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김성진 기자= 2003년부터 한국, 일본, 중국에서 번갈아 개최되고 있는 동아시안컵. 지난 4번의 대회를 되돌아보며 동아시안컵의 추억을 떠올려보도록 하겠다.
▲ 초대 대회 우승의 영예는 한국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전 동아시아축구연맹(EAFF)이 창설됐다.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상호 협력과 축구 발전을 위한 단체였다. EAFF의 창설로 1998년 제4회 다이너스티컵 이후 사라졌던 동아시아 국가간의 친선대회도 부활됐다.
첫 대회의 개최지는 일본으로 정해졌다.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 요코하마 국제경기장,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에서 12월 4일부터 12월 10일까지 일주일간 대회가 열렸다. 당초 대회는 월드컵 개최 1주년을 기념해 5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열리려 했으나 전 세계로 퍼진 사스 전염병 때문에 연기됐다. 상금은 50만 달러(1위), 30만 달러(2위), 20만 달러(3위), 15만 달러(4위)로 정해졌다.
한국은 A매치 기간이 아닌 관계로 유럽파를 제외했으나 안정환, 유상철, 최진철 등 월드컵 영웅에 올림픽대표팀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던 김두현, 김동진, 최원권 등을 기용해 대회에 임했다.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홍콩과의 대회 첫 경기에서 김두현, 김도훈, 안정환의 연속골로 가볍게 승리를 거뒀고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에서 치른 중국전에서는 전반 46분에 나온 유상철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승점 6점이 된 한국은 똑같이 홍콩, 중국을 연파하며 승점 6점을 거둔 일본과 대회 최종전이자 실질적인 결승전을 치렀다. 양팀은 90분 내내 공방전을 벌였으나 골문을 열지 못했고 0-0으로 비겼다. 똑같이 승점 7점이 됐으나 한국이 다득점에서 앞서 초대 대회 우승국이 됐다. 2003년 초 한국 지휘봉을 잡은 움베르투 쿠엘류 감독은 부임 후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2003년 동아시안컵 한국 출전 선수
GK : 1.이운재, 21.김용대, 23.김해운
DF : 2.현영민, 3.전재호, 4.최진철, 5.김현수, 6.유상철, 7.김태영, 15.박재홍, 22.조세권
MF: 8.최원권, 10.이관우, 12.김동진, 13.이을용, 20.김두현
FW : 9.김도훈, 11.최용수, 14.김은중, 16.정경호, 18.김대의, 19.안정환
▲ 무너진 개최국 자존심, 북한의 힘 보여준 대회
2회 대회는 2년 뒤인 2005년 7월 31일부터 8월 7일까지 한국에서 열렸다. 초대 대회 우승을 차지한 한국은 홈 이점을 최대한 살려 2회 연속 우승을 노렸다. 2회 대회에서는 북한이 예선을 통과해 참가했다. 북한의 참가는 대회의 관심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일본-중국의 경기에 1,827명만 찾은 반면 북한-일본전은 2만 3,150명이 관전했다. 북한-중국전에도 2만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1회 대회와 마찬가지로 한국, 일본, 중국이 자동 진출했다. 북한은 3월 5일부터 3월 13일까지 타이완에서 열린 예선에서 4승 무패 31득점 0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며 본선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대회 개막전은 한국-중국전으로 열렸다. 한국은 후반 7분 쑨시앙에게 선제골을 내줬으나 김진규의 동점골로 경기를 원점을 돌렸다. 하지만 추가골이 나오지 않으면서 1-1로 비겼다. 불안한 출발을 보인 한국은 북한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0-0으로 비겼다. 그리고 4만 2,000여명이 경기장을 찾은 일본과의 최종전에서는 나카자와 유지에게 통한의 실점을 하며 0-1로 패했다. 한국은 단 1승도 얻지 못하고 최하위로 대회를 마쳤자. 조 본프레레 감독의 입지도 더욱 좁아지고 말았다.
반면 베일에 쌓였던 북한은 수준급의 축구 실력을 보이며 팬들의 많은 박수와 관심을 받았다. 북한은 한국, 일본, 중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쳐 앞으로 있을 월드컵 예선 등의 국가대항전에서 좋은 결과를 예상하게 했다.
2005년 동아시안컵 한국 출전 선수
GK : 1.이운재, 23.김용대, 30.김영광
DF : 2.유경렬, 3.김한윤, 4.김진규, 5.김영철, 17.오범석, 29.곽희주
MF : 8.김두현, 11.최태욱, 12.백지훈, 13.김동진, 14.김상식, 15.김정우, 19.홍순학, 21.양상민, 22.박규선
FW : 9.이천수, 10.박주영, 16.정경호, 18.김진용, 20.이동국
▲ 한국, 3년 만에 실추된 명예 되찾다
2005년 개최국의 자존심에 먹칠한 한국이 와신상담 끝에 다시 2008년 대회에서 동아시아 축구의 정상에 올랐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허정무 감독의 첫 대회로 A매치 기간이 관계로 국내파와 J리그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로 구성해 출전했다. 일본도 국내파로 선수를 구성해 나섰다.
한국, 일본, 중국에 2005년에 이어 북한이 다시 예선을 통과해 출전했다. 이전 대회와 달리 중국 충칭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모든 경기가 진행됐다.
한국은 개최국 중국과 개막전에서 만났다. 5골을 주고 받은 난타전 끝에 후반 46분 곽태휘의 결승골로 3-2 승리를 거뒀다. 박주영은 2골을 넣으며 승리에 앞장섰다. 이어진 경기에서는 일본과 북한이 1-1로 비겼다. 이 경기에서는 정대세가 전반 5분 만에 선제골을 넣으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국은 남북전으로 열린 북한과의 2차전에서 1-1로 비겼다. 그리고 일본과의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도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1승 2무 승점 5점으로 일본과 동률이 된 한국은 2003년 대회와 마찬가지로 다득점에서 일본에 앞서며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한국은 우승을 차지했지만 매 경기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실점을 하는 수비 불안을 노출하는 약점을 드러냈다. 정대세는 대회 기간 동안 총 2골을 넣으며 동아시안컵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다.
2008년 동아시안컵 한국 출전 선수
GK : 1.김용대, 18.정성룡, 23.염동균
DF : 3.조원희, 4.조용형, 6.조성환, 12.이상호, 13.박원재, 14.강민수, 15.곽희주, 16.곽태휘
MF : 2.이종민, 5.김남일, 7.이근호, 8.이관우, 11.염기훈, 19.황지수, 20.오장은, 21.구자철
FW : 9.조진수, 10.박주영, 22.고기구
▲ 설날 단두대 한일전 승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4개월 앞두고 일본에서 열린 4회 대회. 최대 관심은 역시 한일전이었다. 더구나 양팀 감독이었던 허정무, 오카다 다케시 감독의 신임이 급속도로 나빠진 상태였기에 이 대회 결과에 따라 입지가 달라질 수 있었다.
한국은 대회 첫 상대였던 홍콩을 대파하며 기분 좋게 시작했다.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김정우, 구자철, 이동국, 이승렬, 노병준의 릴레이 득점포로 5-0 승리를 했다. 그런데 2차전 중국전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시종일관 졸전을 벌이더니 위하이, 가오린, 덩주오샹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0-3으로 패했다. 중국과의 A매치 22년 역사에서 첫 패배이자 굴욕적인 완패였다.
이 경기로 허정무 감독의 신임이 흔들렸다. 일부에서는 경질설까지 나왔다. 마찬가지로 부진한 성적을 내던 오카다 감독도 같은 말을 들었다. 이에 한일 양국 언론에서는 설날에 열렸던 한일전을 ‘단두대 매치’로 불렀다. 승패에 따라 두 팀 감독의 생명이 결정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결전의 승자는 한국이었다. 엔도 야스히토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이동국의 페널티킥 동점골과 이승렬의 역전골이 곧바로 나왔다. 후반 25분에는 김재성의 쐐기골이 이어지면서 짜릿한 3-1 역전승을 했다. 4만 2,951명의 관중이 찾았던 도쿄 국립경기장은 한국 축구 축제의 장이었다. 우승은 중국이 했지만 대회 피날레는 한국이 장식한 셈이었다.
2010년 동아시안컵 한국 출전 선수
GK : 1.이운재, 18.정성룡, 21.김영광
DF : 2.오범석, 3.강민수, 4.조용형, 5.곽태휘, 12.이규로, 13.박주호, 14.이정수, 23.김형일
MF : 6.구자철, 7.김재성, 8.김정우, 10.김두현, 15.김보경, 16.신형민, 17.이승현, 19.오장은
FW : 9.이승렬, 11.이근호, 20.이동국, 22.노병준
사진=2010년 동아시안컵 경기 모습 ⓒPITCH PHOTO
▲ 초대 대회 우승의 영예는 한국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전 동아시아축구연맹(EAFF)이 창설됐다.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상호 협력과 축구 발전을 위한 단체였다. EAFF의 창설로 1998년 제4회 다이너스티컵 이후 사라졌던 동아시아 국가간의 친선대회도 부활됐다.
첫 대회의 개최지는 일본으로 정해졌다.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 요코하마 국제경기장,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에서 12월 4일부터 12월 10일까지 일주일간 대회가 열렸다. 당초 대회는 월드컵 개최 1주년을 기념해 5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열리려 했으나 전 세계로 퍼진 사스 전염병 때문에 연기됐다. 상금은 50만 달러(1위), 30만 달러(2위), 20만 달러(3위), 15만 달러(4위)로 정해졌다.
한국은 A매치 기간이 아닌 관계로 유럽파를 제외했으나 안정환, 유상철, 최진철 등 월드컵 영웅에 올림픽대표팀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던 김두현, 김동진, 최원권 등을 기용해 대회에 임했다.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홍콩과의 대회 첫 경기에서 김두현, 김도훈, 안정환의 연속골로 가볍게 승리를 거뒀고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에서 치른 중국전에서는 전반 46분에 나온 유상철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승점 6점이 된 한국은 똑같이 홍콩, 중국을 연파하며 승점 6점을 거둔 일본과 대회 최종전이자 실질적인 결승전을 치렀다. 양팀은 90분 내내 공방전을 벌였으나 골문을 열지 못했고 0-0으로 비겼다. 똑같이 승점 7점이 됐으나 한국이 다득점에서 앞서 초대 대회 우승국이 됐다. 2003년 초 한국 지휘봉을 잡은 움베르투 쿠엘류 감독은 부임 후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2003년 동아시안컵 한국 출전 선수
GK : 1.이운재, 21.김용대, 23.김해운
DF : 2.현영민, 3.전재호, 4.최진철, 5.김현수, 6.유상철, 7.김태영, 15.박재홍, 22.조세권
MF: 8.최원권, 10.이관우, 12.김동진, 13.이을용, 20.김두현
FW : 9.김도훈, 11.최용수, 14.김은중, 16.정경호, 18.김대의, 19.안정환
▲ 무너진 개최국 자존심, 북한의 힘 보여준 대회
2회 대회는 2년 뒤인 2005년 7월 31일부터 8월 7일까지 한국에서 열렸다. 초대 대회 우승을 차지한 한국은 홈 이점을 최대한 살려 2회 연속 우승을 노렸다. 2회 대회에서는 북한이 예선을 통과해 참가했다. 북한의 참가는 대회의 관심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일본-중국의 경기에 1,827명만 찾은 반면 북한-일본전은 2만 3,150명이 관전했다. 북한-중국전에도 2만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1회 대회와 마찬가지로 한국, 일본, 중국이 자동 진출했다. 북한은 3월 5일부터 3월 13일까지 타이완에서 열린 예선에서 4승 무패 31득점 0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며 본선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대회 개막전은 한국-중국전으로 열렸다. 한국은 후반 7분 쑨시앙에게 선제골을 내줬으나 김진규의 동점골로 경기를 원점을 돌렸다. 하지만 추가골이 나오지 않으면서 1-1로 비겼다. 불안한 출발을 보인 한국은 북한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0-0으로 비겼다. 그리고 4만 2,000여명이 경기장을 찾은 일본과의 최종전에서는 나카자와 유지에게 통한의 실점을 하며 0-1로 패했다. 한국은 단 1승도 얻지 못하고 최하위로 대회를 마쳤자. 조 본프레레 감독의 입지도 더욱 좁아지고 말았다.
반면 베일에 쌓였던 북한은 수준급의 축구 실력을 보이며 팬들의 많은 박수와 관심을 받았다. 북한은 한국, 일본, 중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쳐 앞으로 있을 월드컵 예선 등의 국가대항전에서 좋은 결과를 예상하게 했다.
2005년 동아시안컵 한국 출전 선수
GK : 1.이운재, 23.김용대, 30.김영광
DF : 2.유경렬, 3.김한윤, 4.김진규, 5.김영철, 17.오범석, 29.곽희주
MF : 8.김두현, 11.최태욱, 12.백지훈, 13.김동진, 14.김상식, 15.김정우, 19.홍순학, 21.양상민, 22.박규선
FW : 9.이천수, 10.박주영, 16.정경호, 18.김진용, 20.이동국
▲ 한국, 3년 만에 실추된 명예 되찾다
2005년 개최국의 자존심에 먹칠한 한국이 와신상담 끝에 다시 2008년 대회에서 동아시아 축구의 정상에 올랐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허정무 감독의 첫 대회로 A매치 기간이 관계로 국내파와 J리그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로 구성해 출전했다. 일본도 국내파로 선수를 구성해 나섰다.
한국, 일본, 중국에 2005년에 이어 북한이 다시 예선을 통과해 출전했다. 이전 대회와 달리 중국 충칭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모든 경기가 진행됐다.
한국은 개최국 중국과 개막전에서 만났다. 5골을 주고 받은 난타전 끝에 후반 46분 곽태휘의 결승골로 3-2 승리를 거뒀다. 박주영은 2골을 넣으며 승리에 앞장섰다. 이어진 경기에서는 일본과 북한이 1-1로 비겼다. 이 경기에서는 정대세가 전반 5분 만에 선제골을 넣으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국은 남북전으로 열린 북한과의 2차전에서 1-1로 비겼다. 그리고 일본과의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도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1승 2무 승점 5점으로 일본과 동률이 된 한국은 2003년 대회와 마찬가지로 다득점에서 일본에 앞서며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한국은 우승을 차지했지만 매 경기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실점을 하는 수비 불안을 노출하는 약점을 드러냈다. 정대세는 대회 기간 동안 총 2골을 넣으며 동아시안컵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다.
2008년 동아시안컵 한국 출전 선수
GK : 1.김용대, 18.정성룡, 23.염동균
DF : 3.조원희, 4.조용형, 6.조성환, 12.이상호, 13.박원재, 14.강민수, 15.곽희주, 16.곽태휘
MF : 2.이종민, 5.김남일, 7.이근호, 8.이관우, 11.염기훈, 19.황지수, 20.오장은, 21.구자철
FW : 9.조진수, 10.박주영, 22.고기구
▲ 설날 단두대 한일전 승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4개월 앞두고 일본에서 열린 4회 대회. 최대 관심은 역시 한일전이었다. 더구나 양팀 감독이었던 허정무, 오카다 다케시 감독의 신임이 급속도로 나빠진 상태였기에 이 대회 결과에 따라 입지가 달라질 수 있었다.
한국은 대회 첫 상대였던 홍콩을 대파하며 기분 좋게 시작했다.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김정우, 구자철, 이동국, 이승렬, 노병준의 릴레이 득점포로 5-0 승리를 했다. 그런데 2차전 중국전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시종일관 졸전을 벌이더니 위하이, 가오린, 덩주오샹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0-3으로 패했다. 중국과의 A매치 22년 역사에서 첫 패배이자 굴욕적인 완패였다.
이 경기로 허정무 감독의 신임이 흔들렸다. 일부에서는 경질설까지 나왔다. 마찬가지로 부진한 성적을 내던 오카다 감독도 같은 말을 들었다. 이에 한일 양국 언론에서는 설날에 열렸던 한일전을 ‘단두대 매치’로 불렀다. 승패에 따라 두 팀 감독의 생명이 결정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결전의 승자는 한국이었다. 엔도 야스히토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이동국의 페널티킥 동점골과 이승렬의 역전골이 곧바로 나왔다. 후반 25분에는 김재성의 쐐기골이 이어지면서 짜릿한 3-1 역전승을 했다. 4만 2,951명의 관중이 찾았던 도쿄 국립경기장은 한국 축구 축제의 장이었다. 우승은 중국이 했지만 대회 피날레는 한국이 장식한 셈이었다.
2010년 동아시안컵 한국 출전 선수
GK : 1.이운재, 18.정성룡, 21.김영광
DF : 2.오범석, 3.강민수, 4.조용형, 5.곽태휘, 12.이규로, 13.박주호, 14.이정수, 23.김형일
MF : 6.구자철, 7.김재성, 8.김정우, 10.김두현, 15.김보경, 16.신형민, 17.이승현, 19.오장은
FW : 9.이승렬, 11.이근호, 20.이동국, 22.노병준
사진=2010년 동아시안컵 경기 모습 ⓒPITCH 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