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감독이라면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린다. 재계약은 2005~2009년 5년간 팀을 이끈 김인식 감독이 마지막으로 이후 선임된 6명의 감독 중 5명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중도 하차했다. 유일하게 계약 기간을 채운 김응용 감독도 2년 연속 9위 꼴찌에 그치며 한국시리즈 우승 10회에 빛나는 명장 커리어에 흠집이 났다.
‘야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도 2년 연속 가을야구에 실패한 뒤 마지막 시즌에 중도 퇴진했다. 이후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으로 두산에서 코치로 외부 경험을 쌓고 돌아온 한용덕 감독, 구단 최초 외국인 사령탑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박사학위 보유자로 2군 감독을 거쳐 올라온 학구파 최원호 감독까지 다양한 감독들이 한화 지휘봉을 잡았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시즌 도중, 그것도 5월 시즌 초반에 감독을 바꿀 정도로 구단이나 그룹의 인내심도 극히 떨어진다. 2008년부터 17년째 이어진 암흑기가 너무 길어지다 보니 구단이나 팬들도 성적에 대한 목마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런데 당장 눈에 띄는 성적을 낼 만한 전력이 아니다 보니 감독들이 버티기 어려운 팀이 됐다. 시즌 중 감독 퇴진 잔혹사가 연례 행사와 같다.
이런 감독들의 무덤에 김경문(66) 감독이 왔다. 두산과 NC에서 1군 14시즌 통산 1700경기를 지휘하며 896승을 거둔 ‘명장’이다. 가을야구 진출 10회, 한국시리즈 진출 4회로 확실한 실적을 냈다. 단기간 성적은 물론 젊은 선수 발굴 및 육성에도 능한 감독이라 유망주가 많고, 성적을 내야 할 한화의 두 가지 니즈를 모두 충족시키는 최적임자로 낙점됐다.
지난 2018년 6월 NC에서 물러났던 김경문 감독에겐 정확히 6년 만의 현장 복귀.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에서 노메달로 아쉬움을 남긴 김 감독은 젊은 감독 선임이 대세가 되면서 잊혀지는 듯했다. 어느덧 백발 성성한 66세의 노장이 된 김 감독이라 현장 복귀의 꿈이 멀어지는가 싶었지만 운명처럼 한화에 왔다.
수많은 감독들이 실패를 거듭한 한화이지만 김 감독에겐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잔혹사를 반복 중인 한화 감독 자리에 대해 김 감독은 “감독이라면 정말 오랫동안 잘 해내고 싶지만 숙명처럼 성적이 안 나면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부담감보다는 내가 할 것에 집중하겠다. 우리 선수들, 스태프들과 새롭고 즐겁게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화만큼 김 감독에게도 중도 하차의 아픔이 두 번 있었다. 앞서 몸담았던 두산과 NC에서 모두 성적을 내며 장기 집권했지만 마지막이 아쉬웠다. 두산에선 2011년 6월, NC에선 2018년 6월 시즌 중 지휘봉을 내려놓고 떠났다. 김 감독은 “감독은 성적이 나쁘고, 무슨 일이 있다면 팀을 위해 책임질 수도 있어야 한다. 이번에는 끝까지 잘 마무리하고 내 목표를 꼭 이루고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목표란 두 글자, 바로 우승이다. 4번이나 한국시리즈에 나갔지만 한 번도 우승컵을 들러올리지 못했다. 500승 이상 거둔 KBO리그 감독 13명 중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다. 무관의 한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김 감독은 “현장을 떠나있으면서 잘했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 아쉬운 생각들이 많이 남았다. 아쉬운 부분은 아실 것이다. 2등이라는 것이 내게는 많은 아픔이었다. 이곳 한화 이글스에서 팬들과 함께 꼭 우승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 당장 쉽게 이뤄질 목표는 아니다. 3일까지 한화는 5위 SSG에 4.5경기 뒤진 8위로 처져있다. 하지만 남은 87경기에서 못 뒤집을 차이는 아니다. 김 감독은 “충분히 반등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선수단, 스태프를 잘 아울러 남은 경기에서 최강 응원을 보내주고 계신 한화 팬들에게 한 경기, 한 경기 더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먼저 5할 승률을 맞추는 게 우선이 아닐까 싶다. 포스트시즌에 초점을 맞춰 성적이 올라오면 그 다음을 생각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올해 가을야구에 나간 뒤 신구장에 들어선 내년부터 정상 도전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김 감독에겐 3번째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회. 2026년까지 계약한 김 감독의 오랜 꿈이 한화에서 이뤄질지 궁금하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