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eus EURO(안녕, 유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9·포르투갈)가 기나긴 ‘유로 여정’을 끝냈다. 여섯 대회에 걸쳐 20년 23일의 노정을 마무리 짓고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와 고별했다. 영욕과 희비로 점철된 노정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신계의 사나이’ 심정은 어떠했을까?
인성으로 말미암은 호불호를 떠나서 호날두는 세계 축구사에 불멸의 발자취를 아로새긴 ‘전설’이다. 리오넬 메시(37·아르헨티나)와 더불어 당대 ‘축구 천하’를 양분하며 숱한 기록을 쏟아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세계 축구계 토양을 기름지고 살찌운 자양분으로 작용했음도 폄훼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쫓기다시피 옮겨 간 새로운 터전인 사우디아라비아 프로페셔널리그에선, 여전히 폭발적 득점력을 뽐낸 호날두다. 2023-2024시즌, 맹위를 떨치며 득점왕(35골)에 등극했다. 1974-1975시즌에 첫걸음을 내디딘 프로페셔널리그 사상 최다 득점 기록을 갈아 치우며 포효했다. 2018-2019시즌, 압데라자크 함달라가 알나스르에서 활약하던 시절에 세운 종전 기록(34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러나 전장(戰場)이 달랐다. 유로 마당은 역시 훨씬 치열한 각축장이었다.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에 버금가는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벌어진 대각축인 유로 2024는 호날두의 열정을 ‘무풍지대’로 몰아넣었다. “2024 독일 대회가 마지막 유로 무대다”라며 투지를 불사른 호날두였지만, 우리 나이 불혹(40세)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노쇠화에 발목을 잡혔다.
64년의 유로 역사에서, 호날두의 존재는 뚜렷하게 빛난다. 득점-어시스트-출장 등 각종 지표에서, 호날두는 가장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며 호령한다. 20년에 걸쳐 여섯 대회를 누비며 신지평을 열었다. 적어도 기록적 측면에서만큼은 독보적 지경에 올라 호호탕탕한 기세를 과시했다. 그야말로 ‘호날두 천하’였다(표 참조).
그랬던 호날두의 고별 무대는 초라했다. 2024 유로에서, 호날두는 ‘전매특허’라 할 만한 골 폭발을 단 한 차례도 터뜨리지 못했다. 지난 다섯 대회와 전혀 딴판의 모습이었다. 프랑스에 패퇴해 마지막 한판이 된 8강전까지 5경기를 치르며 골과 연(緣)을 맺으려 했으나, 야속하게도 상대 골문은 철저히 호날두의 손길을 외면했다. 11개국에서 분산 개최된 유로 2020 16강 벨기에전(0-1 패)부터 이어진 ‘골 침묵’은 마지막까지 6경기째 그대로 이어졌다. 득점 기록에 관한 한 세계 으뜸이라 자부하는 호날두로선 자존심에 흠이 갈 만한, 자신조차 이해하기 힘든 끝없는 듯싶은 골 침묵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로써 호날두가 유로 마당에 그려 온 ‘골 명맥’은 5에서 단절된 채 역사 속에 파묻혔다. 자국에서 열린 2004 유로에서 데뷔한 이래 11개 지역에서 분산 개최된 2020 유로까지 다섯 대회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득점포를 가동해(2→ 1→ 3→ 3→ 5) 온 호날두였다.
아울러 최다 출장 부문 시계도 멈춰 섰다. 최다 대회 출전, 최장기간 출장, 최다 경기 출장을 나타내던 계수기 모두 더는 활기를 띤 채 움직일 수 없다는 양 정지 상태로 들어갔다. 희비가 엇갈렸다. 호날두는 이번 독일 대회에 뛰어듦으로써 이 부문 모두 자신이 갖고 있던 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다른 한편으론, 힘이 다한 마지막 작동이었다.
먼저 대회 최다 출장 기록은 5회에서 6회로 한 걸음 더 나갔다. 2004 포르투갈 대회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이래 2024 독일 대회까지 줄기차게 이어 왔다. 지난 6월 18일(이하 현지 일자) 이번 대회 그룹 스테이지 F 체코전을 디딤돌로, 신기록을 썼다.
최장기간 기록은 로타어 마테우스(독일)의 종전 기록(20년 6일)을 능가했다. 그룹 스테이지 터키전(6월 22일)이 디딤돌이었다. 20년 10일로 4일을 늘였다. 이어 그룹 스테이지 조지아전(6월 26일·20년 14일)과 녹아웃 스테이지 16강 슬로베니아전(7월 1일→20년 19일)→ 8강 프랑스전(7월 5일·20년 23일)을 치르며 계속 늘여 갔다.
독보적이라 할 만한 최다 경기 출장은 신기원을 이뤘다. 유로 사상 최초로, 30경기 출장 고지에 올랐다. 2위에 자리한 페페(포르투갈·23경기)를 제치고 멀찍이 앞섰다. 이번 독일 대회를 발판으로 최고령 출장 기록(41)을 세운 페페인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무너지지 않을 높고 두꺼운 벽이다.
그러나 이 출장에 관한 이 모든 영광은 고국의 중도 탈락으로 빛이 바랬다. 승부차기에서, 포르투갈이 프랑스에 져(3-5) 4강행이 좌절되며 빛이 퇴색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이한 호날두다.
자신의 공언과 나이를 생각할 때, 호날두와 유로의 인연은 마침내 끊어졌다. 그 마침표가 된, 또한 희비쌍곡선이 빚어진 이번 독일 무대를 호날두는 어떻게 되돌아볼지 궁금하다. 쓸쓸하게 안녕을 고하며 무대에서 내려오긴 했어도, ‘유로의 화신’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음에 스스로를 달래지 않았을까 싶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