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잠실, 한용섭 기자] 무려 431일 만에 1군 마운드에 올랐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무실점 역투를 펼치며 대역전 드라마 발판을 마련, 구원승의 기쁨을 누렸다.
프로야구 LG 트윈스 투수 김영준이 혈투를 벌인 ‘엘롯라시코’에서 승리 투수가 됐다.
김영준은 1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3-8로 뒤진 8회 마운드에 올랐다. 2아웃을 잡고서 황성빈에게 내야 안타를 맞았으나, 포수 김범석이 2루 도루를 저지하며 이닝을 마쳤다. 9회는 1사 후 볼넷을 내줬으나 손호영을 뜬공, 레이예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김영준이 무실점으로 막는 동안 LG 타선은 8회말 3점을 추격하고, 9회말 2사 3루에서 문성주의 극적인 안타가 터지면서 8-8 동점을 만들었다. 연장 10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김영준은 나승엽을 삼진, 박승욱을 2루수 직선타, 최항을 1루수 땅볼로 삼자범퇴로 끝냈다.
10회말 LG는 무사 만루 찬스를 잡았고, 1사 후 신민재의 희생플라이로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3이닝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한 김영준이 승리 투수가 됐다.
경기 후 김영준은 “점수가 갑자기 차이가 많이 나서 이제 던질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우)강훈이랑 같이 몸을 풀었는데 내가 먼저 나가게 됐다. 10회까지 던질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고 등판 상황을 말했다.
3-8로 뒤진 상황에서 LG가 점수를 따라붙으면서 점점 박빙 상황이 됐다. 경기 후 부담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영준은 “솔직히 그런 건 없었다. 2군에서 워낙 오랜 생활을 하다 보니까 이제 1군에서 이렇게 던질 기회가 너무 절실했다. 그렇기에 점수차건 상황이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말 올라가서 있는 힘껏 던졌다”고 간절한 심경을 말했다.
김영준은 첫 타자 최항 상대로 초구 146㎞ 직구를 던졌다. 그는 "포수만 보고 그냥 있는 힘껏 던졌다. 좀 더 긴장감 속에서 던져서… 무대 체질인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데뷔 후 가장 인상적인 경기가 아니었냐는 말에 김영준은 "솔직히 좀 어안이 벙벙하고 내가 어떻게 던졌는지도 잘 기억 안 나고, 그냥 한 타자 한 타자 생각하고 던졌기 때문에 좋았던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김영준은 “김경태 투수코치님이 처음에 올라가서는 ‘자신있게 볼질 하지 말고 그냥 포수 보고 강하게 던져라. 네 공 던져라’ 하셨고, 그 다음 이닝(9회) 되니까 ‘한 회 더 간다. 네가 막아봐 하셨고, 마지막 이닝(10회) 때는 ‘좀 더 힘 빼고, 공 좋으니까 좀 더 밸런스로 가져가자’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딱딱 그 상황에 맞게 말씀해주셔서, 생각하고 한 번 더 곱씹고 올라가서 던질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김영준은 201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1차지명으로 LG에 입단했다. 당시 LG는 즉시전력감으로 평가받았으나 부상 우려가 있는 양창섭을 패싱하고 성장 잠재력을 보고 김영준을 지명했다.
2018년 데뷔 첫 해 14경기(20⅔이닝)에 등판해 2구원승 1패 평균자책점 4.35을 기록했다. 2019시즌을 마치고 군 복무를 일찍 해결하고 2021년 도중 복귀했다. 그러나 2022년 2경기, 2023년 1경기 등판에 그쳤다. LG의 기대와 달리 직구 구속은 정체됐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올 시즌 2군에서 머물다가 4월 21일 더블헤더 특별 엔트리로 1군에 콜업됐지만, 등판 기회 없이 다음날 곧바로 말소됐다. 지난 11일 다시 1군에 올라왔고, 투수 9명이 등판한 15일 롯데전에서는 불펜에 남은 투수 2명 중 한 명이었다.
지난해 4월 12일 사직 롯데전, 김영준은 5-7로 뒤진 8회말 2사 1루에서 등판해 유강남을 1루수 뜬공으로 잡고 이닝을 끝냈다. LG가 9회초 롯데 마무리 김원중을 상대로 3점을 뽑으며 역전하고 12-7까지 점수 차를 벌렸다. 9회말 김영준은 볼넷, 안타를 맞고 무사 1,3루에서 교체됐다. 이지강이 1이닝을 막으며 12-8로 승리했다. 김영준은 2018년 이후 5년 만에 승리 투수가 됐으나 다음날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지난해 1군 등록 일수는 딱 2일이었다.
16일 롯데전은 431일 만에 1군 경기였고 이번에는 완벽한 피칭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오랜 시간 2군에서 있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김영준은 "정말 죽고 싶을 정도였다. 1군을 올라가지 못하면 비전이 없는 게 우리 생활이잖아요. 정말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힘들고 너무 지루했지만 그래도 잘 이겨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항상 자신은 있었다. 다만 1군에 처음 올라오면 그런 압박감이나 긴장감을 솔직히 잘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 오늘처럼 좀 더 단단해져서 1군에서 던졌었다면 조금 더 빠른 시일 내에 자리를 잡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LG는 임찬규와 최원태가 부상으로 빠져 있다. 이틀 연속 불펜 데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주 금,토 선발 공백이 있다. 2군에서 꾸준히 선발로 던졌던 김영준은 “어떤 보직이든 어떤 상황이든 감독님, 코치님께서 그 자리를 정해주시면 거기에 맞춰가는 게 선수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하나하나 해가면서 1군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하고, 최대한 오래 붙어 있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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