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잠실, 이후광 기자] 만년 백업 생활을 마치고 4번타자로 도약해 한 경기 최다 5타점을 기록했지만 표정은 밝지 못했다. 기존 4번타자였던 선배가 방출을 요청한 뒤 트레이드를 통해 타 팀으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문상철(33)은 지난 2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 7차전에 4번 1루수로 선발 출전해 6타수 4안타 5타점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12-3 대승이자 4연승을 이끌었다. 시즌 타율도 3할7리에서 3할2푼2리로 끌어올렸다.
2회초 첫 타석에서 삼진으로 몸을 푼 문상철은 2-0으로 앞선 3회초 2사 1루에서 유격수 내야안타로 4안타쇼의 서막을 열었다. 최근 4경기 연속 안타였다.
3-1로 리드한 5회초에는 무사 만루 기회를 맞이한 가운데 이영하 상대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빗맞은 타구가 우측 외야 파울라인 안쪽에 떨어지는 행운이 따랐다. 2루수 강승호와 우익수 헨리 라모스가 함께 타구를 쫓아갔지만 모두 포구에 실패했다. 문상철은 그 사이 2루까지 이동.
문상철은 6-1로 앞선 6회초에도 2사 만루 찬스에서 타석에 등장했고, 좌완 이교훈 상대 달아나는 2타점 좌전 적시타에 성공했다.
문상철의 방망이는 멈출 줄 몰랐다. 11-1로 크게 앞선 7회초 2사 3루에서 다시 이교훈을 만나 1타점 좌전 적시타로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5타점을 완성, 종전 4타점을 넘어 개인 한 경기 최다 타점을 경신한 순간이었다.
문상철은 경기 후 “내가 잘한 것도 기분이 좋지만 원정 6연전 첫 경기부터 마운드 큰 출혈 없이 승리할 수 있어서 가장 좋다”라며 “쿠에바스도 그 동안 너무 잘 던졌는데 승리가 없어서 미안한 마음이 한 구석에 있었다. 오늘 오랜만에 미안한 마음을 덜 수 있었다”라고 승리 소감을 남겼다.
‘미완의 우타 거포’ 문상철은 입단 11년차인 올해 마침내 알을 깨고 4번타자 자리를 꿰찼다. 시즌 46경기 타율 3할2푼2리(143타수 46안타) 9홈런 26타점 장타율 .531 출루율 .413 득점권타율 3할2푼5리 맹타를 휘두르며 KBO리그 대표 홈런타자 박병호를 밀어냈다. 경쟁에서 밀려난 박병호는 출전 시간에 불만을 품고 구단에 방출을 요청했다가 전날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 됐다.
문상철은 “작년 경기를 많이 나간 게 크다. 경험을 많이 했다. 100경기 시즌이 한 번도 없었는데 작년 타석수(330)가 가장 많았다. 다양한 상황을 맞이하다보니 경험이 쌓였고, 타석에서 수월해졌다”라고 활약 비결을 밝혔다.
그러면서 “수비 역시 캠프 때 김호 코치님과 준비를 많이 했다. 과거에는 외야수, 1루수를 같이 훈련했는데 올해는 1루수만 하면서 수비를 많이 나가다보니까 편해졌다. 과거에는 바운드를 보고 망설였다면 이제는 자신 있게 들어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문상철은 박병호가 이적했지만 반대급부로 오재일이 가세하며 좌타 거포와 새로운 경쟁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각오를 묻자 그는 “난 지금도 내가 주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주전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경쟁을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라며 “경기에 나가면 그 경기만 본다. 지나고 나서 봤을 때 ‘내가 그 때 주전이었지’라는 생각을 하고 싶다”라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문상철이라는 새로운 4번타자의 등장과 함께 올해도 마법의 여정을 써내려가고 있는 KT다. 문상철은 “지금 완전체가 아닌데 잘 버티고 있다. 선발투수들이 돌아오면 더 좋아질 거 같다”라며 “형들, 감독님 모두 경기하다보면 올라갈 거라는 생각을 한다. 순위표에서 처져있을 때도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다”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문상철은 4안타, 5타점 맹타에도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올 시즌 경쟁자이자 선배였던 박병호가 적은 출전 시간에 불만을 품고 구단에 방출을 요청했고, 결국 트레이드를 통해 팀을 떠난 여파였다. 실력이 좋은 선수가 선발로 나서는 게 당연한 프로의 섭리이지만, 문상철의 마음은 편치 않아 보였다.
문상철은 트레이드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진지한 표정으로 “그건 따로 선배께 연락드리겠다. 여기서는 노코멘트하겠다”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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