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불펜 재편 작업에 들어갔다. 필승조 구성부터 투입 순번까지 조정한다. 지난해 핵심 불펜들의 부진이 길어지자 최원호 한화 감독이 결단을 내렸다.
한화는 지난 1일 대전 SSG전에서 5회까지 6-1로 넉넉하게 앞섰지만 불펜 붕괴로 7-8 충격의 역전패를 당했다. 6회 좌완 김범수가 1점을 내준 뒤 7회 장시환과 박상원이 나란히 3점씩, 총 6실점 빅이닝을 허용하며 한순간에 무너졌다. 6-3으로 쫓긴 7회 2사 1,2루에서 장시환을 박상원으로 교체한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 박상원은 최정에게 볼넷을 내줘 만루를 만든 뒤 한유섬에게 좌중간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맞았다. 6-6 동점으로 블론세이브. 이어 기예르모 에레디아에게 우중간 적시타를 허용하며 결승점까지 내줬다.
최원호 감독은 2일 SSG전을 앞두고 “투수 교체에서 우리가 정해놓은 순서의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장시환이 사사구 2개를 준 이닝이었고, 투아웃에 3점차라 박상원이 조금 더 경쟁력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박상원을 올렸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투수 교체 미스를 인정했다.
감독 입장에선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긴 하다. 박상원은 지난해 16세이브를 기록한 마무리였고, 김범수는 한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통산 63홀드 셋업맨이다. 1군에서 수년간 충분히 검증됐고, 해줘야 할 몫이 큰 선수들인데 김범수는 7점대(7.36), 박상원은 8점대(8.31) 평균자책점으로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껏 이런 성적을 낸 적이 없는데 하필 같은 시기 동반 부진에 빠졌다. 지난달 나란히 2군에도 한 번씩 다녀왔지만 좀처럼 좋을 때 폼을 찾지 못하고 있다.
두 투수의 부진이 오래 가고, 시즌 초반 필승조로 활약한 한승혁이 멀티 이닝에서 몇 차례 무너진 뒤 2군에 내려가면서 필승조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최원호 감독은 “(마무리) 주현상을 빼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민우가 제일 괜찮다. 그 다음 투수가 문제인데 (박승민) 투수코치와 의논해보고, 포수들과 이야기를 해봤을 때 김규연이 지금 괜찮다”며 “구위가 떨어져도 제구가 되는 장민재를 중요할 때 써볼까 생각 중이다. 결국 나와 투수코치가 불펜의 순번을 다시 세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2일 SSG전은 불펜 재편에 나선 첫 경기였다. 앞서 연투한 김규연이 휴식을 취한 가운데 최원호 감독이 키맨으로 꼽은 장민재가 3-3 동점으로 맞선 5회 2사 1,2루 위기에 투입됐다. 투구수 99개를 던진 신인 선발 황준서를 내리면서 장민재가 마운드에 올랐다. 타율 1위 에레디아 상대로 장민재는 주무기 포크볼을 집중적으로 던져 우익수 뜬공 처리, 실점 위기를 잘 넘겼다.
그러나 6회가 문제였다. 고명준과 하재훈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며 무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이어 이지영의 희생번트 때 대시한 3루수 노시환이 과감하게 3루로 승부를 걸었지만 한 타임 늦었다. 야수 선택으로 무사 만루가 되자 SSG는 안상현 타석에 대타 추신수 카드를 꺼냈다.
그러자 한화도 우완 장민재를 내리고 좌완 이충호로 투수를 교체했다. 지난달 29일 1군 콜업된 이충호의 시즌 첫 등판이 6회 동점, 무사 만루 상황에서 이뤄졌다. 나이는 30살로 꽤 되지만 1군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이충호에겐 압박감이 큰 상황이었다. 다만 김범수가 계속 헤매고 있는 한화로선 새로운 좌완 불펜이 필요했고, 승부처에서 이충호를 과감하게 투입하는 모험수를 뒀다. 위험 부담이 크지만 선택지도 많지 않았다.
이충호는 추신수에게 던진 초구 슬라이더가 바깥쪽 낮게 원바운드로 들어갔다. 이어 2~4구 투심 패스트볼이 모두 존을 벗어났다.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밀어내기 점수를 준 것이다. SSG가 4-3으로 재역전한 순간. 이날 경기 최종 스코어이자 결승점이었다.
하지만 이충호는 다음 타자 최지훈을 3구 삼진 돌려세우며 한 고비 넘겼다. 1~2구 연속 몸쪽 투심으로 스트라이크와 헛스윙을 이끌어낸 이충호는 3구째 낮은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 돌려세웠다. 이어 박성한도 투심으로 1루 땅볼 유도하며 3루 주자를 홈에서 잡아냈다. 밀어내기 볼넷은 아쉽지만 좌타자 상대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화로선 나름의 소득이라 할 만했다.
패전을 안은 장민재도 안타 2개를 맞았지만 수비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빗맞은 타구로 운이 따르지 않았다. 경험이 많은 투수답게 승부처에서 포크볼로 강타자를 막을 수 있는 배포를 보여줬다. 앞으로 중용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울러 이석증 후유증으로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던 전천후 투수 이태양도 이날 8회를 공 5개로 삼자범퇴, 회복세를 보인 것도 한화에 위안이 되는 요소였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