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 독일’ VS ‘1994 브라질'의 시대가 온다
입력 : 2013.07.0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김성민 기자= 책받침 축구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1990년대 초등학생을 보낸 이라면 모두가 아는 놀이다. 방식은 단순하다. 노트에 그라운드와 좋아하는 선수들을 그려놓고, 책받침을 잘라 공을 만들어 펜으로 톡톡 튀겨가며 진행하면 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당시 노트에 그려놓던 선수들은 대부분 브라질과 독일 출신의 선수였던 것 같다. 브라질의 베베투나 호마리우 혹은 독일의 위르겐 클린스만부터 보도 일그너까지. 머나먼 한국의 어린 학생조차도 브라질과 독일 선수들의 이름을 꿰차고 있었던 것 보면 당시의 세계 축구판은 브라질과 독일, 두 나라의 대결 양상으로 흘러 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소박한 추억이 불현듯 생각나는 이유는 최근 돌아가는 축구판의 행보가 20여년 전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우승한 ‘전차군단’ 독일은 자국리그의 바이에른 뮌헨이 2012/2013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삼바축구‘ 브라질도 지난 6월 30일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에서 스페인을 3-0으로 꺾으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반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승을 기점으로 ’내가 제일 잘나가라‘라고 외치던 스페인은 자국리그 클럽인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2012/2013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 나란히 진출했지만,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힘도 못쓰고 패했다. 게다가 이번 컨페더레인션스컵 결승전에서도 브라질에 맞서 자신이 자랑하던 패스 축구를 꺼내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자멸했다.

물론 최근의 행보만 가지고 스페인의 몰락했다고 할 수 는 없다. 여전히 스페인은 매우 훌륭한 축구를 하고 내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결승에 가지 못하면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단지 그저 돌고 도는 헤게모니 속에 수면 밑에 있던 전통의 강호 브라질과 독일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것뿐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현재 독일과 브라질의 구사하는 축구 방식이 1990년과 1994년에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던 당시 펼쳤던 실리축구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로 돌아 가보자. 당시 서독이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독일은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압박축구를 들고 나와 축구판을 흔들었다. 안드레아스 묄러, 토마스 해슬러로 이뤄진 미드필드진은 상대팀이 공을 잡으면 순식간에 달려들어 공간을 점유했다. 측면 수비수인 토마스 베르톨드는 빠른 공수 전환으로 경기의 템포를 빠르게 가져갔다. 이러한 독일의 탄탄한 수비와 빠른 공수 전환은 독일이 화려한 축구는 하지 않아도 반드시 이기는 경기를 할 수 있었던 근간이었다.

1994년의 브라질도 다르지 않다. 화려한 공격력으로 조명 받던 브라질의 수비진은 그 어느 때보다 탄탄했다. 아우다이르를 중심으로 한 포백 수비진의 조직력, 그리고 그 앞을 보호하는 마우로 시우바-둥가 콤비의 2선 방어 능력은 거의 ‘철옹성’에 비유될 정도였다. 당시 브라질의 수장이었던 카를루스 파헤이라 감독은 이러한 수비력과 호마리우-베베토 투톱의 결정력을 앞세워 결국에는 브라질을 24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었다.

현재 두 팀의 모습도 그때와 별반 다를 것 없다. 아니 오히려 진화됐다. 독일의 중원 미드필더인 사미 케디라와 바스타인 슈바인슈타이거, 브라질의 중원 미드필더인 루이스 구스타부, 파울리뉴는 상대의 공격이 1차 저지선을 통과하면 강한 압박으로 공을 소유한다.

여기까지는 1990년대의 독일 혹은 브라질의 모습과 다를 것 없다. 인상적인 것은 이들이 공을 소유하면 순간적으로 수비라인은 한 단계 올라오며 미드필더와의 간격을 좁혀 상대팀 공격수들이 다시 공을 차단할 상황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잘나가는’ 스페인의 패스 플레이도 힘을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렇다고 두 팀이 압박을 위해 체력을 무작위로 낭비하는 것은 아니다. 압박의 강도와 체력의 소모는 동반될 수밖에 없지만 두 팀의 압박은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압박 지역을 선점하여 움직인다. 공에 따라 압박의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가며 압박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축구 경기는 한정된 공간에서 하는 것이다. 두 팀의 수비수들과 미드필더 자원들은 공을 따라다니며 무리하게 압박을 시도하는 것보다 자신의 공간을 선택해놓고, 압박을 시도한다. 이는 체력소모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동료 수비수들과의 수비 영역이 겹치는 것도 방지하기도 한다.

월드컵 경기는 토너먼트전이다. 물론 골을 넣어야 이길 수 있는 것이 축구경기지만, 매 경기 정상급 팀들과 혈투를 벌이는 월드컵 경기에서는 탄탄한 수비가 우선시 돼야 한다. 최근 브라질과 독일은 매년 강력한 우승후보로 올랐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대부분 화려한 공격력의 뒤를 받치는 수비가 부족했던 것이 최근 실패의 원인이었는데, 이러한 문제는 이제 옛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업그레이드된 브라질과 독일의 클래식 대결 양상이 기대되는 이유다.

사진=ⓒMatt West/BPI/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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