할 때 뽑지 못하면서 경기가 뒤집어졌다. 5연승 기간 때와 사뭇 다른 타선은 같은 팀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마운드에서 버티는 힘이 있으면 접전을 틀어막을 수 있겠지만 롯데는 그럴 힘이 없었다. 사실 12일 경기는 양 팀 모두 사실상의 불펜데이였다. 롯데는 대체선발 홍민기가 올라왔고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결국 2⅔이닝 2실점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한현희(⅓이닝) 임준섭(1⅓이닝) 김상수(1⅔이닝) 진해수(1이닝)가 7회까지 추가 1실점만 하면서 버텼다. 6회말 윤동희가 4-3으로 앞서가는 적시타를 때려내면서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7회말 1사 만루 기회에서 김민석이 병살타로 물러난 뒤 올라온 최준용과 전미르의 필승조가 1점을 버티지 못했다. 맞은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장기레이스에서 충분히 있을법한 일. 하지만 최준용과 전미르는 곱씹어볼 만한 장면들을 나왔다. 이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우선 8회 최준용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최준용은 선두타자 오스틴을 상대로 체인지업과 패스트볼로 2스트라이크를 잡았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그러나 승부를 못했다. 2개 연속 커브를 던졌지만 오스틴은 속지 않았다. 결국 5구째 던진 141km 커터가 밋밋하고 높게 들어가면서 홈런의 먹잇감이 됐다. 허무하게 4-4 동점이 됐다. 후속 김범석은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러나 홍창기를 상대로도 오스틴과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홍창기를 상대로 체인지업과 커브로 2스트라이크를 잡았다. 하지만 역시 체인지업과 패스트볼을 던진 게 승부로 이어지지 않았다. 2볼 2스트라이크가 됐다. 결국 5구째 147km 패스트볼을 던지다 중전 안타를 허용했다. 장타와 단타가 있었지만 과정과 결과가 같았다.
일단 홍창기의 대주자인 최승민을 견제로 잡아내며 2아웃을 만들었다. 완전히 한숨을 돌렸고 한 타자만 정리하면 됐다. 비교적 장타 부담이 적은 구본혁이 타석에 들어섰다. 구본혁을 상대로도 마찬가지였다. 커브 2개로 손쉽게 2스트라이크를 선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구본혁과 승부를 보지 못했다. 패스트볼 커터, 체인지업을 모두 던져봤지만 제구가 되지 않았고 또 속지 않았다. 견제구로 주자들을 정리하고 허무하게 출루가 됐다. 4명의 타자를 상대해서 모두 2스트라이크를 선점했지만 타석에서 승부를 본 것은 단 한 명뿐이었다.
2사 1루에서 롯데는 전미르로 투수를 교체했다. 전미르는 오지환을 상대로 초구와 2구에 모두 패스트볼을 던졌다. 1볼 1스트라이크에서 전미르는 3구 째 127km 커브를 던졌지만 오지환의 방망이에 걸렸다. 비거리 130m의 대형 홈런으로 연결됐다. 그만큼 정확한 타이밍에 맞았다는 의미. 전미르의 주무기와 결정구가 커브라는 것을 이제는 모든 팀이 알게 됐다. 카운트를 잡고 또 결정구로도 활용할 수 있는 커브의 활용도가 높아지자 타자들도 노림수를 갖고 있다. 오지환은 “전미르 선수가 가장 자신 있어하고 수치상으로도 좋은 구종인 커브를 노리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수싸움에서 이미 완패를 한 것.
꼴찌에 머물러 있지만 그래도 그나마 믿을 수 있었던 게 불펜 필승조 라인이었다. 최준용과 전미르, 김원중으로 이어지는 필승조 라인은 그래도 지켜야 할 경기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최준용과 전미르가 불안감을 노출하는 경기들이 잦아지고 있다. 이들은 결이 다른, 결정구의 딜레마에 빠졌다.
최준용은 과거 불같은 강속구로 힘으로 윽박질렀다. 분당 회전수 2500회에 육박하는 패스트볼이 주무기이자 결정구였다. 알고도 못치는 구종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부상이 잦아지면서 이전처럼 패스트볼에 힘을 싣지 못하고 있다. 이를 보완해야 할 커브, 체인지업, 커터의 구종 완성도는 높지 않았다. 결정구와 위닝샷인데, 아무도 속지 않는다.
최준용의 결정구 문제는 변칙적인 마운드 운영으로 이어졌다. 최준용이 타자와 승부하는 도중, 특히 2스트라이크를 선점한 뒤 투수를 전미르로 교체하는 장면도 종종 나왔다. 11일 경기에서도 오스틴과 1볼 2스트라이크를 선점한 뒤 이후 승부를 보지 못하고 계속 파울로 커트가 되자 벤치는 전미르로 투수를 교체했다. 전미르는 오스틴에게 결정구인 커브를 던져서 루킹 삼진으로 솎아냈다.
반대로 전미르는 이제 모두가 결정구를 알게 됐다. 센세이션하게 등장했지만 최근에는 점점 타자들과 승부에서 어려움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각도 큰 너클 커브는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자주 던지게 되면서 타자들의 눈에 익었다. 전미르가 패스트볼(48.9%) 다음으로 가장 많이 던지는 구종이 커브(32.1%)다. 커브의 궤적을 노리고 있으면 오지환처럼 노림수에 당하는 경우도 잦아질 수밖에 없다. 이전과 달리 방망이에 걸리는 빈도도 많아지고 있다. 슬라이더 빈도르 늘리는 등 볼배합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
여러 측면에서 악순화이 거듭되고 있다. 타선과 투수진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무너지는 것은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결정구에 아무도 속지 않고, 그리고 결정구가 이제 먹잇감이 된 필승조들은 지금의 난국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