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전 코치 이토 쓰토무, 세이부 차기 감독 하마평
[OSEN=백종인 객원기자] ‘푸른 피’. 다저 블루를 상징하는 말이다. 작고한 토미 라소다(1927~2021년)의 멋진 은유에서 비롯됐다. 20년간 감독을 지낸 노장은 “내 몸에 푸른 피가 흐른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애써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내 몸에서 푸른 피는 사라졌다. 이제 검은 피로 변했다.” 이토 쓰토무(61)가 10년 전에 한 얘기다. 과거 두산 베어스에서도 수석 코치(2012년)로 일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다.
그가 뛰었던 곳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다. 다저스를 추앙하는 팀이다. 닮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유니폼 색상은 물론이다. 디자인, 폰트까지 비슷한 데가 많다.
이토 쓰토무는 그곳에서 잔뼈가 굵었다. 드래프트 1번으로 입단해 22년을 뛰었다.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1980~90년대 세이부 황금기를 이끌었다. 그리고 지도자로도 4년을 보냈다. 커리어 전체를 헌신한, 그야말로 원클럽맨이다.
그런 그가 요즘 다시 회자된다. 위기에 등판할 구원투수로 적임자라는 평가 때문이다.
세이부 라이온즈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냥 꼴찌 수준이 아니다. 자칫 역사에 남을 100패의 수모를 당할 위기다. 마쓰이 가즈오 감독은 이미 두 달 전에 휴양을 신청했다. 사실상의 사임(혹은 해임)이다.
궁여지책으로 현직 단장이 감독 대행을 맡았다. 와타나베 히사노부다. 하지만 소용없다. 팀 성적은 여전히 곤두박질친다. 그러면서 후임 얘기가 흘러나온다. 올해는 그렇다 쳐도, 당장 가을부터는 내년 준비를 해야 한다.
몇몇 이름이 떠돈다. 지금 2군 감독인 니시구치 후미야를 비롯한 OB들이다. 아키야마 고치, 구도 기미야쓰 같은 세이부 황금시대의 주역들이 소환된다. 이들은 소프트뱅크에서 감독까지 역임했다. 우승의 실적도 남겼다.
후보자 리스트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토 쓰토무다. 말했다시피 그는 황금시대의 주역 중 하나다. 당시 팀 내에는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많았다. 아키하라, 구도, 기요하라, 궈타이위안, 이시이 타케 등이 버티고 있었다.
상당수는 FA 등으로 팀을 떠났다. 그러나 세이부가 끝까지 지킨 1인이 있다. 바로 이토였다. 이유는 하나다. 장래를 맡길 지도자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토 감독 만들기’ 프로젝트는 착착 진행됐다. 은퇴 무렵 2년간을 선수 겸 (종합)코치라는 직책으로 계약했다. 현역 연장을 고집하는 본인의 뜻을 존중하면서, 시간을 투자한 것이다.
결국 은퇴와 동시에 감독으로 취임했다. 나이 42세 때였다(2003년). 일단은 3년짜리 계약서를 썼다. 그러나 당시 구단주(쓰쓰미 요시아키)는 파격적인 약속을 했다. “앞으로 10년은 팀을 맡길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명문 구단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였다.
부임 첫해부터 찬란하게 빛났다. 리그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1위 다이에(현 소프트뱅크)를 꺾고, 퍼시픽리그 챔피언에 오른다. 이어 재팬시리즈에서는 주니치를 잡았다. 12년 만에 일본 최고의 자리를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화려함은 잠깐이다. 축승회 며칠 뒤다. 이토 감독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구단주였다. “사정이 그렇게 됐다. 흔들리지 말고 선수들과 팀을 잘 다독여 달라”는 얘기였다. 구단이 존폐의 기로에 있다는 항간의 소문이 확인된 순간이다.
그 무렵 버블 붕괴로 일본 경제가 흔들릴 때다. 세이부 그룹은 직격탄을 맞았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야구단으로 전달됐다. 매각설이 파다했다. 아니면 다른 팀과의 합병설도 떠돌았다. 긴테쓰와 오릭스 두 구단이 합쳐진 것도 이 시기다.
이듬해 봄이다. 쓰쓰미 구단주가 법정에 섰다.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였다. 그룹 회장을 비롯한 모든 직함을 내려놔야 했다. 야구단에 대한 영향력도 사라졌다. 이토 감독의 강력한 후원자가 사라진 셈이다.
어찌어찌 당장의 위기는 넘겼다. 매각, 합병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후는 혼란과 갈등의 연속이다. 현장은 전력 보강을 원한다. 반면 구단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자연히 감독과 프런트의 충돌이 잦아졌다.
와중에 사건이 생겼다. 세이부 스카우트와 아마추어 선수 간에 뒷돈이 오간 사실이 밝혀졌다(2007년). 이토 감독은 이를 두고 공공연하게 구단을 비판했다. 그걸 보는 프런트의 노여움이 폭발했다. 결국 재계약 불가는 기정사실이 됐다.
사임의 모양새였다. 하지만 해임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마지막 경기를 앞둔 날이다. 이별을 준비하던 이토 감독의 귀에 속이 뒤집히는 얘기가 들린다. 구단이 그 흔한 꽃다발조차 준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분통이 터진다. 상대 감독을 붙들고 울화를 터트린다. 대선배 오사다하루(왕정치)였다. “감독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이 팀에서만 26년을 있었는데….” 그러면서 꽃다발 하나를 내민다. “이거 제 돈으로 사왔습니다. 나중에 감독님이 전달만 부탁드립니다. 팬들 볼 면목이라도 서게 해주십시요.”
잊지 못할 꽃다발 사건이다.
이후 수년간 야인으로 지냈다. NHK 해설위원, 평론가, WBC 일본대표팀 수석코치(2009년)를 역임했다. 2012년에는 두산 베어스에 영입됐다. 김진욱 감독 시절에 1년간 수석코치를 맡았다.
KBO 연수가 전환점이 됐다. 그해 겨울 치바 롯데 마린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첫 시즌(2013년)에 가을 야구에 진출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스테이지1(우리의 준플레이오프)의 상대가 운명적이다. 친정팀 세이부 라이온즈였다.
이 게임을 앞두고 한 말이 글 앞에 인용된 코멘트다. “내 몸에서 푸른 피는 사라졌다.” 시리즈는 2승 1패로 끝났다. 이토 감독의 복수극은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내 피는 (지바 롯데의) 검은색으로 변했다”고 선언했다.
만감이 교차하던 날이었다. 주차장에서 만난 팬이 애원한다. “언젠가 다시 세이부로 돌아와 주세요.” 그러나 들리는 대답은 단호했다. “아닙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났다. 상황은 달라졌다. 복귀를 예상하는 추측들이 생겨난다.
물론 아직은 여러 소문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약간의 가능성들은 보인다. ‘침체된 팀 정돈에 탁월하다’, ‘명포수 출신이라 게임 읽는 눈이 남 다르다’, ‘타자 조련에 일가견이 있다’ 같은 평가들이다.
또 하나 있다. ‘절대로’라는 금기는 이미 깨졌다. 올봄에 열렸던 세이부의 OB전 때다. 푸른 유니폼의 감개무량한 표정이 팬들과 만났다. 푸른 피를 원하는 서로의 교감이 강렬하게 통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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