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길준영 기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가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 도입 과정에서 소통의 부족을 지적했다.
선수협은 지난 13일 “2024 KBO리그에 ABS가 도입된지 두 달여 만에 KBO와 첫 소통을 시작했다. 일방적인 통보로 도입된 ABS와 관련하여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으며 국내 프로야구선수들이 최대한 직접 경험해 본 후 선수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세계적인 흐름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KBO 에 힘을 실어 선진화된 프로야구 환경을 조성하고 팬들에게 환영받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올 시즌 KBO리그는 세계 주요 프로야구리그 최초로 ABS를 도입했다. 공정하고 일관적인 볼 판정이 가능해지면서 팬들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선수와 코칭스태프 사이에서는 기존의 스트라이크 존과 ABS의 스트라이크 존이 크게 다른 것에 대해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프로야구선수들과 야구관계자들도 혼란을 겪고 있는 ABS 상황에 대해, 장동철 사무총장은 “ABS 도입을 반대하는 프로야구선수는 현시점에 없다고 봐도 된다”면서 “선수들이 ABS도입을 통한 선진화된 환경을 환영하지만, 그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들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부족한 점에 큰 아쉬움과 서운함을 갖는다”라고 지적했다.
ABS의 대한 팬들의 만족도는 상당하다. ABS 도입 이후 심판과 선수의 판정 시비가 거의 사라지면서 팬들은 매우 만족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기존에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내렸던 심판들에 대한 불신이 컸다. 더구나 지난달 14일 대구 NC-삼성 경기에서 이민호 심판을 비롯한 심판진이 ABS 판정을 잘못듣고 오심을 했음에도 이를 은폐하려고 하다가 적발돼 중징계를 받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팬들의 신뢰는 더욱 떨어졌다.
그렇지만 현장에서는 계속해서 ABS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구장마다 스트라이크 존이 다르다는 선수들의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잠실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두산 이승엽 감독과 LG 염경엽 감독은 ABS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임에도 잠실구장의 스트라이크 존이 좌타자 몸쪽이 조금 치우쳐져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일 경기에서 두산이 5-1로 앞선 4회말 2사 1, 2루에서 좌완 구원투수 이병헌이 좌타자 홍창기를 루킹삼진으로 잡아낸 장면을 두고 이승엽 감독은 "우리가 ABS 덕을 본게 아닌가 싶다. 반대로 우리 타자들도 그런 쪽을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ABS가 아직은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타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타격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어제는 이래저래 운이 좋았던 하루였다"라고 말했고, 염경엽 감독은 "잠실구장이 다른 구장과 비교하면 살짝 틀어져 있는 느낌이다. 좌타자 몸쪽이 바깥쪽보다 후하다"라고 강조했다.
KBO는 이러한 주장이 계속되자 검증에 나섰다. 지난 9일 보도자료를 통해 "ABS 정확성 테스트를 KBO리그 9개 구장에서 지난달 8일부터 30일까지 진행했다. KBO는 ‘각 구장별로 ABS 판정 좌표 기준에 차이가 있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 테스트를 통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공감했으며, 투구된 공의 위치가 찍히는 폼 보드 실측 좌표와 ABS 추적 좌표를 정밀하게 비교했다. 테스트 결과 피칭머신 등으로 투구된 폼 보드 실측 데이터 값과 비교했을 때 ABS 추적 시스템의 데이터는 9개 구장 모두 평균 4.5mm(좌우 4.5mm, 상하 4.4mm)이내의 정확성을 갖는 것으로 확인됐다"라며 구장마다 스트라이크 존의 차이가 없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혔다.
이에 대해 이승엽 감독은 "현장과 긴밀히 소통하고 선수협과 이야기를 해서 조금이라도 오차와 편차를 줄 일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항상 말하듯이 나는 ABS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선수들이 햇갈려 하는 부분이 있다면 KBO에서도 선수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자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ABS는 양 팀에 공정하게 판정을 하기 때문에 만족한다. 이제 도입 첫 해이기 때문에 당연히 (일부 오차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편차나 오차가 줄어들면 선수들도 만족할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ABS의 정확성에도 현장에서는 아직 의심의 눈초리가 있다. 선수협은 "홈런이나 당겨치는 큰 홈런성 파울 타구가 나오는 시점(공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하기 전)에 ABS 판정 콜이 울리는 사례들에 대한 기술적인 설명에 대한 요청에서는 ABS가 타격 여부와 관계없이 판정을 내리고 판정음을 전달한다는 점을 KBO에서 밝혔다. 하지만 KBO가 선수단에게 안내한 '2024 KBO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 선수단 안내 자료'에서는 '좌-우 기준 통과', '홈 플레이트 중간면+끝면 모두 설정된 기준 내 통과' 두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스트라이크 판정이라 되어 있고, 이렇게 안내받은 선수들과 구단 담당자는 판정콜이 미리 울렸다는 의심 혹은 현상을 겪으며 시스템에 대한 의혹이 커졌다"라며 아직 ABS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ABS의 현행 스트라이크 존이 기존의 스트라이크 존과 다른 것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ABS가 기존 스트라이크 존에 비해 높은 공을 더 잘 잡아준다는 것은 모든 선수들과 야구 관계자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특히 스트라이크 존 상단 좌우 외곽으로 들어가는 공이 스트라이크로 잡히기 시작하면서 타자들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KBO는 규정대로 직사각형 모양의 스트라이크 존이 구현된 것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지금까지 볼이라고 생각했던 공을 이제는 스트라이크로 보고 타격을 해야하는 타자들은 스트라이크 존을 다시 정립하는데 난항에 빠진 모양새다.
현장에서 느끼는 ABS와 팬들이 느끼는 ABS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도 바로 이런 지점이다. 팬들이 중계화면상으로 보기에는 ABS의 판정이 완벽해보이지만 선수들은 이전 스트라이크 존과는 다른 ABS의 볼 판정이 오히려 더 부정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선수들이 ABS를 경험하고 적응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오랫동안 활약하며 자신의 스트라이크 존이 확고하게 정립된 선수일수록 오히려 어려움이 크다.
SSG 베테랑 추신수는 ABS에 대해 “한국야구의 변화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전제를 두면서도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정립했던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느낌이다”라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스트라이크 존 선구안이라는 것은 존에서 완전히 빠지는 공을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공 한 개에서 반 개 빠지는 공을 골라내는 것이다"라고 강조한 추신수는 "이제는 그런 것이 없어져버린 느낌이다. 선수들이 감수를 해야하는 일이지만 쉽지 않다. 내 눈과 몸은 지금까지의 스트라이크 존에 익숙해져 있는데 한순간에 바뀌니까 다시 바뀐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하기에는 많이 늦은 것 같다"라고 선수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선수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ABS의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선수들은 시범경기에서 처음으로 ABS 스트라이크 존을 경험했고 팀별로 10경기 내외를 소화한 뒤 곧바로 시즌에 돌입해야 했다. 추신수는 "정말 선수들이 충분히 적응할 시작이 있었나 싶다. 베이스 크기를 키우고 피치클락을 도입하는 것 같은 변화에는 찬성이다. 팬들을 위한 야구를 하는 것이 맞다. ABS 도입 역시 100% 이해를 하지만 선수들과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적응할 시간이 있었는지에는 아쉬움이 있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선수협은 "올해 KBO리그에 도입된 ABS 운영안과 일치하는 방식을 한 시즌이라도 퓨처스리그에서 시범운영을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KBO와 선수들과의 소통이 부족했음을 지적했다.
ABS와 기존 스트라이크 존의 차이에 대해 염경엽 감독은 "전체적인 스트라이크 존을 감독자 회의를 통해서 상의를 해봐야겠지만 전반기가 끝나면 높은 스트라이크 존을 공 반개 정도는 낮춰야 할 것 같다. 높은 공을 반개 정도 낮추고 조정을 거치면 내년에는 거의 기존과 같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타자가 치기 힘든 공이 스트라이크가 되고 있다. 어쨌든 칠 수 있는 공이 스트라이크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ABS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KBO 관계자는 "사실 타자가 칠만한 공이라는 것을 정의하기가 참 어렵다. 그렇다고 이전처럼 상단 좌우 외곽을 스트라이크로 잡지 않는다면 스트라이크 존이 이상한 모양이 될 것"이라면서도 "스트라이크 존은 모든 감독과 선수들이 동의한다면 조정될 수 있다. 결국 판정 기준을 수정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만약 정말로 현장이 하나의 목소리로 의견을 모은다면 시즌 중에도 조정이 가능한 부분이다. 좌우에 대해서도 시즌 전에 합의를 통해 규정보다 2cm를 넓혔다"라며 스트라이크 존 상단 높이의 조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시즌 초반 다소 잡음이 많기도 했지만 점차 KBO리그에 정착해나가고 있는 ABS가 앞으로 더 개선을 통해 선수들에게도 진심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fpdlsl72556@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