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흥행이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팀 순위는 9위로 처져있지만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찾는 팬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화는 지난 15일 석가탄신일 공휴일을 맞아 열린 NC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오후 12시56분에 일찌감치 전 좌석(1만2000석) 매진을 이뤘다. 시즌 22번째 홈경기에서 21번째 매진으로 딱 한 경기 빼놓고 전 좌석이 가득 들어찼다. 매진율이 무려 95.9%.
‘야신’ 김성근 감독 부임 첫 해 폭발적인 이슈 몰이를 했던 지난 2015년 구단 역대 최다 21번의 매진 기록과 벌써 타이를 이뤘다. 지금 페이스라면 1996년 삼성이 갖고 있는 역대 한 시즌 최다 36번의 홈경기 매진도 어렵지 않게 깰 것 같다.
이미 역대급 기록을 하나 세웠다. 시즌 최종전이었던 지난해 10월16일 롯데전부터 올해 5월1일 SSG전까지 KBO리그 역대 최다 17경기 연속 홈 매진을 달성했다. 1995년 삼성의 12경기 연속 기록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아무리 1만2000석 미니 구장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꾸준하게 꽉 차는 것은 경이적이다. 금·토·일 주말 3연전,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야간 경기 매진도 5경기나 된다.
시즌 전부터 예고된 흥행 대박이다. 메이저리거 류현진이 12년 만에 한화로 복귀하면서 팬들의 기대감이 고조됐다. 시범경기 때부터 대전 경기에 암표가 거래됐고 풀시즌권, 주말 시즌권 포함 시즌 판매권도 2000석 이상으로 전년 대비 250% 증가했다. 한화가 개막전 패배 후 7연승을 질주하며 성적까지 냈다. 시즌 첫 10경기에서 8승2패로 단독 1위에 오르자 팬심이 폭발했다. 대전 경기 티켓을 구하기 위한 ‘광클’ 경쟁도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다.
4월부터 한화의 성적이 급락하면서 순위가 9위로 급전직하했지만 팬심은 조금도 식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순위가 9위로 내려앉은 뒤에도 대전 홈 5경기 모두 매진됐다. 지금껏 팀 성적이 곧 흥행으로 직결됐던 KBO리그 풍토를 비춰볼 때 경이로움을 넘어 연구 대상이다.
15일 경기에서의 풍경은 더욱 그랬다. 이날 한화는 선발투수 펠릭스 페냐가 손아섭의 강습 타구에 오른손을 뻗다 손목을 맞고 교체되는 악재 속에 2회 6실점 빅이닝으로 경기 흐름을 빼앗겼다. 3~4회 1점씩 추가로 내주며 스코어가 1-8로 벌어졌다. 4회말부터 빗줄기가 굵어졌지만 한화팬들은 저마다 우산을 쓰거나 우의를 착용하며 자리를 지켰다. 7점차로 지고 있어도 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5회말 종료 후 클리닝타임 때는 한화 찐팬으로 잘 알려진 배우 차태현 씨가 전광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화를 응원하는 예능 프로그램 촬영차 구장을 찾은 차태현 씨는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 우리가 이런 적 하루이틀입니까. 이길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응원합시다. 화이팅!”을 외치며 선수들에 전하는 메시지로 “여러분 다치지만 마십시오. 시즌 깁니다”라고 힘찬 응원을 보냈다.
그러나 7회초에도 한화는 8실점 빅이닝을 허용, 스코어는 1-16으로 더 크게 벌어졌다. 15점차로 이미 승부가 기울었지만 관중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7회말 한화 공격 2사 1루 안치홍 타석 때 폭우가 내리면서 우천 중단됐다. 상당수 팬들이 경기장을 빠져나갔지만 그럼에도 적잖은 팬들이 구장에 남아 응원을 이어나갔다. 31분간 기다려도 비가 그치지 않자 오후 5시17분에 강우콜드 게임이 선언됐다. 1-16 대패와 함께 한화는 16승25패1무(승률 .390)로 9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성적이 안 좋은 팀인데 흥행은 그야말로 대박이다. 이를 기현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요즘 야구를 소비하는 문화는 오로지 승패에 매몰되지 않는다. 야구장 응원 문화를 즐기면서 놀이 공간으로 삼는 젊은 팬들과 가족 단위 팬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이고, 야구를 즐기는 방식은 각자 다르며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스포츠의 본질은 결국 승부다. 엄연히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세계다. 경기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프로로서 자존심이 없는 것과 같다. 2008년부터 17년째 이어지고 있는 암흑기에도 일편단심으로 성원을 보내는 한화팬들을 두고 ‘보살팬’이라고 일컫는다. 이제는 마냥 좋게만 들리지 않는 수식어다. 변하지 않는 팬심은 경이롭지만 구단, 선수단 모든 구성원은 95.9%의 매진율에 취하거나 위안 삼을 때가 아니다. 한화 이글스는 프로야구 팀이다. 프로답게 야구로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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