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바람의 손자’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펜스에 부딪쳐 쓰러졌다. 어깨 탈구 부상으로 장기 이탈 가능성이 높아졌다. 허슬 플레이를 펼친 대가가 너무 커 보인다.
이정후는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와의 홈경기에 1번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장, 1회초 수비 과정에서 왼쪽 어깨를 다쳐 타석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교체됐다.
1회초 2사 만루에서 신시내티 제이머 칸델라리오의 타구가 중앙 펜스 쪽으로 향했다. 홈런성 타구에도 포기하지 않고 쫓아간 이정후가 펜스 앞에서 왼팔을 쭉 뻗어 캐치를 시도했지만 글러브 끝에 살짝 닿더니 펜스 위쪽을 맞고 옆으로 튀었다. 그 사이 주자 3명이 모두 홈에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이정후가 왼쪽 어깨를 펜스에 강하게 부딪쳤다. 하필이면 외야 펜스 쿠션이 없는 쪽이었다. 외야 불펜 시야 확보를 위해 철조망으로 된 부분에 뛰어가면서 체중이 실린 채로 부딪쳤고, 그 충격으로 쓰러진 이정후는 왼쪽 어깨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했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한 이정후는 데이브 그로슈너 수석 트레이너의 부축을 받아 왼팔을 고정시킨 채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관중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이름을 연호했지만 이정후는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경기 후 미국 ‘디애슬레틱’은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당초 이정후가 어깨 분리 상태라고 했지만 이후 탈구 상태라고 밝혔다. 탈구는 종종 수술까지 필요한, 더 심각한 부상으로 보스턴 레드삭스 유격수 트레버 스토리가 지난달 6일 땅볼 타구에 다이빙하다 어깨 탈구로 시즌 아웃 수술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정후는 14일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통해 정확한 상태를 파악할 예정이다.
이어 디애슬레틱은 ‘이정후는 올 시즌 외야 펜스에 대한 두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여러 야구장에서 캐치를 시도하며 수차례 펜스에 몸을 던졌다’며 이정후가 시즌 내내 몸을 사리지 않는 펜스 플레이를 펼쳤다고 전했다. 동료 외야수 마이크 야스트렘스키도 지난달 13일 디애슬레틱과 인터뷰에서 “이정후는 펜스에 부딪칠 각오를 하고 있다. 몇 번이나 그렇게 했다. 그는 누구보다 팀이 이기길 원하고, 경기를 열심히 뛴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달 2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LA 다저스전에서 이정후는 1회 무키 베츠의 좌중간 펜스 직격 3루타를 잡기 위해 몸을 내던지다 펜스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7일 오라클파크에서 치러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선 5회 잭슨 메릴의 타구를 멋지게 점프 캐치하며 펜스에 부딪쳤지만, 이튿날 샌디에이고전에선 1회 제이크 크로넨워스의 중앙 펜스를 상단을 직격하는 2루타를 잡으려다 펜스와 충돌해 넘어지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모두 충격을 흡수하는 쿠션이 있는 곳이라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하필 철조망이 있는 부분이라 충돌과 함께 고스란히 충격을 입었다. 메이저리그는 구장마다 펜스 거리와 구조, 모양이 제각각이라 외야수들이 펜스 플레이를 할 때 조심해야 하는데 이정후는 이제 첫 시즌으로 경험이 많지 않고, 신인으로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 의욕이 앞서면서 안타까운 부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부상 상태가 심각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정후는 전력을 다했다”고 안타까워한 멜빈 감독도 “상태가 안 좋다. 펜스에 부딪쳐 쓰러진 뒤 일어나자 못할 때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내일(14일)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그리 좋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이정후는 KBO리그 넥센 히어로즈 소속이었던 2018년에도 6월19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3루로 슬라이딩하다 왼쪽 어깨 관절와순 파열로 한 달을 결장했다. 그해 10월19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선 9회 김회성의 타구를 다이빙 캐치하면서 또 왼쪽 어깨를 다쳤다. 부상으로 가을야구가 끝난 이정후는 그해 11월7일 왼쪽 어깨 전하방 봉합수술을 받았다. 당초 재활 기간이 6개월가량 예상됐지만 이정후는 4개월 만에 회복돼 2019년 3월23일 정규시즌 개막전에 정상 합류했다.
이번 부상도 일정 기간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샌프란시스코 팀에도 큰 악재다. 최근 일주일 사이 외야수 마이클 콘포토, 호르헤 솔레어(이상 오른쪽 어깨 염좌), 포수 톰 머피(왼쪽 무릎 염좌), 유격수 닉 아메드(왼쪽 손목 염좌), 외야수 오스틴 슬레이터(뇌진탕) 그리고 뇌진탕 부상에서 돌아온 포수 패트릭 베일리까지 독감 증세로 재이탈했다.
여기에 이정후까지 일주일 만에 7명의 선수가 줄부상을 당했다. 멜빈 감독은 “때때로 이런 일이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한다. 지금 그렇다”며 난감해했다. 이날 6-5 끝내기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16승23패(승률 .452)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4위에 그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로선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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