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일본 효고현의 작은 마을이다. 히카미니시라는 고등학교가 있다.
방과 후 풍경이 특이하다. 여학생 한 명이 혼자 야구 배트를 휘두른다. 자기가 공을 올리고, 힘껏 쳐서 외야로 보낸다. 문제는 그라운드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날아간 볼을 주워 오는 것도 본인 몫이다.
여자 야구 선수인가? 아니다. 그 학교에는 여자팀이 없다. 그녀는 3학년생 가쿠다 양이다. 정체는 야구부 매니저다. 우리 식으로 하면 총무다. 선수들 뒷바라지, 기록 정리 같은 잡무를 돕는 일이다. 일본 고교 팀 어디나 있는 직책이다.
혼자 배트를 휘두르는 것은 연습이다. 야구팀 수비 훈련을 위해 노크(펑고) 치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의문이다. ‘왜 받아주는 사람이 없지?’ 하는 점이다. 그 학교에는 야구 선수가 없다. 무슨 말이냐고? 야구부는 있는데, 부원이 없다는 뜻이다. 좀 황당한 얘기다.
지난해만 해도 6명의 야구부원이 있었다. 물론 그 인원으로는 팀이 안 된다. 그래서 이웃 학교와 연합팀을 꾸려 대회에 출전했다. 그러던 중 5명이 졸업했다. 나머지 1명은 “그만하겠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전교생 112명 중 남학생이 69명이다. 열심히 부원 모집에 나섰지만, 소득이 없다. 결국 매니저 혼자만 남은 셈이다. 야구부 해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가쿠다 양이 버텼다. “내년에 신입생을 받을 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그중에 혹시 지원자가 있을 지 모르잖아요.”
그렇게 9개월을 버텼다. 혼자 운동장의 잡초 뽑고, 돌멩이 치우고, 야구부실 청소를 도맡았다. 후배 훈련시키려 노크 배트도 직접 들었다. 하루 1~2박스(120~240개)씩 치면서 기량을 연마했다. (가쿠다 양은 중학교 때까지 소프트볼 선수였다.)
이맘때면 일본 열도가 뜨거워진다.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여름 고시엔)가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로 벌써 106회째다. 지금은 지역 예선 중이다. 통과한 팀은 고시엔으로 갈 수 있다. 모두가 꿈꾸는 무대다.
공영방송 NHK가 본선 전 경기를 라이브 중계하는 걸로 유명하다. 한때는 프로야구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다. 오타니, 마쓰자카 같은 월드 스타를 배출한 대회다. 패배한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라운드의 흙을 주머니에 담아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다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히카미니시 고교 같은 학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가쿠다 양 같이 매니저만 남는 곳이 많아진다. 야구부원이 부족해 5~6개 학교가 연합 팀을 이루는 경우도 드문 일이 아니다.
이유는 저출산 탓이다. 일본도 비혼을 택하는 젊은 층이 점점 많아진다. 결혼을 하더라도 무자녀 혹은 1자녀 가정이 늘고 있다.
이는 곧 학교 스포츠의 위축을 의미한다. 지난해 집계에 따르면 일본 고교 팀(야구)은 3818개다. 전년도(2022년)에 비해 39개가 줄었다. 9년 연속 감소세가 이어지는 추세다. 선수 숫자도 마찬가지다. 2014년에는 17만 312명이었다. 이후로 화살표는 계속 내리막이다. 지난해에는 12만 8357명으로 감소했다. 무려 24.6%나 줄어든 수치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우리도 비슷하다. 야구 명문교라는 곳도 쉽지 않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20명을 채우기가 버거운 상황이다. 특히 지방 도시들은 더 심각하다. 야구부 유지가 점점 힘겨워진다.
그런 와중이다. 히카미니시 고등학교에 경사가 생겼다. 신입생 한 명이 야구부에 지원했다. 드디어 선수 1명이 등록된 것이다.
이제 야구부는 명맥을 이어가게 됐다. 가쿠다 매니저의 염원이 이뤄졌다. 그녀는 “정말 안심입니다. 내가 졸업해도, 야구부가 없어지지 않게 됐습니다”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더 이상 혼자 펑고를 치는 일은 없다. 감독-매니저-신입부원. 이들 3명은 주 4일씩 맹훈련을 거듭했다. 다행히 인근 고등학교가 연합 팀에 받아주기로 했다. 드디어 고시엔 대회 지역 예선에 출전하게 된 것이다.
오는 13일이 첫 경기다. 그 기록지는 가쿠다 양이 작성한다. 그녀는 벌써 가슴이 벅차다. 연합 팀 명단에 모교의 이름을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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