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끝내 65억원은 매몰 비용이 되는 걸까. 언더핸드 투수 박종훈(33)을 향한 프로야구 SSG 랜더스의 인내심도 바닥이 날 것 같다.
박종훈은 지난 16일 대전 한화전에 선발등판했다. 벼랑 끝에서 다시 얻은 귀중한 기회였다. 아직 정규시즌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3번이나 2군에 다녀올 만큼 기복 심한 투구를 보이고 있는 박종훈에겐 어쩌면 생존이 걸린 승부였다.
이숭용 SSG 감독은 외국인 투수 드류 앤더슨에게 추가 휴식을 주며 2군에서 재정비하고 돌아온 박종훈에게 다시 선발 기회를 부여했다. 경기 전에 이숭용 감독은 “잘 던져주면 좋겠다. 2군 상무전에서도 좋았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해야 한다”고 기대하면서도 “또 다른 플랜도 준비하고 있다”며 결과가 안 좋았을 경우도 대비했다.
결과적으로 이 감독은 다른 플랜을 가동해야 할 것 같다. 이날도 박종훈은 3회를 버티지 못하며 무너졌다. 2⅔이닝 4피안타 2볼넷 1사구 2탈삼진 3실점으로 또 조기 강판된 것이다. 1-4로 패한 SSG는 3연승 마감.
투구 내용이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실점 없이 막은 1~2회도 불안불안했는데 3회 급격한 난조를 보였다. 이도윤과 이원석에게 연속 안타를 맞더니 장진혁에게 던진 초구 커브가 몸을 맞혔다. 이어 무사 만루에서 최악의 장면이 나왔다. 황영묵 타석에 초구 커브가 바깥쪽 낮게 빠지는 폭투가 돼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왔다.
계속된 무사 2,3루에선 3구째 투심 패스트볼이 타자 황영묵 등 뒤로 향하며 또 다시 백네트 쪽으로 빠졌다. 한 타석에 폭투로 2개로 연속 실점하는 보기 드문 상황이 나왔다. 결국 황영묵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이어진 1사 1,3루에서 노시환을 삼진 처리했지만 안치홍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맞아 추가 실점했다.
이어진 2사 2루에서 SSG 벤치가 더는 기다리지 않았다. 여기서 더 점수를 주면 경기 흐름이 완전히 넘어간다고 판단했는지 우완 최민준으로 투수 교체했다. 박종훈은 총 투구수 64개로 강판됐다. 스트라이크가 36개로 비율이 56.3%에 그칠 만큼 제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지켜보는 것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이날까지 박종훈의 올 시즌 성적은 9경기 1승4패 평균자책점 7.71 WHIP 1.78 피안타율 2할9푼4리. 30⅓이닝 동안 볼넷 19개, 몸에 맞는 볼 7개로 9이닝당 사사구가 7.71개에 달한다. 유일한 승리를 거둔 지난 4월13일 수원 KT전 6이닝이 최다 이닝으로 선발 8경기 중 6경기에서 5이닝을 넘기지 못했다. 박종훈이 선발 구실을 못하면서 그가 등판할 때마다 불펜 부담이 가중됐다.
2020년까지 3번의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박종훈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잠수함 선발투수였다. 하지만 2021년 6월 팔꿈치 인대접합수술 이후 급격한 하락세에 빠졌다. 재활 중이던 그해 12월 SSG와 5년 65억원에 사인하면서 같은 팀 투수 문승원(5년 55억원)과 더불어 KBO리그 최초 비FA 다년 계약을 체결했지만 2022년 7월 복귀 후 좀처럼 예전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22년 11경기(48이닝) 3승5패 평균자책점 6.00을 기록할 때만 해도 부상 복귀 시즌이라는 점이 감안됐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 구원으로 나서 2⅓이닝 무실점에 홀드 2개를 거두며 우승에 기여했지만 지난해 18경기(80이닝) 2승6패 평균자책점 6.19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80이닝 동안 볼넷 60개, 몸에 맞는 볼 19개. 9이닝당 사사구가 무려 8.89개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체중을 14kg이나 감량하며 절치부심했지만 지난해보다 더 좋지 않은 기록을 내고 있다. 비FA 다년 계약 이후 3년간 성적은 38경기(35선발·158⅓이닝) 6승15패 평균자책점 6.42. 이 기간 1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109명 중 가장 높은 평균자책점이다.
제구가 무너진 데다 느린 슬라이드 스텝으로 인해 발 빠른 주자들이 나가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올해 베이스 크기가 확대되면서 이 같은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된다. 낮은 존에 박한 ABS 존도 릴리스 포인트가 낮은 박종훈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모습이다. 공인구 반발력 상승까지 겹치면서 9이닝당 피홈런(1.78개)도 데뷔 후 가장 많다.
퓨처스리그에선 5경기(30이닝) 3승1패 평균자책점 1.80으로 호투했다. 2군에선 더 보여줄 게 없지만 1군에선 도통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5위에 올라 순위 싸움 중인 SSG라서 무한정 기회를 제공할 수도 없다. 2026년까지 앞으로 2년 반이나 더 계약이 남아있지만 지금 같은 모습이라면 65억원은 매몰 비용이 될 수밖에 없다. 몸값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써야 할 수준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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