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왕조라는 건 굉장히 힘든 것이다. 그 말을 쓰기도…”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는 2024년 압도적인 힘으로 통합 우승했다. 정규시즌 때 2위에 무려 9경기 차이로 일찌감치 1위를 확정젓더니 한국시리즈에서도 삼성을 4승1패로 가볍게 눌렀다. 앞으로 KIA 시대가 새로이 열릴 것 같은 기대감을 크게 높였다.
하지만 KIA는 섣불리 왕조 부활 선언을 하지 않았다. 이범호 KIA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 후 왕조 이야기가 나오자 “선수들이 자만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내년에도 우승을 다시 한 번 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감독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우승은 올 시즌으로 끝난 것이다. 내년에 다시 도전하는 자세로 우승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범호 감독은 “왕조라는 건 굉장히 힘든 것이다. 그 말을 쓰기도 굉장히 어렵다”고 조심스러워하며 “우리 선수들의 능력은 충분하지만 리그 전체적으로 비슷비슷한 팀들이 많다. 세밀한 부분을 잘 잡아내면 올 시즌처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지만 거만해지지 않아야 한다. 다시 도전하는 마음으로 올라가겠다”고 이야기했다.
특정팀이 장기간 우승을 할 때 ‘왕조’라고 일컫는다. 1983~1997년 15년간 무려 9번이나 우승한 해태가 KBO리그 대표적인 왕조 팀으로 이후 1998~2004년 현대(7년간 4번 우승), 2007~2010년 SK(4년간 3번 우승), 2011~2014년 삼성(역대 최초 통합 우승 4연패), 2015~2021년 두산(역대 최초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3번 우승)이 꼽힌다.
그러나 최근 KBO리그의 연속 우승은 2015~2016년 두산이 마지막이다. 2017년 KIA, 2018년 SK, 2019년 두산, 2020년 NC, 2021년 KT, 2022년 SSG, 지난해 LG, 올해 KIA까지 최근 8년 연속 우승팀이 계속 바뀌었다.
1990~1996년 1997~2003년 7년 연속 우승팀이 바뀐 것을 넘어 역대 최장 기간 연속 우승팀이 없다. 최근 5년간 한화, 롯데를 제외한 8개 팀이 전부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최근 8년간 6개 팀이 우승할 만큼 여러 팀들이 번갈아가며 우승했다. 오랜 기간 KBO가 심혈을 기울인 전력 평준화의 결과다.
2019년부터 신규 외국인 선수 몸값 상한액이 100만 달러로 제한됐고, 2023년 입단 신인부터 지역 연고 1차 지명 대신 전면 드래프트로 변경됐다. 2023년부터 팀 연봉 총액 상한제 샐러리캡(경쟁균형세)이 도입되는 등 특정팀이 우승 전력을 유지하거나 독식하기 어려운 구조로 리그가 바뀐 영향이 크다.
KIA 전력은 내년에도 우승 후보로 손색이 없지만 연속 우승, 나아가 왕조는 장담할 수 없다. 최형우(41), 양현종(36), 나성범(35), 김선빈(35), 김태군(35) 등 베테랑 선수들의 기량이 꺾였을 때가 문제다. 물론 김도영(21)이라는 확실한 기둥을 중심으로 투수 정해영(21), 윤영철(20), 곽도규(20), 최지민(21), 황동하(22), 김도현(24), 포수 한준수(25), 내야수 윤도현(21), 변우혁(24) 등 20대 초중반 젊은 선수들이 성장 중이라 장기간 강팀으로 갈 수 있는 구성은 갖춰져 가고 있다.
1986~1989년, 1996~1997년 해태 시절 연속 우승을 했지만 KIA로 바뀐 뒤에는 우승 다음해 무너지길 반복했다. 2009년 우승 후 2010년에는 16연패 충격에 빠지며 5위로 가을야구 실패했고, 2017년 우승 후 2018년에는 5위로 떨어지며 와일드카드에 만족했다. 내년에도 같은 패턴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우승에 취하지 않아야 한다.
포수 김태군도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우승 후 “우리 팀이 장기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선수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우승했다고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 자기 위치가 어떤지, 어떻게 연습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의식 자체가 바뀌어야만 장기 집권을 할 수 있다”며 “올해도 아쉬운 모습이 있었다. 내 눈에만 이상한 게 아니라 웬만하면 다 보일 것이다”는 말로 긴장의 끈을 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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