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후광 기자] 외국인투수 한 명을 잘못 뽑아 당장 17억 원을 허공에 날릴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교체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두산은 2년 전 외국인투수를 믿었다가 큰 낭패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는 지난 4일 오후 에이스 라울 알칸타라(32)를 전격 방출했다. KBO에 알칸타라에 대한 웨이버 공시를 요청했고, 동시에 우완 외국인투수 조던 발라조빅(26)을 총액 25만 달러(약 3억4000만 원)에 새롭게 영입했다.
알칸타라는 지난 2020시즌 두산에서 31경기 198⅔이닝을 소화하며 20승 2패 평균자책점 2.54 182탈삼진 WHIP 1.03으로 KBO리그를 평정했다. 31경기 중 27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하면서 다승·승률·퀄리티스타트 1위, 이닝·탈삼진 2위, WHIP 3위, 평균자책점 4위 등 각종 지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알칸타라는 이에 힘입어 2021시즌 2년 400만 달러에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와 계약했지만, 2022시즌 종료 후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2023시즌 총액 90만 달러에 두산으로 돌아와 31경기(192이닝) 13승 9패 평균자책점 2.67의 호투로 두산의 2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 복귀를 이끌었다.
두산은 지난해 가을야구를 마친 뒤 일찌감치 알칸타라 재계약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12월 21일 총액 150만 달러(약 20억 원)에 2024시즌 에이스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계약금 50만 달러, 연봉 80만 달러, 인센티브 20만 달러의 특급 조건이었다.
그 동안 건강 하나 만큼은 자신 있었던 알칸타라는 지난 4월 21일 잠실 키움 히어로즈전을 마치고 우측 팔꿈치에 불편함을 느껴 1군 말소됐다. 국내 병원 세 곳에서 팔꿈치 외측 염좌 진단을 받았지만, 이를 신뢰하지 못하며 미국으로 향해 주치의에게 재검진을 받았다. 미국 의료진 또한 국내 의료진과 같은 소견인 염좌 진단을 내리면서 알칸타라는 한 달의 회복기를 거쳐 5월 말 선발진으로 돌아왔다.
알칸타라는 부상 이후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150km 초중반대의 강속구는 여전했지만, 스트라이크가 타자들의 먹잇감이 됐고, 이 여파로 볼의 비율이 높아졌다. 5월 26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 3⅓이닝 5실점, 6월 26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 3⅔이닝 5실점, 7월 3일 잠실 롯데 자이언츠전 2이닝 6실점 등 대량실점에 따른 조기 강판의 빈도가 많아졌다.
알칸타라의 파트너인 주전 포수 양의지는 “작년과 다른 게 볼카운트 싸움을 많이 못한다. 결과가 안 좋다보니 안 맞으려고 어렵게 간다. 작년을 돌이켜보면 유리한 카운트를 항상 선점했는데 올해는 그게 부족하다. 포크볼도 생각보다 안 좋다고 해서 슬라이더도 써보고 공격적으로 리드하려고 하는데 중심에 맞으면 타구가 멀리 간다”라고 부진 요인을 분석했다.
두산은 알칸타라가 부상 회복 중이던 5월부터 대체 외국인선수 리스트업에 착수했다. 두산 관계자는 4일 OSEN과의 전화통화에서 “5월부터 구단 외국인선수 담당자가 미국으로 향해 후보군을 추렸고, 지난달 중순 계약이 급물살을 탔다. 원래는 7월 중순 쯤 새 외국인투수 영입을 생각했는데 속도를 내서 4일 발라조빅과 계약에 합의했다”라고 설명했다.
알칸타라는 3일 롯데전을 마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4일 오후 1시경 잠실구장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2시 구단 사무실에서 방출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알칸타라는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알칸타라가 3일 롯데전에서 호투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두산 관계자는 “우리는 알칸타라가 미국 주치의에게 다녀온 뒤 경기 내용 및 데이터를 분석했고, 교체로 결론을 냈다. 이미 대체 외인 물밑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3일 경기에서 잘 던졌어도 교체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산은 알칸타라를 방출하면서 계약금 50만 달러와 연봉 80만 달러를 더해 130만 달러(17억 원)를 사실상 허공에 날렸다. 두산이 이를 인지했으면서도 빠른 결단을 내린 이유는 2년 전 이른바 ‘미란다 참사’를 한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두산은 2022시즌 선발 로테이션을 이끌 리더로 아리엘 미란다를 낙점했다. 2021시즌 ‘전설’ 최동원을 넘어 KBO리그 탈삼진 신기록을 수립한 그를 총액 190만 달러(약 26억 원)라는 거액에 붙잡으며 기대를 한껏 드러냈다. 당시 미란다를 필두로 로버트 스탁-최원준-이영하-곽빈으로 이어지는 막강 5선발을 구축한 두산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변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 중 가장 뼈아픈 건 믿었던 1선발의 예상치 못한 부상이었다. 스프링캠프서 돌연 어깨 통증을 호소한 미란다는 4월 23일 LG 트윈스전 이후 어깨 근육 뒷부분이 미세 손상되며 두 달 넘게 1군에서 자취를 감췄다. 회복을 거쳐 6월 25일 잠실 KIA전에 복귀했으나 ⅔이닝 7사사구 2탈삼진 4실점 참사를 겪고 결국 짐을 쌌다. 26억 원 투자가 3경기 평균자책점 8.22라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졌다.
에이스가 무너지자 팀 전체가 흔들렸다. 두산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원동력이었던 선발야구가 붕괴되며 창단 첫 9위(60승 2무 82패) 수모를 겪었다. 아울러 2008년 이후 무려 14년 만에 선발 10승 투수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만일 미란다가 10승만 거뒀어도 두산은 70승 2무 72패로 5위 경쟁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만큼 외국인 에이스의 이탈이 치명적이었다.
두산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2024시즌 전반기를 시즌 46승 2무 39패 3위로 마쳤다. 부임 2년차를 맞아 한층 노련해진 이승엽 감독의 지도력과 어린 불펜진의 호투에 힘입어 후반기 최상위권 도약을 노리고 있다. 두산이 올스타전 이전에 외국인투수 이슈에 발빠르게 대응한 이유다.
한편 캐나다 출신의 발라조빅은 신장 196cm·체중 97kg의 신체 조건을 지닌 우완투수로, 201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의 5라운드 지명을 받고 2023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18경기 24⅓이닝 1승 평균자책점 4.44를 기록했다. 마이너리그 통산 성적은 138경기(83경기 선발) 29승 28패 7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4.40이며, 올 시즌 미네소타 산하 트리플A 세인트 폴 세인츠에서 24경기(1선발) 35⅓이닝 5승 4패 3홀드 평균자책점 5.60을 기록했다.
두산 관계자는 “발라조빅은 높은 타점에서 나오는 직구가 위력적인 투수다. 직구 구속은 최고 156km, 평균 150km다. 이외에도 스플리터, 커브, 슬라이더 등 변화구를 스트라이크존에 넣을 수 있는 투수로 탈삼진 능력이 뛰어나다”라고 밝혔다.
발라조빅은 향후 비자발급 및 행정 절차를 거쳐 두산 선수단에 합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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